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한 휴가 즐기는 캐나다
작은 시골집서 자연 속 휴식
해외여행 가서도 독서·수영
맛집 인증·쇼핑 바쁜 한국인
여행서 충전 아닌 쾌락 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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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정 캐나다 사스카추안대 교수 |
주말 오후. 토론토 북부 주택가 공원의 분수에서 서너 살 되어 보이는 아이 세 명이 물줄기를 맞으며 웃는다. 그 옆에는 대여섯 살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앉은 그네를 밀어주는 아빠로 보이는 남성이 있고 작은 놀이터에는 열댓 명의 어린 남녀아이들이 뛰어다닌다. 그 옆 벤치들에는 부모로 보이는 어른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얘기 중이다. 시선을 왼쪽으로 돌리면 커다란 개를 앉혀두고 벤치에서 대화하는 노부부가 보이고, 그 옆 벤치에는 책을 읽는 중년의 여성과 전화기를 들여다보며 뭔가를 읽고 있는 30대로 보이는 남성이 있다. 그 왼쪽엔 자리를 깔고 피자와 음료수를 먹고 있는 가족으로 보이는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있다. 다양한 연령대의 이 공원의 사람들은 백인, 남아시아인, 동아시아인, 중동인 등으로 보인다. 하늘은 푸르고 흰 구름이 두둥실 떠 있다. 한국의 습한 무더위에 비하면 건조한 토론토의 여름 날씨는 대구의 여름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다소 한기가 느껴질 수도 있을 만큼 쾌적하다.
겨울학기에 맡은 수업이 처음 가르치는 새로운 분야라 2년 전 퇴임한 그 분야 전공 옛 동료에게 수업준비와 관련해 공유해 줄 자료를 요청하는 e메일을 보냈다. 모든 자료는 퇴임 후 없애버렸다며 대신 몇 가지 의견을 나눠주었다. 다음날 북쪽 오두막으로 가 남은 여름 그리고 초가을까지 도시를 떠나서 지낼 예정인데, 그곳에 그림 그리는 스튜디오를 마련했고 월동장치도 해서 눈 오면 스키도 즐길 수 있다고 했다. 다소 경제적 여유가 있는 많은 캐나다인은 작은 시골집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부동산 투자의 관점에서 보면 수익성 없고 불편함투성이지만, 연휴나 여름휴가 때는 한두 달씩 도시의 바쁜 일상에서 떠나 자연에서 쉼을 누린다. 캐나다의 춥고 긴 겨울엔, 짧은 일주일의 중간방학 동안 멕시코나 미국의 따뜻한 곳으로 여행을 다녀오는 사람들이 많은데 하루종일 수영하고 해변에서 책 읽으며 보낸다는 동료의 얘기를 듣고, 많은 한국 사람들의 관점에서 보면 참 심심한 휴가를 보내는구나 생각한 적도 있다.
한국의 올해 항공요금이 거의 두 배로 올랐음에 깜짝 놀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외여행객 수가 엄청나게 많음에 또 놀랐다. 지인들을 통해 듣는 한국인들의 해외여행은 문명과 일상을 떠나 자연에서 쉼과 재충전을 한다기보다는, 예쁘게 차려입고 긴 줄 서서 유명 맛집 인증과 쇼핑 등으로 빡빡하게 채워진 또 하나의 '활동' 같다. 한국은 유럽이나 북미처럼 한두 달의 긴 여름휴가란 개념이 없으니 짧은 시간 효율적으로 여행해야 한다는 불가피함을 이해하면서도, 해외여행 후 기분 좋음의 효과가 몇 달은 가지만 그 후엔 또 다녀와야 한다는 어느 분의 말을 전해 들으니 휴식마저 자극과 쾌락을 추구하는 도파민 중독 사회의 일면을 보는 듯하다. 물론 이런 식의 해외여행은 꿈도 못 꾸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나, 그들도 경제적 여유가 된다면 이런 여행을 하고 싶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란 점에서.
캐나다에서도 예외적으로 훌륭하다 싶은 상사와 일하는 지인이, 상사가 "아침에 일어나서 날씨가 너무 좋고 나가서 걷고 싶으면 병가 신청해. 정신건강은 매우 중요하니까"라 했다는 얘기를 듣고, 한국에도 이런 정도의 공감능력과 감정지능을 가진 상사들이 많아진다면 일과 쉼의 문화가 어떻게 달라질까 궁금해졌다. 대체 한국인들에게 '쉼'이란 무엇이며 그들은 언제 쉬는가?
신현정 캐나다 사스카추안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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