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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콘크리트 유토피아

2023-08-17

[문화산책] 콘크리트 유토피아
신민건 (대구문화예술진흥원 주임)

삶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세상이 확 뒤집혔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할 때가 있다. '옭아맨 삶의 압박이 어떻게든 해결되겠지'라는 막연하고도 해방적인 상상. 누구나 한 번쯤은 해봤을 그런 상상이 엄태화 감독의 메가폰을 통해 영화로 개봉했다.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에서 시작한다. 대지진으로 세상이 무너지고 하루아침에 폐허가 된 서울, 유일하게 남은 황궁아파트에는 입주민과 외부 생존자들이 공존하고 있다. 그러나 외부인의 유입이 많아질수록 입주민과 외부인 사이의 갈등은 격화된다. 생존을 위해 아파트 입주민들은 외부인을 몰아내고 출입을 철저히 막아선 채 아파트만의 생존 규칙을 세운다. 그렇게 황궁아파트는 지옥과 다를 바 없는 바깥세상과 달리 입주민들만의 평화로운 유토피아가 되어간다.

영화는 이야기를 이어가며 황궁아파트 안팎의 모습과 제한적 터전 안 인간 군상을 보여준다. 공존과 배척, 도의(道義)와 원칙, 막연한 평화주의와 집단이기주의 같은 대립하는 명제가 아파트 내부의 갈등 속에서 튀어나온다. 그중에서도 아파트를 두고 이쪽과 저쪽을 나누는 '경계' 자체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경계 안의 사람과 경계 바깥의 사람, 경계를 정의 내리는 집단의 원칙과 경계를 무너뜨리는 인간의 본성, 모든 대립과 갈등은 경계를 짓는 것에서 시작된다. 안과 바깥을 나누던 경계는 점차 아파트 내부에서도 지어진다. 자가(自家)와 전세 사이의 경계, 제한된 터전의 존속을 위한 개인 임무의 경중에 따른 경계, 생존원칙이 만들어진 시점 이전의 입주민과 이후 입주민 사이의 경계까지. 바깥세상과의 격리를 통해 입주민들만의 유토피아가 되었던 황궁아파트는 내부인 간의 경계와 갈등으로 다시 또 하나의 디스토피아가 되어간다.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괴물'(2006), '부산행'(2016), '비상선언'(2022)과 같은 작품처럼 재난 상황 속 인물들의 가치 딜레마를 보여주며 관객에게 물음을 던진다. '개인의 세계가 무너질 만큼 극한의 상황이 되었을 때,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자신과 자신에게 가까운 집단을 위해 경계를 짓고, 경계 안에 머물며 어떤 행위도 스스럼없이 할 수 있을까?' 영화적 요소와 장치가 가미된 디스토피아적 상상일지도 모르지만 예상치 못한 재난 상황과 경계의 안과 바깥을 구분하는 일은 이미 우리의 삶에 수없이 도사리고 있다. 머지않은 어느 때, 생사를 가르는 재난 상황이 벌어진다면? 피할 수 없는 기로에 놓이게 된다면? 당신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신민건<대구문화예술진흥원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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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건 대구문화예술진흥원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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