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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지대] 기록되지 않는 역사를 기록해 가는 사람들

2022-12-26

[단상지대] 기록되지 않는 역사를 기록해 가는 사람들
박승주 (대구경북학연구센터 대구읽기대표)

한 달에 한 번 저녁 9시부터 자정이 가까운 시간까지 인터넷 화상회의 방식으로 지역학 공부를 하는 모임이 있다. 양진오 대구대 교수가 주도하는 '북성로대학'이라는 스터디그룹이다. 원래는 대구지역 학자 몇 명이 원도심인 북성로에서 만나 '지역'과 '장소'를 테마로 한 소규모 독서모임을 진행해 오던 것이 코로나사태 이후 인터넷 화상회의 방식으로 전환되었다. 덕분에 시공간의 제약이 줄어들어 지금은 대구뿐만 아니라 서울, 대전, 부산, 삼척 등지의 연구자가 결합하여 공부의 밀도가 더 깊어졌다. 올해 마지막 모임은 지난 13일 저녁에 있었다. 이날은 얼마 전 '동주의 시절'(토향·2022)을 펴낸 인천 관동갤러리의 도다 이쿠코씨를 초대해 책의 내용과 출판계기에 대해 듣는 시간을 가졌다.

책 소개를 잠깐 하자면 '동주의 시절'은 '간도사진관' 시리즈로 기획된 첫 번째 권이다. '간도사진관'은 도다 선생이 사진작가인 남편(류은규씨)과 함께 30년에 걸쳐 중국 동북 삼성(옛 간도)지역을 오가며 수집해 온 5만여 점에 달하는 재중 동포 삶의 기록을 소개하는 시리즈물이다. 이들 부부가 처음 '간도' 지역에 관심을 가졌을 무렵에는 항일운동가의 발자취를 기록하는 일을 했다. 그러나 점차 그곳 사람들을 만나면서 역사에 기록되지 않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이 궁금해졌다고 한다. 류은규 작가는 부모가 돌아가시면 사진을 태워버린다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너무 안타까워 개인 소장 기념사진까지 모았다고 했다. 코로나로 인해 뜻하지 않게 여유가 생겨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사진을 정리하게 되었다고 한다. '역사를 증명하는 자료사진, 재중 동포 사진사가 찍은 기념사진이나 생활에 밀착한 다큐멘터리' 그리고 류은규 작가가 직접 촬영한 작품 등 '다양한 사람이 서로 다른 의도로 찍은 사진을 한곳에 모아 정리하다 보니 재중 동포의 삶의 흔적을 기록하는 광대한 생활사 다큐멘터리가 되었다'고도 했다. 그래서 기획한 것이 '간도사진관' 시리즈다.

한일커플인 이들 부부가 재중 동포의 삶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도다 선생은 1970년대 말에 처음 한국에 왔다. 대학생 시절 한일교류 프로그램에 참가한 것이 계기였다. 그런데 한국에 온 이후로 만나는 사람마다 '일제시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녀에게 물었다고 한다. 그것이 충격이었다고 한다. 일본에서 역사를 공부했지만, '일제시대'라는 용어를 생전 처음 들어봤다고 했다. 그래서 한국에서 역사 공부를 새로 시작하게 됐고 나중에는 중국의 시각도 궁금해져서 하얼빈으로 가 중국어 연수를 한다. 그러나 때마침 천안문 사태가 터져 하얼빈에 있는 학교에 다니기가 힘들어져서 다시 연변대학으로 가서 조선족의 역사를 공부했고 거기서 또 다른 시각의 역사 이야기를 듣게 됐다고 했다.

도다 선생은 사진을 모으다 보면 어떤 사진에는 이 학교는 친일학교라는 평가가 달린 것을 종종 발견한다고 한다. 도다 선생은 우리의 삶은 흑백으로 나누기는 힘든 회색 부분이 있다고 여긴다. 그래서 그들이 남긴 사진 기록을 통해 간도의 모습을 고스란히 통째로 전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들이 하지 않으면 버려질 자료가 너무 많다며 앞으로도 꾸준히 사진 정리와 출판 작업을 이어가겠다는 말도 했다. 우리도 미처 몰랐던 재중 동포의 삶을 일본인 작가가 오랜 세월에 걸쳐 발굴하고 기록하는 모습을 보며 그녀의 진정 어린 모습이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시간이었다.

박승주 (대구경북학연구센터 대구읽기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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