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갑질119 조사, 직장인 10명 중 8명 "민원인 갑질문제 심각"
최근 대구시·8개 기초단체 민원담당 보호·지원 조례 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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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이초등학교 교사의 49재 추모일인 지난달 4일 오후 서울 서이초등학교 교실에 근조 화환과 추모의 메시지가 놓여져 있다. 사망한 교사 A씨는 학부모의 지속·반복적인 악성 민원 등으로 고통받다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연합뉴스 |
대구 모 구청 공무원 A씨는 민원실 근무 시절 끔찍한 경험을 했다. 한 민원인이 민원 처리를 맡긴 후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자 "나도 지난번 변호사 사무실(방화 사건)처럼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지를까"라며 협박을 서슴지 않았기 때문이다. A씨는 "많은 분이 돌아가신 슬픈 일을 아무렇지 않은 듯 이야기하며 협박하는 모습에 공포스러웠다"고 했다.
'감정노동자 보호법'(산업안전보건법 제41조)이 시행된지 5년이 흘렀지만 직장인 10명 중 6명은 여전히 민원인의 갑질로부터 제대로 된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3일 노동 관련 공익단체 직장갑질119와 아름다운재단이 여론조사 전문기관 엠브레인 퍼블릭에 의뢰해 직장인 1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회사가 업무 관련 제 3자의 폭언 등으로 노동자를 잘 보호하고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58.8%가 '잘 보호하지 못한다'고 답했다.
이런 대답은 실무자급에서 61.5%로 상위 관리자급(33.3%)의 2배에 달했다. 책임이 있는 상위 관리자들이 오히려 민원인 갑질의 심각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설문 결과 직장인 10명 중 3명(29.2%)은 감정노동자 보호법이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2018년 10월 개정 시행된 '감정노동자 보호법'에 따라 회사는 고객 등 제 3자의 폭언 등으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할 의무가 있고, 필요한 경우 업무의 일시적 중단·전환, 휴식 시간 연장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최근 공직사회에서도 악성 민원 등으로 정신과 상담을 받거나 퇴직하는 공무원들이 늘어나 담당자 보호 및 지원 조례 제정 움직임이 일었다. 대구시 9개 구·군 중 최근 대구에 편입된 군위군을 제외한 8개 기초단체에는 관련 조례가 제정된 상태다.
직장인 10명 중 8명은 우리 사회에서 민원인 '갑질' 문제가 심각하다고 응답했다. 학부모, 아파트 주민, 민원인 등의 갑질이 '심각하다'고 한 응답자가 83.9%로 매우 높게 나타났다. 직급별로는 일반사원·실무자·중간관리자에서 모두 민원인 갑질이 심각하다는 응답이 80% 이상으로 나왔으나, 상위관리자는 66.7%에 그쳤다.
감정노동자 보호법상 예방조치와 사후 보호조치의 주체는 사업주다. 그러나 직장갑질119는 "현실 속 사업주들은 노동자를 보호하기는커녕 피해자인 민원담당자의 점수를 깎거나 무리한 요구를 수용할 것을 강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권호현 직장119 변호사는 "그 누구의 월급에도 '욕 값'은 들어있지 않다. 회사는 민원인 갑질을 당한 직원에게 상담 및 소송지원 등 법에 따른 보호조치를 해줘야 한다. 또 정부는 회사의 의무 위반 여부를 주기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사용자가 학부모, 민원인 갑질을 당한 노동자를 적극 보호하라는 현행법상 의무만 다했어도 서이초등 교사 사망 사건과 같은 비극적인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직장인들에게 서울 서이초등 사건에서 교사의 죽음과 관련해 누구의 잘못이 큰지를 물어본 결과, 학부모라는 응답이 59.0%로 가장 높았지만, 직장인 3명 중 1명(33.6%)은 교장·교감 학교 관리자, 교육청 등 교육 당국의 가장 크다고 답하기도 했다.
이동현기자 shineast@yeongnam.com

이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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