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력산업 경쟁력 급속 약화
반도체 의존 산업기반 위태
경제위기 파고 돌파 힘들어
새로운 산업정책 토대 위에
신산업 육성 역량 강화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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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봉규 (전 대구시 정무부시장) |
우리나라는 1960년대 이후 시대상황과 산업여건에 대응한 정부의 산업정책과 민간의 노력이 어우러져 경제선진국이 된 예이다. 세계 어디를 둘러보아도 전통산업과 신산업의 전 분야에 걸쳐 완제품부터 부품소재에 이르기까지, 기술개발에서부터 최종제품의 대량생산과 수출까지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나라는 드물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러한 산업생태계가 무너지고 있다. 지난날 세계시장을 주름잡던 주력산업의 경쟁력이 급속하게 약화되어 반도체 등 한두 개 산업에 의존한 산업기반은 위태롭기 짝이 없지만 미래를 책임질 신산업은 여전히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
그 위에 더 심각한 문제는 언제부터인가 재정과 금융조정을 통한 거시수요관리 정책만 있고 미시적 산업정책이 약화된 상황이다. 개별산업에 대한 정책이 사라진 자리에 드디어는 기업과 산업에 대한 구조조정이나 신산업 육성과 같은 부분까지도 재무구조 중심의 판단이 힘을 얻고 있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산업정책 무용론자들은 말한다. 세계화된 경제체제에서 무역규범이 시퍼렇게 살아있는데 산업정책이 작동하겠는가. 우리의 산업구조는 이미 고도화되었고 무엇보다 민간의 역량이 커진 만큼 정부는 재정, 통화량, 이자율과 같은 거시지표만 관리하고 구체적인 산업의 발전방향과 내용을 결정하는 것은 민간과 시장에 맡기라고 한다.
그러나 산업정책의 내용이나 구체적 수단에 있어서는 과거에 비해 보다 시장친화적이고 민간주도로 바뀌어야겠지만 그렇다고 산업정책 자체가 불필요한 것은 아니다. 우리 경제는 소규모 개방경제이다. 세계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규모라 해도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질적 비중이나 영향력은 미미하다. 기축통화국도 아니다. 98년 외환위기야 우리의 잘못도 있었다지만 2008년 금융위기에서 보듯이 우리는 잘하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남의 잘못으로 인한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다. 이러한 상황은 앞으로도 반복될 것이다. 믿을 수 있는 든든한 산업기반이 유지되지 않으면 금융위기의 파고를 헤쳐나가기 어려울 것이다. 미시적 산업정책을 통하여 전통산업의 경쟁력을 유지해 나가면서 시대와 기술변화에 맞추어 새로운 산업을 계속 발굴 육성해야 할 필요성이다. 한두 산업에 의존해서는 5천만 인구가 4만달러 이상의 소득을 유지하기는 어렵다.
불황극복 대책으로서 재정이나 금융을 통한 수요관리 대책은 한계가 있다. 케인스식 수요확대 대책은 단기적인 응급처방으로서는 유용할 수 있으나 무한정 계속할 수는 없다. 수요창출이 바탕이 되어 공급확대로까지 연결되면 좋겠지만 왜곡된 소득주도성장 실험에서 보았듯이 현실에서는 작동하기 어렵다. 경제는 수요와 공급의 함수이다. 근본적으로는 누가 소비자의 구미를 당길 수 있는 제품을 시장에 내놓는가에 따라 현실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 경험적으로도 세계경제의 대반전을 가져온 것은 수요관리가 아니라 기차, 자동차나 스마트폰과 같은 혁신적 신제품의 등장이었다.
개별적 산업정책을 통한 경제회생이나 경쟁력 강화는 국가차원에서도 필요하지만 지자체의 경우 더욱 설득력을 가진다. 총량을 관리하는 수요관리 정책의 특성상 지자체가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지자체 안에서만 적용되는 이자율이나 돈 풀기는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기존산업에 무엇인가를 더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산업정책의 토대 위에서 신산업 육성과 공급역량 강화에 더 매달려야 할 때이다.
박봉규 (전 대구시 정무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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