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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현 (설치미술작가) |
'파빌리온'. 이 단어의 어원은 나비를 뜻하는 라틴어 'papilo'의 의미를 가진 프랑스 고어 'pavellun'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일까. 파빌리온(Pavilion)의 사전적 정의는 나비처럼 자유롭게 옮겨 다닐 수 있다는 의미를 지닌 '전시회 및 박람회 등에 이용되는 가설 건축물'이라고 정의돼 있다.
예술인들에게도 파빌리온은 이미 널리 알려진 용어다.
뉴욕 현대 미술관 MoMA의 YAP프로그램은 1998년부터 20회의 파빌리온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국립현대미술관(MMCA) YAP 역시 2014년부터 2017년까지 프로그램을 동양 최초로 진행하는 등 현재는 많은 공공 미술관에서 파빌리온 프로젝트를 선보였다.
예술가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파빌리온은 영국 런던 하이드 파크 안에 위치한 서펜타인 갤러리일 것이다. 임시 구조물로 시작했던 파빌리온의 반응이 좋아 현재까지 매년 새로운 파빌리온이 이어지고 있으며 프리츠커상의 예측 무대라는 명성까지 얻게 되었다.
20여 년 전 2000년대 중반쯤일까? 나는 처음으로 파빌리온 작품을 경험했다. 당시 서펜타인 갤러리는 지금만큼 영향력 있는 갤러리는 아니었던 걸로 기억한다. 실험적 작품을 전시하는 갤러리기에 현대적 건물 디자인이나 독특한 내부를 기대했던 나의 상상과는 달리 실망감이 생기려던 순간 야외에 설치된 대형 구조물에 매료됐다.
독특한 구조를 가진 공간 안에서 사람들은 자유롭게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파빌리온이라는 용어가 익숙하지 않았던 시절이라 나는 어떤 공간인지 의문만 가진 채 한참을 앉아 시간만 보냈었기에 그 공간에 대한 기억은 강렬했었다.
나의 설치작품에서도 공간 전체를 조형화하는 전시 방법을 추구하다 보면 작품스케치가 대형화되는 과정을 거칠 때가 있다. 관람객에게 새로운 경험을 줄 수 있는 파빌리온을 통해 다양한 영역의 공간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작품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예술가로서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른다.
나에게 어떤 작은 공간이라도 무언가 설치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감상할 수 있는 조형물인지, 사용해도 되는 디자인 제품인지 혹은 잠시 머무를 수 있는 구조물인지 관람객의 선택에 따라 용도가 변할 수 있는 형태의 작품을 만들어 관람객 역시 선택의 자유를 느끼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작가뿐만 아니라 관람객(혹은 시민)이 예술과 건축의 영역을 자연스럽게 넘나들 수 있을 때 디자인, 예술, 건축의 영역이 커지며 자연스러운 통합이 이뤄질 것이다. 수백 년 전 모든 것이 하나였던 것처럼, 나는 파빌리온이 건축가와 예술가의 브리지 역할을 해줄 것이라 기대한다.
박정현<설치미술작가>

박정현 설치미술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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