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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열의 외신 톺아보기] 에밋 틸의 국가유적

2023-07-31

[박재열의 외신 톺아보기] 에밋 틸의 국가유적
박재열 경북대 명예교수·시인

미국사람으로 아프리카계 미국 소년 에밋 틸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지난 70년간 틸은 수많은 기사, 연구, 논쟁, 다큐멘터리, 영화, 노래, 문학작품의 주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1955년 8월 미시시피주의 한 식품점에서 물건을 사고 돈을 젊은 백인 여주인의 손에 쥐여 준 틸은 당시 14세였다. 흑인은 돈을 카운터 위에 놓고 나가야 하는 게 불문율이었다. 그녀는 당장 총을 찾아오는 동안 이 '싱겁이' 틸은 친구들을 웃기려고 손가락을 입에 넣어 휘파람을 불었다. 그녀는 남편에게 심한 성적 추행을 당했다고 부풀려서 이야기했다.

미시시피주는 미국 중에서도 가장 인종차별이 심한 곳이었다. 흑인은 선거권을 행사할 수 없었으며 백인들은 흑인을 살해하고도 대부분 법망을 빠져나왔다. 남편은 그의 형과 함께 이 소년을 납치하여 살해하고 시체는 강에 던졌다. 사흘 후 그 시체가 떠올랐다. 눈이 없는 등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했다. 살인자 두 사람은 재판에 부쳐졌으나 백인 남성으로 구성된 대배심원은 이들을 방면했는데 이유는 그 시체가 틸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시체의 유전자 검사를 하여 틸임을 확인한 것은 2005년의 일이었다. 장례 때 분노한 틸의 어머니는 관 뚜껑을 열어 처참한 모습을 공개했다. 25만명이 그 참혹한 시체를 보았고 국내외 언론이 치를 떨었지만 지금까지 이 사건에 관련된 어느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 이 사건이 도화선이 되어 민권운동이 들불처럼 일어났다. 최근 바이든 대통령이 에밋 틸과 관련된 세 곳, 즉 그의 시체가 떠오른 강가, 살인자들을 재판한 법원, 그리고 장례를 치른 교회를 '국가유적'으로 지정하여 국립공원처럼 보호하겠다고 했다.경북대 명예교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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