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2㎞ 주능선·여덟 갈래 가지능선에 열 지은 고분들
1천여기 고분 산재 추정…184기서 유물 8천여점 출토
4호분 '나무들보'·13호분 '별자리'·45호분 '사슴토기' 등
세계유산 가야고분군 중 최장기간 조성 '변천사 한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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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호분 앞에서 바라본 말이산 고분군. 가운데가 4호분, 왼편 고지대에 2·3호분이 위치한다. 한 그루 나무는 함안 사람들이 왕따나무라 부르는 벚나무다. |
넷, 여섯, 여덟, 열둘, 아! 제대로 셀 수 있을 만큼 사거리 신호등은 길지 않았다. 눈 닿는 곳마다 깔끔하고 단정한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한 도시에 존재하는 크고 작은 모든 단체가 내건 플래카드는 모두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가야고분군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늦더위가 대단한 기세로 들끓은 날이었다. 바람도 함성도 없는 뜨거운 고요 가운데 애써 평정심을 유지하려는 고조된 흥분과 자부심이 느껴진다. 지난 9월17일, 1세기에서 6세기에 한반도 남부에 존재했던 고대 문명 '가야'의 대표 고분군 7개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최종 등재됐다. 그중 하나가 함안의 말이산 고분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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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안박물관에 세계유산 등재를 알리는 벽보가 붙어 있다. 가운데 토기모양 구조물은 '화염문투창고배'를 형상화한 것으로, 올챙이 같은 불꽃 투각은 아라가야의 상징 중 하나다. |
◆우두머리 산의 옛 무덤들
함안 박물관에도 세계유산 등재를 알리는 커다란 벽보가 붙어 있다. 그 너머로 아직 푸르른 무덤들이 보인다. 저곳이 말이산 고분군이다. 폭신한 풀들은 작열하는 태양 빛에도 습기를 함빡 머금고 있다. 아이들이 달린다. 이 무덤에서 저 나무까지. "거긴 낭떠러지야." 맞다. 말이산 8호분 앞은 얕은 생채기가 날 정도의 낭떠러지다. 어린아이가 낭떠러지라는 단어를 어떻게 알고 있을까. 저 아이는 이 무덤의 의미도 알고 있을까. 가깝게 또는 멀리서 기계음이 들리고, 고분군 일대를 단장하고 있는 사내들이 곳곳에 보인다.
함안의 중심인 가야읍. 정치, 경제, 문화 등 관(官)과 관련된 모든 치소(治所)가 모여 있는 곳이다. 말이산은 그 중심에 해발 40~70m의 나지막한 구릉으로 자리한다. 남북으로 2㎞ 정도의 주 능선이 길게 뻗어 있고, 여덟 갈래의 가지능선이 서쪽으로 완만하게 이어진다. 고분들은 그 능선을 따라 열 지어 서 있는데 가지능선의 꼭대기에 대형 봉토분이 위치하고 경사면에는 중소형의 무덤들이 조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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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산 고분군에서 가장 큰 4호분 구덩식돌덧널무덤의 모형. 모두 284점의 유물이 출토되었고 약 5~6명이 순장된 것으로 여겨진다. |
말이산은 '머리산'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머리산은 '우두머리 산', 즉 왕이 잠들어있는 산이라는 의미다. 그들은 고대 함안지역에 존재했던 아라가야의 집권층이다. 변한 12국 중 하나였던 아라가야는 대가야, 금관가야 등과 더불어 독자적인 정치체제와 문화를 지닌 고대 국가였다. 대형무덤은 아라가야의 전성기인 5세기 중반에서 6세기 전반에 집중적으로 조성된 것으로 여겨진다. 이들을 1호에서 37호분으로 지정관리하고 있다. 봉토가 확인된 것은 184기다. 아직 발굴하지 않은 고분을 포함하면 1천여 기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8호분 위에 6호, 그 위에 4호분이다. 가야읍이 훤히 펼쳐지고 바로 아래에 군청 지붕이 보인다. 아이들은 떠났다. 사내들도 보이지 않는다. 배롱나무 꽃잎 떨어지는 소리, 철모르는 매미소리만 쟁쟁하다. 4호분은 말이산 고분군에서 가장 큰 무덤이다. 주 능선에 위치하고 가지능선의 꼭대기다. 이곳에서 수레바퀴모양 토기, 오리모양 토기, 사슴뿔장식 철검 등 모두 284점의 유물이 출토되었고 약 5~6명이 순장된 것으로 여겨진다. 큰 봉분을 지탱하기 위해 무덤방 내부에 덮개돌의 강도를 보강하는 나무들보를 설치했는데 이는 아라가야의 독창적인 축조기술이다. 고분전시관에 이 무덤의 내부 모형이 있다. 무덤의 주인과 순장된 사람들이 마치 범죄 현장의 피해자처럼 표현되어 있다. 이들 죽음의 이유에 대해, 하나는 알지 못하고 나머지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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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산 13호분에서 발견된 별자리 덮개돌. 무덤방 천장 덮개돌 하나에 134개의 별이 새겨져 있고 남두육성과 청룡별자리 등 고대 동양의 별자리가 확인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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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산고분전시관의 디지털영상관에서 '찬란한 아라가야의 빛'을 감상할 수 있다. 왕과 병사들, 가야 백성들과 각종 출토 유물 등을 아름다운 영상으로 보여준다. |
◆아라가야의 고도를 굽어보는 왕의 산
남쪽 주 능선으로 9호, 10호, 11호분이 이어지고 쑥 내려서는 골짜기 너머로 다시 13호분이 솟아 있다. 말이산 13호분은 별자리가 발견된 최초의 가야무덤이다. 무덤방 천장 덮개돌 하나에 134개의 별이 새겨져 있었다. 은하수다. 궁수자리에 있는 6개 별자리를 합쳐 부르는 남두육성(南頭六星)과 청룡별자리 등 고대 동양의 별자리가 확인됐다. 이를 계기로 함안군은 매년 말이산 별 축제를 연다. 13호분 너머 멀리 보이는 산은 성산산성(城山山城)이 있는 조남산(鳥南山)이다. 2009년 성산산성의 연못지에서 연꽃 씨앗 10알이 출토되었다. 그중 2개의 방사성 탄소의 연대를 측정한 결과 하나는 650년 전, 하나는 760년 전의 것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나머지 여덟 개 씨앗을 심었다. 그중 3알이 싹을 틔웠고 다음 해 7월7일, 꽃이 피었다. '아라홍련'이다. 함안 박물관 앞에 아라홍련 시배지가 있다.
북쪽 능선의 가장 높은 곳에는 2호와 3호분이 자리한다. 두 기의 무덤은 아직 발굴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봉분을 받치고 있는 구릉이 마치 지구라트처럼 보인다. 무덤을 더 크게 보이도록 한 옛 가야인들의 의도일까, 아니면 현대의 토목일까. 그 북쪽 아래에는 45호와 1호분이 있다. 45호분은 목곽묘로 사슴, 배, 집 모양 토기가 한꺼번에 나왔다. 사슴모양 토기는 현재까지 유일한 사례라 한다. 사슴이 뒤돌아보는 찰나가 그대로 표현된 아름다운 토기다. 1호분에서도 많은 것들이 출토되었는데 그 가운데 새 모양 장식의 철제 유물인 '미늘쇠'가 있다. 가야인들은 새가 인간의 영혼을 하늘로 인도해 준다고 믿었다고 한다. 말이산 북단에 아파트가 높다. 저곳에 마갑총이 있었다. 말 갑옷이 나온 무덤이다. 오래전 텔레비전에서 발굴 현장을 보며 몹시 놀라워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지형이 바뀌어 아파트 단지 속에 마갑총 자리라는 표지석만 있다. 아파트 뒤편은 아라홍련이 자라는 연꽃테마파크다. 아라가야의 왕궁 터로 추정되는 곳이다. 왕궁과 왕릉 사이에 아파트가 있다.
말이산 고분군은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에 의해 처음으로 파헤쳐졌다. 이후 1986년에 우리 손으로 첫 발굴조사를 실시했고 30년 넘는 시간 동안 많은 것들이 세상에 드러났다. 말이산 고분군은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가야고분군 중에서 가장 긴 세월 동안 조성됐다고 한다. 그래서 널무덤, 덧널무덤, 구덩식돌덧널무덤, 굴식돌방무덤 등, 가야 고분의 변천사를 모두 보여준다. 고분군에서는 총 8천여 점의 유물이 출토됐다. 그중에는 왕릉임을 확신케 하는 봉황장식의 금동관과 중국과의 교류를 보여주는 5세기 남조의 연꽃문양 청자그릇, 중국을 거쳐 서역과 교류했음을 보여주는 로만글라스도 있다. 말이산 고분군은 당시 아라가야가 얼마나 강대했는지를 말해준다. 가야분지에 한바다들이 넓다. 금세 황금빛으로 변하겠다. 3호에서 4호로, 다시 6호, 8호로 날 듯 내려간다. 대지에 가볍게 발꿈치가 닿기만 해도, 그것이 어떤 자유라는 인상을 갖게 된다.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45번 중부내륙고속도로 창원, 마산 방향으로 간다. 칠원분기점에서 10번 남해고속도로 진주방향으로 가다 함안IC에서 내린다. 함안IC삼거리에서 우회전해 직진, 함주교 건너 우회전해 함마대로를 타고 가다 삼거리에서 우회전, 60m 전방 삼거리에서 함안 박물관 이정표 따라 좌회전해 들어가면 된다. 박물관과 고분전시관, 고분군의 주차비와 입장료는 무료다. 매주 월요일은 휴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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