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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일 년 내내 시범경기

2022-12-20

[문화산책] 일 년 내내 시범경기
윤규홍 아트디렉터

지난해 출판계가 거둬들인 수확 중에 '정병규 사진 책'이 있다. 사월의 눈 출판사 전가경 선생이 기획한 이 책의 지은이 정병규는 북디자인의 선구자 격 인물로, 대구 출신이다. 책을 디자인한 사람은 다음 세대 디자이너의 대표 격인 정재완 영남대 교수다. 내가 정병규 선생을 알게 된 건 사진작가 구본창 선생을 통해서였고, 이후에 한국화가 정용국 선생의 주선으로 정재완 선생과도 알게 됐다. 이런 얽힘이 재미있다. 누가 예술 쪽에서 뛰어난 인터뷰어를 꼽으라면 난 김혜리라고 말해왔다. 미술을 공부하다가 영화로 갈아탄 김혜리 선생이 씨네21 기자 시절에 정병규 선생과 인터뷰했던 글은 지금도 기억에 남아있다.

그 인터뷰가 왜 인상적이었냐면, 정병규 선생이 밝힌 취향에 공감이 갔던 까닭이다. 하나는 겉표지를 버리고 압핀으로 꽂아서 책을 물건으로 취급하는 도서관을 싫어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야구를 좋아하는 이유였다. 야구는 다른 스포츠나 예술 장르와 달리, 거기에 끝없이 몰입하기보다 자꾸 딴생각을 하게 만든다는 논리가 그것이다. 낚시나 현대미술처럼 말이다. 야구는 낚시꾼이나 여행자 같은 평론가의 모습('문화산책' 12월13일자)처럼 뭔가를 내다보게 만든다. 점심 먹으면서도 저녁 메뉴를 생각하는 여행자의 모습을 떠올리면 된다. 글을 쓰며 다음 글을 생각하는 게 글쟁이의 처지인데, 나는 요 몇 년간 야구를 보면서 같은 느낌을 받았다.

어떻게 된 일인지, 삼성 라이온즈 야구는 일 년 내내 시범경기를 보는 것 같다. '올 시즌 성적은 포기했고, 내년을 기대하자 신인들 커가는 모습 보는 게 그나마 낙'이란 말은 약팀 팬들의 흔한 푸념이다. 라이온즈가 어떡하다 이렇게 되었나? 프로야구단에 대한 구단주의 방침, 운동 재능과는 들어맞지 않는 몇몇 선수의 윤리의식, 그 일탈을 통제하려고 엉뚱한 코치진을 뽑은 결정, 투수놀음인 야구 특성을 무시하고 홈런 공장으로 설계된 라이온즈파크와 그걸 몰랐던 시 행정. 팬들로선 내막을 알 수 없는 어른들의 사정이 있을 것이다.

솜씨 없는 예술 비평의 예가 있으니, '기대해 본다'로 마무리하는 끝 문장이다. 지금보다 훗날을 기대하는 건 막연한 희망이다. 마블 히어로 영화는 언제부터인가 긴 예고편 영상이 되어버렸다. 이같이 재미도 감흥도 없는 떡밥 뿌리기는 어디에나 있다. 청년예술가 지원은 지금 이룬 것보다 잠재성을 본다. 그렇다 보니 웬만큼 완성도가 떨어지는 작품도 이해하고 넘어가는 부분이 있다. 제도 지원은 청년으로 남아 계속 누리고 싶고, 명성은 대가 급으로 인정받고 싶은 예술가의 자아 분열이 종종 있다. 반면에 책 한 권의 만듦새로 평가하는 북디자인 영역은 청년이란 접두어를 잘 안 붙이는 이유가 있다.
윤규홍〈아트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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