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 오랜시간 두고 진화
유형·입지·점유형태에 대한
선호도와 기능도 변화할 것
이젠 부동산정책서 탈피
새 공간정책으로 진화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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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식 (영남대 명예교수) |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보고 깜짝 놀라는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교회, 카페, 아파트가 바로 그것이다. 공항에 도착하면 교회의 십자가가 많은 것에 놀라고, 도심으로 들어오면 아파트와 카페가 많은 것에 놀란다고 한다. 그만큼 아파트가 주거공간의 중심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최근에는 대도시와 중소도시는 물론이고 농촌 지역도 아파트로 주거유형이 빠르게 변하고 있어 가히 아파트 천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파트가 가지는 상징적 의미도 다양해서 대도시에서는 아파트가 부(富)와 신분의 상징처럼 된 지 오래다. 그래서 서울 강남의 일부 아파트는 드라마의 제목처럼 보통 사람들이 살 수 없는 캐슬(castle)로 묘사되기도 한다.
사실 미국과 유럽의 일부 국가들을 보면 주택의 유형과 입지에 대한 선호가 우리나라와 전혀 다르다. 이들 나라는 부자들이 산허리 구릉지(hill-side)에 있는 근사한 단독주택에 살고 싶어 한다. 그리고 미국의 일부 대도시는 지하철 노선이 들어온다고 하면 반대하는 곳도 있다. 왜냐하면 지하철 노선으로 인해 저소득층의 주거지역으로 전락할 수 있는 우려 때문이다. 실로 우리나라의 대도시와는 전혀 다르다. 서울의 경우 지하철 역세권의 영향력은 매우 크다. 지하철의 수송분담률이 매우 높을 뿐만 아니라, 통행의 시간가치가 매우 커서 시간이 곧 돈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최근 주택소비에 대한 새로운 변화는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나타나고 있다. 재택근무와 유연근무제의 확산이 바로 그것이다. 재택근무와 유연근무제의 확산으로 주택이 단순히 쉬고 잠자는 공간이 아니라, 업무공간의 기능도 담당하고 있다. 물론 많은 기업이나 공공기관들이 위성 사무실이나 스마트워크 센터의 운영을 통해 직원들의 어려움을 해결하고 있지만, 코로나 팬데믹이 끝나더라도 재택근무와 유연근무제는 일정 부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일찍이 앨빈 토플러(A. Toffler)는 휴대폰의 보급과 IT 혁명으로 미래의 주택은 전자주택(electronic cottage)이 될 것으로 예견했고, 재택근무가 대세(大勢)를 이룰 것으로 전망했다. 비록 앨빈 토플러가 예측한 대로 재택근무가 모든 업종에 걸쳐 대세를 이루지는 못할지라도, 일부 업종에 있어서는 피할 수 없는 추세를 보일 것임은 분명하다.
우리나라는 1980년대부터 아파트의 보급 확대로 아파트가 주택의 대명사로 자리 잡게 되었으나, 아파트를 최고의 주거공간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산업화와 도시화를 거치면서 도시공간에서 가장 효율적인 주택 유형으로 자리 잡았을 뿐이다. 여기에다 코로나 팬데믹과 IT 혁명이 주택의 기능을 단순한 주거공간에서 주거와 업무가 혼합된 공간으로 바꾸고 있다. 이른바 '홈 오피스'의 등장이다. 이런 이유로 인간관계의 중심도 직장에서 거주지, 동호회, 온라인 커뮤니티로 이동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테마형 주택(예: 고령자 주택, 청년 주택, 예술인 주택)에 대한 관심도 증가하고 있다.
주택은 오랜 시간을 두고 진화해 왔고, 앞으로도 진화할 것이다. 주택의 유형(아파트, 주거용 오피스텔, 연립주택, 단독주택 등), 입지, 점유형태(자가, 전세, 월세)에 대한 소비자의 선호도 변화할 것이고, 주택의 기능도 다양하게 변할 것이다. 여기에다 앞으로는 인구와 가구 구조의 변화도 클 것으로 전망된다. 주택정책이 부동산정책에서 탈피해 종합적인 주거정책으로, 그리고 새로운 공간정책으로 진화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고 거기에는 중앙정부가 해야 할 몫도 있고, 지방정부가 해야 할 몫도 있다.
영남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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