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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훈 서울본부기자 |
요즘 서울에선 주말마다 장외집회가 한창이다. 지난 1일엔 폭염 특보까지 발효된 날씨 속에 서울 숭례문 앞에서 열린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 방류 항의집회에 10만명(더불어민주당 추산)이 모였다. 민주당이 주최한 만큼 주된 타깃은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여당이었다. 이와는 별개로 촛불승리 전환행동이라는 단체에선 윤석열 대통령 퇴진 집회를 지난해 8월부터 거의 매주 열고 있다.
이 같은 집회를 보니 자연스레 4년여 전 당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에서 진행한 장외 투쟁이 떠오른다. 당시 황교안 당 대표를 시작으로 현직 의원을 포함한 당 인사들의 '삭발'이 이어졌고, 국회 일정을 보이콧하는 경우가 잦았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촛불의 반대급부로 생겨난 이른바 '태극기 부대'가 꾸준히 집회를 벌이며, 진보 진영과 맞섰던 것도 대표적인 장외집회다.
보수와 진보가 서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사례가 반복되는 걸 보고 있자니 참 안타깝다는 생각이다. 저마다 이유가 있겠지만 자세히 따져보면 상대를 향한 '악마화'에만 빠져 있는 것 같다. 실제로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의 저서 '퇴마정치'에선 "민주당은 윤석열을 적으로 간주한 것은 물론이고 최악의 적이라는 걸 강조하기 위해 지지자들까지 가세해 '악마화'의 대상으로 만들었다"는 평이 나오기도 했다.
과거 국민의힘과 지금의 민주당은 다르지 않다. 누가 무엇을 잘못했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을 뿐, '비난 본능'만 일삼는다. 한스 로슬링의 책 '팩트풀니스'를 보면 '비난 본능'이란 좋은 일이 일어났을 때, 그 이유를 너무나 단순한 근거에서 찾으려는 것을 뜻한다. 문제의 본질을 보지 못하게 상황을 흐리고 비난의 화살을 다른 방향으로 돌리다 보니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새로운 갈등만을 계속 유발하는 것이다. 안 좋은 일이 일어나면 누군가를 비난 대상으로 삼아 문제의 원인으로 보는 현재 우리의 정치 상황을 너무나 잘 설명하는 이론이다.
매일 다니는 버스에서 기사의 '졸음운전'으로 사고가 났다고 가정해보자. 기사만을 탓하고 갈아치우면 되는 것인가 아니면 기사가 졸음을 할 수밖에 없었던 전체 상황을 들여다보고 근본적인 재발 방지에 나설 것인가. 답은 명확하다. 이제는 정치제도, 개헌에 대해 근본적 고민이 필요한 타이밍이다. 지금 같은 상황에선 누가 정권을 잡든 '퇴진 집회'는 따라올 수밖에 없다. 사람이 아닌 제도를 고민해보자.
정재훈 서울본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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