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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 (정치학) |
여야의 적대적 관계가 총선까지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에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총선까지 1년4개월여가 남았는데 국민은 이러한 여야의 반정치의 상황을 그때까지 지켜만 보고 있어야 하는가. 여야의 강경파가 과대대표되고, 여야 당내 온건파 의원들과 중도성향의 유권자의 목소리가 과소대표되는 상황이 해소되지 않으면 정치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는 상태로 전락할 것이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도가 미세하나마 반등하긴 했지만 여전히 낮은 지지율이다. 30%대에 고착화되고 있는 여야의 지지율은 극렬 지지층에 기대어서 하는 정치를 상징한다. '정치는 과학이 아닌 가능성의 예술이다'란 말이 지금처럼 무망하게 들린 적은 없다. 그래도 45% 정도의 중도성향의 유권자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는 극한 대결의 정치가 변화를 보일 가능성은 내년에 총선 분위기가 서서히 형성되기 시작될 때쯤일 것이다.
정치를 움직이는 원동력은 권력의지다. 개별 의원들은 자신의 당선이라는 변수에 의해서만 움직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장 여야의 강성 지도부에 의해 결정될 공천이라는 변수가 당내 민주주의를 좌절시키고 온건파 의원들의 입지를 협소하게 만든다. 그러나 수도권 의원들 중심으로 취약한 현재의 여야의 정당 지지도가 정치의 변화를 가져올 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수도권 의원들로서는 이 상태로 선거를 맞닥뜨리기에 너무 위험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정치'가 사라진 공간을 '법치'가 대체하고 '사법 리스크' 대 '장관 책임론'이 강 대 강 대치를 더욱 확대 재생산하는 이 구조는 양대 거대정당의 지역 기반인 영남과 호남을 지역구로 둔 의원과 수도권 출신 의원들 사이에 균열을 가져올 충분한 토양을 제공한다.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대표 측근 구속과 기정사실화되어 있는 이 대표 수사를 정치보복과 야당 탄압의 프레임으로 몰고 가는 것은 한계가 뚜렷하다. '이태원 참사'의 책임을 묻지 않는 여권의 태도는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이를 '윤석열 퇴진'과 '탄핵'으로 몰고 가는 것은 극단 지지층에게 편승하고자 하는 반정치적 퇴행, 그 자체라 아니할 수 없다.
여당도 윤핵관이라고 불리는 소수 그룹에 의한 정치가 계속해서 권위와 리더십을 가질 수는 없다. 대통령이 소수 그룹에 둘러싸여 중도층의 지지를 확보하지 못하는 협애한 정치가 반전의 계기를 보이지 못하고 총선까지 간다면 여권은 총선 승리를 담보할 수 없다. 차기 총선은 정권에 대한 평가의 프레임이 형성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여야 모두 협치와 보편에 입각한 정치가 아닌 극단과 대치에 의존해서 적대적 정치를 계속하는 한 정치가 설 땅은 없다. 여당 내부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함으로써 협소한 '법치'가 아닌 진정한 '포용'과 '통합'의 리더십을 보일 때 여야 관계는 물론이고 여권의 혈로도 열릴 수 있다.
민주당이 당장은 이 대표의 호위무사로 기능하는 측면이 강하지만 당 대표가 검찰에 소환되는 등의 리더십의 위기로 연결되면 친명계와 비이재명계의 분화와 갈등은 노골화될 가능성이 높다. 여권 역시 윤 대통령의 지지도가 고착화된다면 당내 비윤계를 중심으로 분화의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다. 당장 지방선거나 총선거가 없다는 사실이 역설적으로 정당 체제를 적대적으로 만들고, 선거가 다가올수록 정치구조의 변화가 도래할 수 있다면 정당과 정치인들은 이에 대비해야 한다. 절제와 관용이 사라진 정치가 이대로 지속될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한국 정치가 이러한 방식으로 작동될 수는 없다.
최창렬 용인대 통일대학원장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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