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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텅 빈 마음·단절된 관계…얼어붙은 내면의 바다를 깨다

2022-12-02

'영남일보 문학상' 이은기 시인·이선우 소설가 나란히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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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 문학상(신춘문예) 당선자 2명이 시집과 소설집을 나란히 출간했다. 2018년 당선자인 이은기 시인은 시집 '하나가 빠졌습니다'를 펴냈고, 2015년 당선자인 이선우 작가는 소설집 '오후 두 시의 친절한 이웃'을 내놓았다.

'하나가 빠졌습니다'는 이은기 시인의 첫 번째 신작 시집으로, 영남일보 문학상 당선작 '조문'을 비롯해 '선유도 방향' '꽃도 없고 잎도 없는' '새로 돋은 풀들이 그때 그 모양으로 자라' 등 50편의 시가 실렸다.

하나가 빠졌습니다

발설되지 않는 침묵과 불안 의식
말할수록 존재 버리는 역설적 진술


하나가_표지
이은기 지음/파란/101쪽/1만원
이은기

이번 시집에서 시인의 시가 이루는 서정은 '텅 빈 마음'이다. 마음은 '발설되지 않는 침묵'이거나 '미리 죽음을 각오하는 불안 의식'이라 할 수 있다. 시인의 모든 진술은 마음을 비우기 위한 것이고, 존재를 텅 빈 것으로 만들기 위한 과정이다. 그러면서 '말할 이유를 상실하기 위해 말하고 있다'고 역설한다.

'꽃은 가깝고 빙하는 멀다 이것은 노트북의 화면 보호용 사진이다 빈 화면과 커서는 사진 너머에 있다 너무 가까이 있어서 손만 보인다 목을 감고 흘러내린 넥타이만 보인다(중략) 하지 말아야 하는 말 때문에 말이 많아진다 꽃은 크고 희미하다 멀리 있는 빙하는 작고 선명하다(중략) 오랫동안 빙하는 녹지 않고 꽃은 시들지 않는다 나는 보이는 것에 매달려 있다 붙잡히고 싶어서 붙잡고 있다'('꽃과 빙하' 중)

시 '꽃과 빙하'는 '말할수록 존재를 버리는' 역설을 잘 보여 주는 작품이다. 시인은 자신의 내면을 '녹지 않는' 빙하와 '시들지 않는' 꽃으로 비유한다. '빙하'와 '꽃'이라는 대비되는 두 이미지가 그러하듯 이 시편의 진술 또한 상충하며 '비우기 위해 말을 하는' 시인의 정서를 엿볼 수 있다.

박동억 문학평론가는 해설에서 "이은기 시인은 말의 의미를 잊고 말의 감동을 비운 뒤에서야 깨닫게 되는 말의 실체를 재현한다"고 설명했다.

채상우 시인은 추천 평에서 "이은기 시인은 '기대 없이 어제 없이' 오롯이 현재를 쓴다. 그래서 이은기가 쓴 문장들은 미래를 향해 전진하지도 않고 과거를 되돌아보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오후 두 시의 친절한 이웃

공포 대상으로 변한 친절한 이웃
나약한 인간의 고립과 상처 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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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우 지음/청색종이/308쪽/1만3천원
이선우

이선우 작가의 소설집 '오후 두 시의 친절한 이웃'은 총 여덟 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다. 이번 소설집은 2021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에 선정된 작품이기도 하다.

표제작 '오후 두 시의 친절한 이웃'과 '토끼마켓'은 나약한 인간의 단절과 그로 인한 불안을 주요 이야기로 다룬다. 친절한 이웃이 어떻게 공포의 대상으로 변하는지 그 과정을 들여다보는 동안 각자의 고립과 상처가 고스란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빌라로보스 전주곡'은 한 마을에 거대한 싱크홀이 생기면서 일어나는 공포와 인간의 이기적인 속성을 살피고 있다. 인간의 나약함과 관계의 단절은 주로 노인을 주인공으로 한 '소심한 복수가 아니었다면'과 '여름밤의 흑백영화' 등 여러 소설에 잘 드러나 있다.

'기서리에서 우리는'은 관계의 회복이 쉽지는 않지만 사람에 대한 진심을 이야기하고 있다. 부정할 수 없는 삶의 진실은 인간의 존재 자체를 다시금 인정하고 한 걸음 더 다가서게 한다. '그 밤의 연주'에서 마두금 연주는 잃어버린 마음을 회복하는 중요한 예시가 된다. 새끼를 외면했던 어미 낙타가 구슬픈 마두금 연주를 듣고 눈물을 흘리며 모성을 다시 느끼는 이야기는 이선우 소설가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인간성의 회복과 긴밀하게 연결된다. 관계는 단절됐고 급기야 고립 속에서 외로움과 상처를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이지만, 인간성의 회복은 그만큼 더욱 절실하게 다가오게 된다.

해설을 쓴 양진채 소설가는 "독자는 나약한 인간의 모습에서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되고, 어쩌면 우리는 '인간이란…' 말을 내뱉으며 삶을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가 빚어낸 이 소설이 갖는 힘일 것"이라고 평했다. 백승운기자 swback@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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