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원준 경북대 경제학과 교수 |
지난달 28일 채권시장에서는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의 공사채 입찰이 진행됐다. 공단은 20년 만기로 800억원을 조달하려고 했지만 매수 주문은 100억원에 그쳤다. 발행 계획은 포기됐다. 그 전날에는 신용보증기금이 상환을 보증한 프라이머리 채권담보부증권(P-CBO)도 목표액 5천432억원을 모집하지 못했다. 약 1천200억원이 미달됐다. 신용도가 최고등급 'AAA'인 공기업이라도 단기 자금이 아니면 융통하기 어려운 이런 시장 상황이 정상은 아니다.
채권시장은 10월17일부터 본격적으로 얼어붙었다. 한국도로공사가 발행하려던 1천억원 공사채가 전액 유찰된 것이 신호탄이었다. 이후 채권 발행은 줄줄이 실패했다. 최대 규모 재건축이라던 서울 둔촌주공 프로젝트파이낸싱(PF·사업으로부터 미래 발생할 현금수입을 근거로 하는 자금조달)도, 충북 음성군이 지급 보증한 채권도 마찬가지였다. 강원도가 보증했던 레고랜드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이 김진태 도지사 뜻대로 최종 부도 처리된 여파는 그렇게나 컸다.
걱정이다. "레고랜드 부도가 촉발한 금융 불안의 끝이 어디일지 모른다"는 어느 여당 정치인의 말이 틀리지 않을 듯해서다. 지금 채권시장 경색으로 기업들은 자금줄이 막혔다. 위기는 부동산 PF 시장으로 번지고 있다. 건설업계와 여신전문금융사들로 연쇄부도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증권사를 대상으로 6조원 한도의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에 나선다고 하지만 충분한 해결책이 될지 의심스럽다. 그 여당 정치인 말처럼 "IMF 위기 때보다 더 고통스러운" 상황이 닥쳐오지는 않기를 바랄 뿐이다.
어쩌다 사태가 이렇게까지 됐나. 이번에는 명백히 김진태 도지사가 원인 제공자다. 여당은 레고랜드를 야당 전임 도지사의 실패작으로 몰고 있다. 하지만 레고랜드 유치는 한나라당 김진선 전 도지사 때 이루어졌다. 김진태 도지사는 2014년에는 레고랜드 사업이 지체되면 소양강에 빠져 버리겠다고 했다. 2016년 4·13 총선에 출마하면서 '레고랜드 중심 동북아 관광허브 춘천'을 비전으로 내걸기도 했다. 그러니 여당의 태도는 적반하장이다.
이번 사태의 핵심은 지방정부가 지급 보증의 약속을 지키지 않음에 따라 금융시장이 작동하기 위한 최소한의 공적 신뢰를 무너뜨린 데에 있다. 레고랜드의 재정난부터 핑계 삼는 여당의 태도는 그런 점에서 논점회피다. 집권세력이 달라져도 지방정부의 지급 보증은 이행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 기본을 김진태 도지사는 무시했다. 그것은 또한 실정법 위반의 소지도 있다. 지방자치법 제139조의 4에 따르면 지자체는 채무를 지체 없이 이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의 검찰과 감사원은 왜 유독 이런 일에 대해서는 눈 감는가. 나라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고 온통 정략에만 몰두해 권력 연장만 할 수 있으면 된다는 것인가.
어쩌면 정부와 여당은 거꾸로 이번 사태를 기회로 삼아 지자체 산하 공공기관에 대한 민영화를 더욱 무리하게 추진할지도 모르겠다. 명분이야 지자체의 방만한 재정운영을 바로잡는다는 것일 텐데 대구에서는 낯익은 주장이기도 하다. 다만 그렇게 공공서비스가 점점 더 축소되고 안정적인 공공부문 일자리가 점점 더 줄어들면 세상이 좋아질지는 의문이다. 권력 주위의 민간사업자들에게 이윤 기회가 다시 늘어나는 세상이 공정한지도 의문이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그런 식으로는 정권의 위기만 키우리라는 사실 말이다.
나원준 경북대 경제학과 교수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