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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삶과 죽음의 비애, 동트는 새벽의 연무로 피어오르다

2023-01-27

10년 만에 낸 여섯 번째 시집
생사 오간 시인 개인적 경험
나이 듦에 대한 소회도 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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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죽음과 삶의 비애를 동터 오는 새벽의 연무로 전환해 낸다. 그것은 살아 숨 쉬는 모든 것을 무력화하는 시간의 위력을 절감하면서 생을 끝끝내 탐구해 내려는 의지의 발산이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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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옥관 지음/문학동네/124쪽/1만원

등단 35주년을 맞은 장옥관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이다.

시인은 "10년 만에 내는 시집이라 첫 시집을 낼 때처럼 다소 설레는 기분이다. 그동안 시를 안 쓴 건 아니지만 무작정 시집을 내는 게 능사가 아니란 생각이어서 자제했다. 방앗간 떡가래 끊듯이 쓰는 족족 시집으로 묶어 내는 게 과연 옳은 일인가 싶었다. 이전 시보다 변화된 모습을 보여줘야 시집 낼 자격을 얻는 게 아닐까 여겼다. 10년 동안 쓴 시 중 약 3분의 2를 버렸다"고 말했다.

이번 시집에 가장 두드러지는 화두는 죽음의 이미지다. 시집의 표지에서부터 새하얀 뼈를 연상하는 이미지가 스며들어 있다. 하지만 시인은 그 비애를 동터 오는 새벽의 연무로 전환해 낸다. 살아 숨 쉬는 모든 것을 무력화하는 시간의 위력을 절감하면서 생을 끝끝내 탐구해 내려는 의지의 발산이다. 새로 터져 나오는 미지의 목소리를 계시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네가 내뱉은 말들, 허우적거리며 소용돌이쳐 가라앉는 네 말들, 소금처럼, 물에 녹는 소금처럼 아아, 그러나 햇빛 들면 다 사라질 말들, 막막한 시공간을 헤매는 중음신의 말들, 입술에 허옇게 말라붙은 말들, 그예 말들은 살아오지 못하고 그 격렬했던 꿈의 말들, 되돌리지 못할 꿈자리가 죽은 꽃나무 같아서'('입술에 말라붙은 말' 부분)

특히 이번 시집은 병을 앓으며 생사를 오간 시인의 개인적인 경험과 밀접하게 닿아있다.

'나는 지금 녹물 든 사람/ 링거 수액 스며드는 혈관 속 무수한 계절은 피어나고 거품처럼 파꽃이 피고/ 박새가 부리 비비는 산수유 가지에 노란 부스럼이 돋아나고// 두꺼운 커튼 드리운 병실 바깥의 고궁 처마에 매달린 덩그렁 당그랑/ 쉰 목소리/ 파르라니 실핏줄 돋은 어스름 속으로/ 누가 애 터지게 누군갈 부르나니, 그 종소리'('내 아름다운 녹' 부분)

시인은 "지난해 봄 서너 달 동안 생사를 헤맸다. 늦겨울에 병원에 들어갔는데 정신 차리고 보니 초여름이었다. 중환자실에서 나와 봄이 지나가는 걸 못 봤다고 했더니, 담당 간호사가 주렁주렁 달린 호스를 모조리 뺀 후 휠체어에 태우고 보호자 휴게실로 데려가 고궁의 꽃을 보여줬다. 참 눈물겨운 일이었다"고 회상했다.

나이 듦에 대한 소회도 담담한 시어로 풀어낸다.

'나는 어제보다 조금 더 늙었다// 그젠 삼십 년 입은 바지를 버렸다/ 옷을 버리는 일은 슬프다/ 버리고 버림받는 일은 유정(有情)한 일이다// 다시 일요일이라서 슬프다/ 하루하루를 버린다/ 어제보다 우주가 조금 더 옮겨 앉았다'('일요일이다' 부분)

시인은 "다섯 번째 시집을 낸 게 50대 후반이었다. 갑년을 지내고 보니 앞날보다 지나온 날에 먼저 눈길이 갔다. 시집의 마지막 시처럼 그 자체가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한편으로는 나이 듦 자체가 아름다운 일이라고 여겨진다. 오래된 적포도주 같은 느낌이랄까. 사람은 자신이 살아낸 몫까지만 삶과 인간을 이해할 수 있다. 삶의 이슥함을 더듬어낼 수 있는 능력은 나이 듦이 주는 값진 선물이 아닌가 싶다"고 전했다.

소유정 문학평론가는 해설에서 "부재로 현존하는 이들과 자기 자신의 현존에 대한 증명으로 장옥관의 시는 계속해서 벼려질 것이다. '생/ 그 한마디가 그저 어안이 벙벙할 뿐'이지만, 그 순간에도 '무심코 찾아온 이 말이 정작 어디서 온 건지 왜 떠올랐는지' 기원을 궁금해하는 건 오직 시인뿐이기에 거친 숫돌로 반짝 날을 세운 언어로 하여금 우리에게 '돌의 탄생'과 같은 시적인 순간을 선사할 것"이라고 평했다.

백승운기자 swback@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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