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가루 휘날리며 꽃대춤, 꽃 같았을 그들의 영혼 달랜다
2·18지하철참사 추모 마임 '원앙부인의 꽃밭'
망자 불러 꽃구경…유족 다독일 화사한 꽃무대
굿·불교 영산재·궁중의례에 강조되는 꽃장식
한국인 무의식에 가득한 '꽃밭' 모티브 공연
'2021온라인예술페스티벌무巫MU'에 참여한 비디오마임 '작두'의 한 장면. 〈영상작가 주형돈 제공〉 |
◆지하철 참사에서 피어난 종이꽃
산천초목 속잎이 난디
구경가기가 얼화 반갑도다
꽃은 꺾어 머리에 꽂고 잎은 따다가 얼화 입에 물어
날오라 하네 날오라 하네 산골처녀가 얼화 날오라 한다
돋아오는 반달처럼 도리주머니 주워놓고
만수무강 글자를 새겨 수명당사 끈을 달아
정든 임 오시거든 얼화 채워나 봅시다
동백꽃은 피었는데 흰눈은 왜 오나
한라산 선녀들이 춤을 추며 내려온다
한국 전통 장례문화 '꽃상여 나가는 날' 모습. |
정가 가수 강권순이 부른 제주도 구전민요다. '원앙부인의 꽃밭'이라는 내 마임 공연에 늘 등장하는 곡이다. 그리고 이 작품은 2·18대구지하철참사가 그 출발점이다. 초기부터 해마다 열 번이 넘게 추모 퍼포먼스가 나에게 돌아왔다. 늘 같은 내용을 반복할 수 없으니 새 작품을 위해서는 해마다 그 사건의 전말을 다시 되새겨야 했다. 그렇게 내용을 구성하는 나도 힘들었지만 내 공연을 보면서 당시의 일을 떠올리는 유족을 생각하면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4주기를 하루 남겨 놓았을 때였던 것 같다. 새로운 형식의 추모 퍼포먼스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해 차일피일 미루다 바로 전날 밤에서야 아차 싶은 마음으로 준비에 들어갔다. '이번엔 화사하게 하자'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떠오른 것이 꽃이었다. 그리고 뒤따라온 명제 하나.
"꽃은 누구나 좋아한다!"
누구에게나 두루 통하는 것이 통속이다. 꽃은 통속적인 성격을 가지면서도 그 격을 잃지 않는다. 꽃은 모든 이들의 공감을 얻으면서도 진정성을 담을 수 있는 훌륭한 소통의 도구다. 동시에 꽃은 축제다. 망자를 불러 꽃구경을 가자 할 생각이었다.
구경가기가 얼화 반갑도다
우리나라 사람들만큼 해구경, 달구경 그리고 꽃구경을 좋아하는 민족이 또 어디에 있을까? 모두가 애도한 지 석삼년이 지났으니 툭툭 털고 이제 매년 꽃구경 가는 길에서 만나자는 것이다. 상여도 꽃상여가 아닌가?
꽃을 만들어야 했다. 갑작스러운 아이디어라 무엇으로 꽃을 만들어야 할지 난감했다. 넋전을 만들기 위해 사놨던 한지로 꽃잎과 꽃받침을 만들었다. 그리고 창고에서 대나무 발을 찾았다. 대나무 살을 풀어 꽃잎과 꽃받침을 붙이니 이 세상에 없는 꽃이다! 대략 50송이 정도를 밤새워 만들고 그것을 낚싯대 끝에 달았다. 목련을 닮은 새하얀 꽃 50송이. 화사했다! 다음 날 아침 추모식이 시작되고 나는 그 꽃대를 들고 객석 뒤에서부터 제단을 향하여 천천히 걸어갔다. 객석이 흐느끼기 시작했다. 높이 들어 올린 새하얀 꽃 50송이. 그 화사한 꽃다발이 유족과 추모객을 울렸다. 그 축제의 꽃다발을 들고 나도 울었다. 제단 앞 무대에서 꽃대 춤을 추며 미리 꽃송이마다 가득 채웠던 꽃가루를 허공에 날렸다. 공교롭게도 대부분의 꽃가루는 제복을 차려입은 경찰서장과 소방서장, 그 밖의 내빈 머리 위에 수북이 떨어졌다. 나는 속으로 웃었다. 적어도 내 생각에는 저들이 이 사건에 책임이 있는 당사자이기 때문이었다. 스피커에서는 여전히 산천초목이 흘러나오고….
꽃은 꺾어 머리에 꽂고 잎은 따다가 얼화 입에 물어
◆서천에는 꽃밭이 있다.
그 뒤로 나의 많은 공연에 꽃이 등장했다. 어느 날 한국사를 연구하는 선배로부터 문자가 왔다. '원앙부인을 보라.' 인류학자 조흥윤의 '한국의 원형신화 원앙부인 본풀이'라는 책을 통해 꽃에 대한 우리나라 고유의 신화를 알게 되었다. 그것도 죽은 뒤에 가는 그곳 서천은 온통 꽃밭이라는 이야기다. 우리 선조의 죽음에 대한 상상력 그 안에는 꽃이 가득했다. 무릎을 쳤다. 그래서 꽃상여구나! 우리네 마을의 뒷동산은 남향이고 그래서 봄이 오면 꽃들이 만발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곳에 묻힌다. 그러니 우리는 죽은 뒤에는 꽃밭에 간다고 상상하게 되었다는 조흥윤의 해석이다.
굿이나 불교의 영산재 그리고 궁중의례를 보면 유난히 꽃장식이 많다. 무가 바리데기에도 서천에서 가져온 꽃으로 사람을 살리는 이야기가 나온다. 지난해 가을 지화명장 김태연 교수의 지화 전시에 내 공연에 늘 사용하는 지화가 초대를 받았다. 내가 만든 꽃에 처음으로 하늘꽃이라 이름도 붙였다. 우리나라 지화장인이 총출동했다. 영광스러운 자리였지만 전통지화를 전승하는 지화장인들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서글퍼졌다. 만들기도 어렵고 내구성도 없어서 돈도 안 되니 배우려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꽃이 내구성을 갖는다는 것은 모순이다. 꽃은 잠시 피고 진다. 우리 인생의 어느 시기처럼. 꽃 같은 나이라고 하지 않는가. 어떤 청춘에 대해서는 한번 피어 보지도 못하고 갔다는 말을 한다. 어쩌면 한국 사람에게는 꽃처럼 한번 활짝 피어 보는 것이 인생의 가치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렇지 못한 것이 가장 큰 한이 된다. 임사체험을 했다는 사람들 역시 꽃밭에 갔다 왔다는 말을 많이 한다. 한국 사람의 집단 무의식에는 그렇게 꽃밭이 있을지도 모른다. 나도 그렇게 말하고 싶다. '원앙부인을 보라.'
원앙부인 본풀이는 원래 무가였던 것이 불교의 옷을 입고 월인석보에도 실리고, 제주로 가서는 이공본푸리라는 무가가 되었던 것 같다. 이공본푸리에 등장하는 '할락궁이'라는 인물은 영화 '신과 함께'에 소개되어 조금은 친숙할 수도 있다. 서천이라 이름하는 저승에는 꽃밭이 있는데 이 꽃밭이 시들면 이승도 문제가 생긴다는 설정이다. 원앙부인은 이 꽃밭을 살리는 과정에 몸이 세 토막으로 잘려 죽게 되며 꽃에 의해 다시 살아나게 되는데, 마침내 죽은 영혼들을 그 꽃밭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여기서 꽃이란 죽은 뒤의 영원한 생명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이승에서의 삶이 꽃처럼 생명력이 있기를 바라는 기원이기도 하다.
◆난 열매가 아닌 꽃이다
최근 인기 드라마 '일타강사 스캔들'에 나오는 아이들과 학부모의 관계를 보면 과수원이나 비닐하우스가 떠오른다. 꽃 같은 나이에 열매를 강요당하는 이야기. 꽃이 펴야 열매를 얻을 수 있지 않으냐는 상식을 이야기하게 되면 우리 사회의 현실이 상식적이지 않다는 답이 돌아올 것이다. 어느 시절에 꽃도 피우고 열매를 맺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알고 보면 그들이 말하는 현실은 사실이 아니라 자신들의 불안이다. 불안은 다른 사람들의 삶을 카피하게 만들고 결국 그 인생은 가치를 잃어버린다.
도종환 시인의 시에 마임을 해달라는 제안이 들어왔다. '꽃밭'이라는 시를 선택했다. '원앙부인의 꽃밭'이라는 작품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도종환 시인은 낭송 중에 내 마임을 보며 울컥했노라 하지만 난 나중에 그 시를 내 목소리로 녹음하면서 여러 번 울컥했다. 그 첫 번째 이유는 그 시에서처럼 나의 어머니도 마당에 꽃밭을 가꾸셨기 때문이다.
내가 분꽃씨 만한 눈동자를 깜빡이며
처음으로 세상을 바라보았을 때
거기 어머니와 꽃밭이 있었다
창밖에는 늘 키가 큰 해바라기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기억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아마도 그런 기억이 지금까지 살아오는 길에 미래에 대한 불안의 그림자를 쫓아내 주었을 것이다. 울컥했던 두 번째 이유는 삶의 비장함보다는 화사함 쪽으로 늘 도망가던 내 방식에 대해 변명하고 지지해준다 느꼈기 때문이다.
지금도 내 마음의 마당 끝에는 꽃밭이 있다
내가 산맥을 먼저 보고 꽃밭을 보았다면
꽃밭은 작고 시시해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꽃밭을 보고 앵두나무와 두타산을 보았기 때문에
산 너머 하늘이 푸르고 싱싱하게 보였다
꽃밭을 보고 살구꽃 향기를 알게 되고
연분홍 그 향기를 따라가다 강물을 만났기 때문에
삶의 유장함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내 역할은 꽃을 피우는 것이다. 아니 꽃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열매는 내가 맺는 것이 아니고 맺히는 것이다. 꽃이 되는 것이 먼저다. 아름다움을 뽐내고 향기를 퍼트리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 보는 것. 그래서 내 얼굴이 환하게 꽃처럼 피어나는 것. 그것이 풍요의 시대를 살아가는 방식이며 세상을 백화만발하는 곳으로 만드는 길이다.
마임이스트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