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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열 경북대 명예교수·시인 |
미국사람으로 아프리카계 미국 소년 에밋 틸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지난 70년간 틸은 수많은 기사, 연구, 논쟁, 다큐멘터리, 영화, 노래, 문학작품의 주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1955년 8월 미시시피주의 한 식품점에서 물건을 사고 돈을 젊은 백인 여주인의 손에 쥐여 준 틸은 당시 14세였다. 흑인은 돈을 카운터 위에 놓고 나가야 하는 게 불문율이었다. 그녀는 당장 총을 찾아오는 동안 이 '싱겁이' 틸은 친구들을 웃기려고 손가락을 입에 넣어 휘파람을 불었다. 그녀는 남편에게 심한 성적 추행을 당했다고 부풀려서 이야기했다.
미시시피주는 미국 중에서도 가장 인종차별이 심한 곳이었다. 흑인은 선거권을 행사할 수 없었으며 백인들은 흑인을 살해하고도 대부분 법망을 빠져나왔다. 남편은 그의 형과 함께 이 소년을 납치하여 살해하고 시체는 강에 던졌다. 사흘 후 그 시체가 떠올랐다. 눈이 없는 등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했다. 살인자 두 사람은 재판에 부쳐졌으나 백인 남성으로 구성된 대배심원은 이들을 방면했는데 이유는 그 시체가 틸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시체의 유전자 검사를 하여 틸임을 확인한 것은 2005년의 일이었다. 장례 때 분노한 틸의 어머니는 관 뚜껑을 열어 처참한 모습을 공개했다. 25만명이 그 참혹한 시체를 보았고 국내외 언론이 치를 떨었지만 지금까지 이 사건에 관련된 어느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 이 사건이 도화선이 되어 민권운동이 들불처럼 일어났다. 최근 바이든 대통령이 에밋 틸과 관련된 세 곳, 즉 그의 시체가 떠오른 강가, 살인자들을 재판한 법원, 그리고 장례를 치른 교회를 '국가유적'으로 지정하여 국립공원처럼 보호하겠다고 했다.경북대 명예교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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