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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경의 영화 심장소리] '트래쉬'(스티븐 달드리 감독·2014·영국)...단순함, 그리고 순수함이라는 무기

2022-10-28

[김은경의 영화 심장소리] 트래쉬(스티븐 달드리 감독·2014·영국)...단순함, 그리고 순수함이라는 무기
[김은경의 영화 심장소리] 트래쉬(스티븐 달드리 감독·2014·영국)...단순함, 그리고 순수함이라는 무기

앤디 멀리건의 소설 '안녕, 베할라'를 영화로 만든 '트래쉬'는 몇 년 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본 영화다. 그때는 단순히 시간이 맞아 봤는데 '빌리 엘리어트'의 스티븐 달드리 감독, '노팅힐'의 리차드 커티스 각본에 워킹 타이틀 제작이란 건 뒤에 알았다. 그야말로 전설적인 이름들의 조합이다. 야외상영이었는데, 꽉 들어찬 관객들과 함께 분위기만으로도 마냥 설레고 행복했던 기억이 있다. 이번에 다시 보니 영화를 끌고 가는 힘이 강력하고 메시지가 뚜렷해서, 처음 보는 영화처럼 새로웠다.

브라질의 거대한 쓰레기장에서 일하며 살아가는 소년들이 의문의 지갑을 발견하며 벌어지는 모험을 그린 영화다. 세 소년이 펼치는 흥미진진한 모험을 통해 부패한 정치인과 타락한 경찰 등 비열한 어른들의 세계를 묘사한다. 불의에 굽히지 않는 소년들의 용기가 부패한 권력의 민낯을 드러내는 데 큰 역할을 한다. 감독의 능수능란한 연출력 속에 냉철한 현실 비판과 동화 같은 이야기가 공존하며, 보고 나면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는 영화다.

왜 이런 일을 하느냐는 질문에 소년들은 한 마디로 대답한다. "그것이 옳은 일이니까요." 참 단순하고 명쾌하다. 이 단순함이 실은 불편했다. 세상은 단순함만으로 살아갈 수 없다는 걸 알 만큼 나이가 들었으니까. 순수함으로 이길 수 없는 세상임을 알 만큼 많은 일을 겪었으니까. 마틴 쉰이 연기하는 신부님도 소년들에게 '그저 적당히 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들은 끝까지 할 일을 한다. 이야기는 재미있었지만, 지나치게 낙관적인 마무리도 마음에 썩 들지는 않았다. 언제부터 이렇게 현실적이 된 건지 스스로 놀랄 정도다. 꿈을 꾸고 희망을 품고 사는 것에 지친 걸까.

며칠 전, 느린 우체통에서 일 년 만에 엽서가 왔다. 영양 주실마을, 시인 조지훈의 생가에 들렀다가 쓴 것이다. '일 년 뒤 어떤 모습일까'라고 나는 나에게 썼다. '꿈을 찾았기를, 또 새로운 꿈을 찾아 길 나서기를' 바란다고 썼다. 일 년 전 나는, 그토록 낭만적이었던 것이다. 한 살 더 먹고, 여러 일을 겪고 나니 냉소적이 되어 버린 것 같다. 하지만 무엇을 탓할 수 있을까. 조지훈의 시를 중얼거려본다.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

단순하고 순수한 소년들의 모험을 보며, 꿈꾸지 않는 삶은 살아있는 삶이 아니란 생각을 다시 한다. 쓰레기장에서 살던 빈민가 소년들이 아름다운 바닷가에서 물고기를 잡으며 행복하게 사는 엔딩이 비현실적이라고 코웃음 치는 게 어른의 반응일 필요는 없다고. 그 아이들이 그렇게 행복해지는 소망을 담은 착한 어른들이 만든 영화를 단순하게, 순수하게 좋아할 수도 있는 것이다.

탄광촌에서 자란 소년이 발레리노가 된, 꿈같은 이야기 '빌리 엘리어트'도 실화였다. 현실이 영화나 소설을 앞지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조금은 더 단순하게, 순수하게 꿈꾸어도 좋을 것이다. 일 년 뒤 나는 어떤 모습일까를 상상하며, 꿈꾸며 또다시 느린 우체통에 엽서를 넣어 보내야겠다. 영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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