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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걸 교수의 오래된 미래교육] 생각 밖으로의 여행

2023-08-14

[정재걸 교수의 오래된 미래교육] 생각 밖으로의 여행
정재걸〈대구교대 명예교수〉

노인이 되기 전에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아마 그것은 빈둥거릴 수 있는 능력일 것이다. 주위에 대화할 상대도 없고 또 거동이 불편해서 집 밖으로 잘 나가기 어려워도 빈둥거릴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면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빈둥거린다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어도 편안한 것이다. 빈둥거림은 무척 쉬워 보이지만 결코 쉽지 않다. 소파에 편안하게 앉아 가만히 있어 보라. 그 상태로 얼마나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빈둥거림은 연습 없이는 쉽게 갖기 어려운 능력이다. '지금 이대로 완전하다'의 저자 김기태는 빈둥거림을 '무위(無爲)의 실험'이라고 했다. 최소한의 필요한 일, 먹고, 자고, 화장실에 가는 일을 제외하고 의도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지내보는 것이다. 실험이라고 했지만 사실 무척 힘든 수행이라고 할 수 있다.

빈둥거림은 멍때리기와 비슷하지만 다만 멍때릴 대상이 없다는 점이 다르다. 왜 사람들은 멍때리기를 좋아할까? 사람들이 멍때리기를 좋아하는 까닭은 잠시라도 생각에서 벗어나고 싶기 때문이다. 불을 멍하니 바라보다 어느 순간 아무 생각이 없어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그 잠깐의 경험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기 때문에 사람들은 멍때리기를 좋아한다. 우리의 생각은 뭉게구름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자세히 살펴보면 생각과 생각 사이에는 언제나 미세한 틈이 있다. 그 틈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그 사이로 맑고 푸른 하늘을 얼핏 바라볼 수 있다.

물론 생각 밖의 맑고 푸른 하늘은 결코 생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대상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생각 '밖'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경우가 몇 가지 있다. 꿈도 없는 깊은 잠에 빠지거나 기절하는 경우, 말문이 막히는 엄청난 장관을 마주하는 경우 등이다. 그때 우리는 얼핏 생각 밖의 세상을 경험할 수 있다. 그리고 다시 생각 속으로 돌아와 마치 방금 꾼 꿈을 생각으로 짜 맞추듯, 생각 밖 세상을 어슴푸레 그려보는 것이다. 생각 밖 세상을 얼핏 본 사람들은 생각 밖 세상이 본질이고 생각 안의 세상은 가상현실이라고 말한다. 생각 밖 세상은 스크린이고 생각은 그 스크린 위에 펼쳐지는 영사기의 빛과 같다고 한다.

김영식은 '시골 농부의 깨달음 수업'에서 생각은 인간의 뇌가 세상을 해석하고 이용하는 제한적인 시스템이며, 생각이 인식하는 세계는 인간이 우주를 받아들여 활동하는 유일한 시공간이라고 말한다. 그는 생각을 잠시 멈추는 연습을 통해 생각 밖으로 나갈 수 있으면 무아(無我)와 연기(緣起)를 깨닫게 되어 생로병사의 번뇌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하였다. 물론 생로병사의 번뇌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생로병사를 겪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생로병사가 더는 삶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런 마음 상태를 저자는 명백함과 안심됨이라고 표현하였다. 생각 속의 삶을 살아가지만 언제나 생각 밖의 근원과 연결되어 있음을 명백히 알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세계는 생각이 해석하고 관찰한 것이어서 매우 유연하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고 하듯 생각에 따라 세상이 바뀌는 것은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이 실체가 아닌 우리의 생각이 해석한 것이기 때문이다. 지구 위의 다른 생명체들은 감각으로 주변 환경과 세상을 파악하지만, 인간은 전두엽의 발달로 감각기관에서 수용한 정보를 기억과 대조하고 가공하는 생각의 과정을 통해 세계를 이해한다. 그렇기에 생각 속의 삶이 가상현실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그 가상현실을 벗어나 살 수는 없다.

한 번이라도 생각 밖 세계를 얼핏 본 사람들은 진정한 삶의 본질은 생각 밖에 있음을 이해하기에, 가상현실 속의 삶에 일희일비하지 않으며 살아갈 힘을 가지게 된다. 사실 우리가 가상현실이라고 여기는 모든 것은 '생각 밖 세상'이라는 바탕 위에 펼쳐지는 연극과 같다. 그렇기에 내가 지금 늙고, 추하고, 부족하더라도 그것은 사실 아무런 문제가 아니다. 늙고, 추하고, 부족한 '나'라는 것이 꿈과 같고 연극의 배역에 지나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다. 밤새 악몽에 시달리다가도 그것이 꿈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마음이 푹 하고 놓이는 것, 그것이 바로 안심이다.

결론적으로 빈둥거림의 최종 목적지는 생각 밖으로의 여행이다. 이 무더운 한여름 외국으로 나가건 국내를 여행하건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이럴 때 차라리 편안한 소파에 앉아 빈둥거리면서 생각 밖으로 여행을 떠나면 어떨까? '생각 밖으로의 여행', 정말 멋진 '생각' 아닌가?
〈대구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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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걸 대구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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