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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 신춘문예 당선 장기복역수 한이로씨 인터뷰] 창살 안 마지막 몸부림 "남은 삶, 詩 쓰며 속죄"

2023-01-05

"세상과 연 잇고 싶은 꿈…유폐된 시간 속 창작 통해 성취"

[영남일보 신춘문예 당선 장기복역수 한이로씨 인터뷰] 창살 안 마지막 몸부림 남은 삶, 詩 쓰며 속죄
영남일보 문학상 당선자 한이로(필명)씨가 영남일보에 보내 온 편지.

"내 시(詩)는 독백에 가깝다."

유폐되어 고독했을 그곳에서 그는 '혼자 묻고 답하는 시'를 썼다. 독백과 상념의 글쓰기. 그는 그것이 '독백'에 가깝다고 했지만, 그의 시는 스스로를 독려하는 '그만의 고해성사'처럼 보였다. 애절하게 호소하는 쓸쓸하고 낮은 독백, 여전히 세상과의 연을 이어가고 싶은 그의 꿈은 그렇게 한 줄의 시가 되어 창살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읽고 쓰고 지우고 다시 쓰며, 그는 마침내 꿈에 한 발짝 다가섰다. 부산교도소에서 만난 영남일보 문학상(신춘문예) 당선자 한이로(필명)씨와의 인터뷰는 짧았다. 30분도 채 되지 않은 접견 시간을 통해 그의 삶의 이력을 짐작해 내기는 어려웠다. "당선을 축하한다"는 말에 그는 "감사하다"는 짧은 인사말과 함께 가벼운 묵례로 답했다. 인터뷰 내내 그는 또박또박 끊김이 없었고, 시에 대한 생각을 담담하게 들려줬다. 오늘 영남일보에 보도하는 기사는 부산교도소 접견장에서 진행한 한씨와의 인터뷰와 이후 그가 영남일보에 보낸 편지를 바탕으로 작성했음을 밝힌다. '한씨의 시 선생' 이용헌 시인의 도움도 받았다.

이용헌·이민하 시인과 인연
수년간 서신으로 詩 배우기도

"형기 마쳐도 죄는 안 사라져
글쓰며 나은 사람 되게 노력"


▶언제부터 시에 관심을 가졌고, 어떤 방식으로 배웠나.

"오래전 같은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던 한 시인을 만나면서 시를 가까이하게 됐다. 이후 몇 년간 시 작법서로 독학을 하다가 한계에 부딪혀 중단했다. 그러던 중 방송통신대 국문학과에 입학했고 문학동아리 문을 두드렸다. 동인 가운데 이용헌 시인과 교류를 하며 수년간 서신을 통해 지도를 받았다. 3·4학년 연속으로 방송대 문학상을 수상하고 메이저급 문예지 신인 공모에서 최종심에 오르기도 했다. 이때부터 등단에 대한 꿈을 가지게 됐다. 한때 수녀님의 섭외로 이민하 시인과 연결되어 서신을 통해 시를 배우기도 했다."

(한씨에게 시를 가르친 이용헌 시인은 "편지를 통해 보내오는 시를 꼼꼼하게 첨삭지도 하며 응원해줬다. 처음에는 시가 관념적이고 아마추어 수준이었지만 4~5년 전부터 완성도가 높아지고 자기 세계를 구축하는 듯했다"고 말했다. 이 시인은 또 "2018년 호남지역의 한 신문사 신춘문예에 최종심까지 올라갔고, 지난해에는 당선 통보까지 받았지만 취소됐다. 담당 기자와 한씨가 중간에 연락이 안 되면서 신문사에서 한마디 상의도 없이 취소를 시켰다"고 털어놓았다. 이 시인은 "요즘도 2~3일에 한 번씩 전화통화를 한다"며 "영남일보에 감동을 받았다"고 거듭 감사 인사를 전했다.)

▶수감생활을 하면서 시를 쓰려면 많은 제약이 따를 것으로 짐작된다. 어떻게 극복하고 있나.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공간이 없는 것이 가장 큰 제약이다. 또 컴퓨터 워드 프로그램 사용도 필요했다. 그래서 컴퓨터를 활용하는 직업훈련 과정을 수년간 지원했다. 직업훈련을 지원하게 되면 과정이 개설된 타 교도소로 잠시 갈 수 있게 되고, 그 기간은 독방생활을 할 수 있다. 이때 개인적인 시간을 갖고 사색하며 창작활동을 할 수 있었다."

▶영남일보 문학상 당선작 '데칼코마니'는 어떤 의미의 시인가.

"당선작은 어떤 구체적 메시지 전달을 위한 시라기보다 이미지를 표현하는 시에 가깝다. 쌍둥이 자매의 미묘한 관계와 감정을 묘사했다. 정체성에 대한 인간의 심리를 이야기한 시다."

▶시는 당선자에게 어떤 의미인가.

"유폐된 시간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기 위해 '창작'을 택했고, 상대적으로 가장 자유로운 것이 문학(글쓰기)이었다. 시인이라는 새로운 꿈이 생겨 나 자신을 놓지 않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과정을 통해 조금이나마 성장한 듯하고 망가진 인생이지만 이곳에서 무언가 이뤄낼 수 있다는 성취감과 자존감을 얻기도 한다."

(한씨는 시를 쓰다 그림도 배우면서 재능을 보이기도 했다. 몇 년 전에는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그림은 어떤 과정을 통해 배웠나.

"정식으로 그림을 배운 적은 없다. 시를 쓰기 위한 모티브를 찾던 중 미술관 전시 관람을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대신에 전시 도록이라도 보고 싶었다. 한 미술관에 도움을 청했는데, 시를 쓰는 큐레이터와 인연이 닿아 교류하면서 뒤늦게 그림을 시작하는 계기가 됐다. 그분의 도움을 받아 그 후 두 번의 단체전과 개인전까지 열었다."

▶앞으로의 계획은.

"시와 그림이라는 두 가지 소통방식을 통해 나의 메시지를 전할 생각이다. 주변 여건상 쉼이 있을지언정 중단은 없을 것이다. 예술의 근본은 진·선·미라고 생각한다. 그것에 대한 추구를 통해 나 자신에 긍정적 변화가 이뤄진다고 본다. 무엇보다 형기를 마쳐도 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작품활동을 하면서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보속하며 살아가는 게 최선의 삶이라고 생각한다."

백승운기자 swback@yeongnam.com
임성수기자 s018@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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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수

편집국 경북본사 1부장 임성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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