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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여행] 경북 경산 불굴사 홍주암, 거대한 바위가 만든 자연석굴, 원효대사·김유신 수행 발자취

2023-08-11

[주말&여행] 경북 경산 불굴사 홍주암, 거대한 바위가 만든 자연석굴, 원효대사·김유신 수행 발자취
경산 무학산 불굴사는 신라 신문왕 10년인 690년에 창건되었다고 한다. 오른쪽부터 석탑과 적멸보궁, 약사보전, 연지와 관음전.

장막 같은 비가 쏟아진다. 굽이지고 가파른 길을 암벽 타듯 신중하게 오른다. 돌아서지도 못하니 그저 기어를 낮추고 찔끔찔끔 전진한다.

갑자기 비가 잦아들더니 뚝 그친다. 너른 주차장에 도착한다. 시야가 열린다. 거대한 회색 구름이 와촌의 박사리 즈음에서 청통 방향으로 느리게 전진하고 있다. 조그마한 점으로 열린 하늘이 거짓말처럼 파랗다. 무언가 호되게 당한 듯도 하고 어쩐지 가호를 입은 듯도 하다.

690년 신라 신문왕때 무학산 불굴사 창건
약사전 약사여래불, 갓바위와 부부로 불려
태양 뜻하는 '홍주암' 가파른 절벽위에 둥지
석굴서 발견된 청동불상 경주박물관 보관

[주말&여행] 경북 경산 불굴사 홍주암, 거대한 바위가 만든 자연석굴, 원효대사·김유신 수행 발자취
더는 올라갈 수 없는 곳에 나반존자를 모신 독성각이 있다. 난간과 나뭇가지에 사람들의 황금덩어리 같은 소원들이 수없이 매달려 있다.

◆불굴사

시원시원하게 쌓아 올린 석축 사이 돌계단을 오른다. 종무소 옆 천막에 사람들이 모여 있고 한 단 낮은 축대 위에는 돌확이나 맷돌과 같은 석재 부재들이 열 지어 놓여 있다. 그 뒤로 장독대와 달그락 소리가 나는 공양간이 큼직하게 보인다. 앞마당에 올라 휘 둘러본다. 넓다. 정면으로 석탑과 적멸보궁을 마주한다. 왼편에는 약사보전과 연지 위에 올라앉은 관음전이 자리한다. 오른편에는 한 칸의 산령각과 다섯 칸의 요사채가 있다. 넓고, 단출하고, 후련하다.

팔공산 남동쪽 끝자락인 무학산 불굴사는 신라 신문왕 10년인 690년에 창건되었다고 한다. 당시 50여 동의 전각을 비롯해 12개의 부속암자를 거느린 대찰이었다고 전해진다. 사세는 조선 중기까지 이어지다가 영조 때인 1736년에 큰비로 대파되었고 이후 순천 송광사의 노스님이 중건을 시작, 철종 11년인 1860년에 중창됐다.

[주말&여행] 경북 경산 불굴사 홍주암, 거대한 바위가 만든 자연석굴, 원효대사·김유신 수행 발자취
불굴사 약사여래불은 송광사 노스님이 발굴한 것으로 족두리를 쓴 여인상이다. 팔공산 갓바위 부처님과 마주보고 있으며 경산지역에서는 두 분을 부부 부처님이라고 부른다.

돌사자가 웃는다. 천진하고 동그란 웃음이다. 적멸보궁 기단 위에 돌사자가 웃는 얼굴로 구슬을 물고 있다. 붉은 난간이 둘려 있어 허리를 굽혔다가, 무릎까지 굽혔다가, 납작 쪼그려 앉아 그 얼굴을 본다. 내 모습이 재미난지 돌사자가 웃는다. 적멸보궁 속을 들여다본다. 부처님 계셔야 할 자리에 유리창이 있고 그 너머에 탑이 있다. 1980년대 말에 주지스님이 인도에서 진신사리를 모셔와 적멸보궁에 모셨는데 2014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고 한다. 진신사리 탑 앞에 서면 적멸보궁의 창과 문 속으로 삼층석탑이 보인다. 석탑은 통일신라시대인 9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물이다. 탑과 탑 사이에 천년의 시간이 흐른다.

약사전 속을 들여다본다. 법당의 옆문에서 곧장 약사여래불과 마주한다. 건물은 동쪽을 향해 서 있는데 약사여래불은 동북쪽을 바라보고 있다. 화강암 바위에 연화대를 조성하고 그 위에 부처님을 모신 후 전각을 세웠다. 때문에 약사보전 안 부처님이 서 있는 자리는 바위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약사여래불은 송광사 노스님이 발굴한 것이라 한다. 이곳저곳 보수한 흔적이 보이지만 팔공산 갓바위 부처님과 같은 시기인 고려시대의 것으로 여겨진다. 불굴사 약사여래불은 족두리를 쓴 여인상이다. 팔공산 갓바위 부처님과는 8㎞ 정도 거리를 두고 마주 보고 있다고 한다. 경산지역에서는 이곳의 약사여래불과 갓바위 부처님을 부부 부처님이라고 부른다. 하루에 두 군데서 기도를 하면 소원이 이뤄진단다. 천 리 길이 아니니 마음만 먹으면 가능할 것이다.

[주말&여행] 경북 경산 불굴사 홍주암, 거대한 바위가 만든 자연석굴, 원효대사·김유신 수행 발자취
붉은 구슬, 즉 태양을 의미하는 홍주암. 불굴사가 건립되기 이전 원효대사가 수도한 곳이며 김유신 장군이 소년시절에 삼국통일을 염원하며 수련한 곳이라 전해진다.

◆홍주암

공양간 앞을 지나 산길에 든다. 점심공양을 마친 어둑한 내부는 마지막 정리에 박차를 가하는 사람들의 가벼운 명랑함으로 가득 차 있다. 잠깐의 산길 끝에 돌계단과 돌탑들과 매끄럽고 거대한 바윗덩어리들과 그 위에 앉은 붉은 기둥의 건물을 본다. 홍주암이다. 기둥이 붉어 홍주인가 했는데 붉은 구슬 즉 태양을 뜻한다. 홍주암은 불굴사 경내에서 가장 먼저 태양을 볼 수 있는 장소다.

돌계단을 오른다. '행복 108계단'이다. 양옆에는 저마다의 소원을 담아 쌓아 올린 돌탑들이 즐비하다.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급해지는 몸과 달리 마음은 느긋하다. 깎아지른 바위절벽과 맞닥뜨린다. 한사람만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고 가파른 철제 계단이 바위절벽에 꼭 붙어 달려있다. 계단은 단단하게 허리가 굽은 소나무를 공손하게 비껴간다. 소나무는 천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렇게 살고 있다고 한다.

홍주암 붉은 음각을 지나면 석굴이다. 낮은 굴엔 '아동제일약수'라 새겨진 샘이 있다. 깊은 굴의 석가모니 부처님을 중심으로 좌우에 금강역사가 양각돼 있다. 이 굴은 불굴사가 건립되기 이전 원효대사가 수도한 곳이며 김유신 장군이 소년시절에 삼국통일을 염원하며 수련한 곳이라 전해진다. 이곳에서 신라시대 것으로 추정하는 청동불상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 부처님은 현재 경주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굴에서 빠져나가자 테라스와 같은 공간이 나타나고, 비가 내리고 있다. 이 엄청난 폭우를 굴에서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먼 곳의 한 점 파란 하늘을 보며 저 무시무시한 비구름이 지나가기를 기약 없이 기다린다. 5분이 채 되지 않아 비는 그친다.

다시 오른다. 더는 올라갈 수 없는 곳에 독성각이 있다. 독성각은 홀로 깨달음을 이루었다는 나반존자를 모신다. 오백 나한 중 가장 높은 도력을 지닌 분이라 한다. 난간에, 나뭇가지에, 사람들의 소원이 적힌 황금빛 나뭇잎이 수없이 매달려 있다. 황금덩어리 같은 소원들이다. 올라오던 이가 계단 끝에 서서 먼 산을 향해 합장을 하고 허리를 숙인다. 그녀가 나반존자에게로 향할 때 나도 먼 산을 본다. 놀랍게도 그곳에 미륵불이 서 있다. 미륵불은 미래불, 나는 합장을 하고 속으로 소리쳐 묻는다. 이 비는 어떻게 되나요. 그녀는 익숙한 정성으로 공양미를 놓고 촛불을 켠다. 그리고 절을 올리고, 좌정하여 합장한 채로 오래오래 기도를 드린다. 무언가 가슴을 치는 소박하고도 간절한 풍경이다. 정성으로, 진심으로, 기원하고 돌아섰을 사람들의 모습이 그녀 뒤로 겹쳐진다. 숨쉬기가 편안해지는 것을 느낀다. 돌아오는 길은 푸른 하늘이었다.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여행 Tip

대구포항고속도로 청통, 와촌 나들목으로 나간다. 와촌, 갓바위 방향으로 달리다 갓바위 이정표에서 우회전, 계속 직진하다 보면 박사리 마을 표석 지나 왼쪽에 불굴사 표지판이 있다. 불굴사 경내 오른쪽에 있는 공양간을 지나 산으로 오르면 약 100m 정도 거리에 홍주암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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