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석(대구화랑협회 총무이사) |
불교의 윤회사상에 기반을 둔 49재는 7일마다 불경을 외면서 재를 올려 죽은 이가 그동안 불법을 깨닫고 다음 세상에서 사람으로 태어나기를 비는 제례의식이다. 천상, 인간, 축생, 아수라, 아귀, 지옥도의 여섯 세계를 윤회한다고 하는데 죽은 이가 각 관문을 잘 통과해 지옥도, 아귀도, 축생도에 들어가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비는 것이다. 죽음을 경험하지 못한 우리는 사실인지 알 수 없지만, 인생을 살다 보면 이와 비슷한 관문을 마주할 때가 있다. 사람들의 경험에 따라 다양한 사례가 있겠지만, 필자가 그런 느낌을 접했던 것은 병원의 수술실 문 앞에서였다. 폐암에 걸린 어머니께서 암이 발생한 부위를 절제하기 위해 들어서던 수술실의 문. 임신 6개월이던 아내가 심실빈맥으로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배 속의 아이를 지키기 위해 진통제와 마취제 없이 들어서던 그 수술실의 문. 보호자인 내가 함께 갈 수 있는 곳은 바로 그 문 앞까지였고, '금방 다시보자'며 작별 인사가 아닌 작별 인사 같은 말을 건네고, 꼬옥 잡았던 손을 놓으며 그 경계의 문이 닫히던 순간. 어쩌면 이 순간이 정말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슬픔, 미안한 감정에 눈물을 삼켰었다. 사랑하는 이의 생명을 타인 또는 신이라는 존재에게 위탁한 상황에서 저 경계의 너머로 차가운 시간이 흐르는 동안 가족의 생사 판정을 그저 기다리게만 했던 그런 경계의 문이 커다란 사천왕 같았었다.
사람의 능력은 무궁무진하며 무엇이든 마음만 먹고, 노력하면 이뤄낼 수 있다는 신념이 있는 나였지만, 그 문 앞에서는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그런 순간이었다.
이처럼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드는 경계의 문은 인간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이렇게 인간의 존엄한 생명을 두고 경계의 선이 그어지는 것과 달리, 지금 사회를 보면 너무나도 많은 이데올로기의 경계선들이 마구잡이로 그어져 있는 것 같다. 사상의 경계선을 넘어 이제는 특정 세대나 남녀의 경계선까지 너무 많은 잣대들로 누군가에 의해 경계의 선이 그어지고 분리되고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참과 거짓, 흑백의 논리로만 돌아가는 세상은 아닐 텐데 극과 극의 경계들이 너무 많이 보여 눈살이 찌푸려진다.
그런 것들에 비하면 일반인이나 화가들이 말하는 '화랑의 문턱이 높다'는 또 다른 경계의 문에 관한 표현은 애교로 봐줄 만한 수준인 것 같다. 이 문은 가벼운 마음으로 언제든지 열어도 된다는 말씀을 독자들에게 드리고 싶다. 이제 곧 우리 고유의 명절 한가위다. 둥그런 달 아래에서 모든 이들이 마음의 문을 열고, 함께 소통하는 그런 명절 연휴가 되기를 바라 본다.
김민석(대구화랑협회 총무이사)
김민석 대구화랑협회 총무이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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