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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직구 핵직구] 뭣이 중헌디?

2023-08-02

[돌직구 핵직구] 뭣이 중헌디?
이재동 변호사

어느 법정에서 증인으로 나온 전세사기 피해자가 차라리 죽고 싶은 심정이라면서 울먹거리자 판사가 형법 각칙(各則)을 잘 읽어보라는 말을 하였다고 한다. 형법 각칙에서는 처벌하는 범죄를 열거하고 있다. 우리 형법에서는 피해법익에 따라 국가에 대한 범죄, 사회에 대한 범죄, 개인에 대한 범죄 순으로 나열하고 있는데, 이를 국가우선주의의 발로라고 하여 그 순서를 거꾸로 하여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니까 우리 형법은 나라를 해치는 내란(內亂)죄로 시작하여 남의 물건을 부수는 손괴죄로 끝이 난다.

가장 조문이 많은 '개인에 대한 범죄'도 그 순서를 보면 살인죄를 필두로 생명이나 신체를 침해하는 범죄를 먼저 나열하고 있고 명예나 신용을 침해하는 범죄에 이어 재산을 침해하는 범죄로 끝을 맺고 있다. 그 판사가 전 재산을 날리고 살아갈 의지마저 잃은 피해자에게 형법 각칙을 읽어보라고 권한 것은 그 나열한 순서에 따라 생명이 가장 중하고 재산은 그보다 훨씬 못한 가치라는 것을 깨닫기를 바랐기 때문일 것이다. 재산을 잃는 것은 아주 조금 잃는 것이고, 명예를 잃는 것은 많이 잃는 것이고, 건강을 잃는 것은 다 잃는 것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그러므로 재산을 잃고 경제적으로 궁지에 몰려 스스로 세상을 버리는 것은 작은 손해를 큰 손해로 바꾸는 어리석음이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이혼율과 자살률이 높아지는 것은 우리 사회의 큰 병리현상이다.

요즘 세상 돌아가는 형편을 보노라면 명예가 재물보다 중하다는 것도 옛말이 되어버린 듯하다.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타인의 관심을 끄는 것이 곧 수입이 되는 시대에서, 좋은 평판을 들을 뛰어난 능력이 없다면 사회의 지탄을 받을 일을 해서라도 물의를 일으켜 보자는 사람들이 많다. 조회 수와 구독자 수가 곧 돈으로 환산되니 나쁜 평판으로도 돈을 벌 수 있게 되었고, 돈의 출처를 가릴 것 없이 과소비로 과시하는 재력이 신분을 나타내게 되었다.

명예를 가장 소중한 가치로 여겨야 할 정치인들의 행태 또한 가관인 경우가 많다. 총선을 앞두고 공천에 모든 신경이 집중된 탓에 권력자의 입맛에 맞추기 위하여 상궤를 한참 벗어난 말과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권력의 입장을 옹호하기 위하여 물고기들의 배설물이 섞인 횟집의 더러운 수조의 물을 퍼마시는 행동은 자신의 건강까지도 하찮게 여기는 가치의 전도(顚倒) 현상을 보여준다. 양식도 금도도 없는 세상이 되었다.

사람들이 모여 공동체를 이루고 살기 위하여 우선 필요한 것은 가치의 서열(序列)에 대한 관념을 공유하는 것이다. 어떤 것이 중하고 어떤 것이 가벼운 것인가에 관하여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으면 공동체로서의 요소를 갖추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현대사회에서 공동체가 파괴되고 개인주의가 앞선다는 것은 이런 가치의 우선순위에 관한 공동의식이 부족해져 구성원 개개인의 행동을 예측하거나 통제하기가 어려워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어떤 것을 지키기 위해 어떤 것은 포기해야 하는 무수한 선택의 연속이다. 꼭 지켜야 할 소중한 것과 그렇지 않은 가벼운 것을 가려내는 수많은 선택에서 드러나는 어떤 일관된 기준이 개인의 인격과 개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 기준이 우리 사회 공동체가 지향하는 이념에 부합하지 못할 때에는 그 사회와 불화하게 되고 결국에는 해를 끼치게 된다. 어떤 한국영화에서 귀신 들린 아이가 내뱉는 말이 떠오른다. "뭣이 중헌디!"

이재동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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