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에도 충족하지 못한 흰 것에는 항상 검은 눈물이 숨어 있음을, 다정 뒤에는 냉랭함이 숨겨져 있음을 모르던 날이 있었다. 사랑이 칼끝처럼 예리하게 꽂히면, 뺄 수 없다는 걸 몰랐다 식별할 수 없는 암흑도 지니게 되었다 불멸을 원하면 이집트 왕처럼 살아남는다 그걸 알았을 때 검은 안개처럼 몸을 감싼다
시간은 철길처럼 앞으로만 길게 뻗어 있을 뿐, 변하지는 않는다. 낯선, 연극 무대에서 내 삶을 닮은 여배우가 울부짖어도 끄떡조차 않는, 사랑의 모서리다
절실하게 누구를 기다리는지, 무엇이라고 말하기도 전에 부서질 그를 위해 내가 더디 늙었고, 더딤 밤으로 비로소 완성되는 보석처럼 왔음을 알고는 있을는지
안정옥 '더딘 밤의 노래'
시간은 철길처럼 앞으로만 길게 뻗어 있을 뿐, 변하지는 않는다. 낯선, 연극 무대에서 내 삶을 닮은 여배우가 울부짖어도 끄떡조차 않는, 사랑의 모서리다
절실하게 누구를 기다리는지, 무엇이라고 말하기도 전에 부서질 그를 위해 내가 더디 늙었고, 더딤 밤으로 비로소 완성되는 보석처럼 왔음을 알고는 있을는지
안정옥 '더딘 밤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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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
안정옥의 신작시집 '부서질 그를 위해 내가 더디 늙었고'는 온전히 미발표작으로 묶였다. 독일 시인 엘제 라스커 실러를 연상시킬 고통의 문장과 도저한 생각들은 단숨에 시집에 몰두하게 하는 동력원이 된다. 평생 칩거하면서, 쉼 없이 시 쓰기를 잘 견디어온 영혼 덕분에 이 신작시집은 사랑의 끈질긴 비극성에 몰두하면서도, 사랑의 다채로움을 노래하고 있다. 절망의 몸짓까지 껴안은 실러처럼 안정옥 역시 사랑의 내부와 뒷모습까지 살피고 있다. 달의 뒤편, 사물의 내부, 사람의 장소를 모두 합쳐서 온전한 사랑은 어떻게 감정이 되고 문체가 되는가. 뛰어내릴 수 없는 절벽의 깊이와 높이는 목숨을 바친 사랑이기에 곰곰이 들여다보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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