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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향 인사를 찾아서] '울진 출신' 한국 섬유예술 1세대 이신자 작가 "동해 일몰의 이글거리던 색채, 내 작업에 숨쉬며 살아있을 것"

2024-01-03

[출향 인사를 찾아서] 울진 출신 한국 섬유예술 1세대 이신자 작가 동해 일몰의 이글거리던 색채, 내 작업에 숨쉬며 살아있을 것
한국 섬유예술의 살아있는 역사 이신자 작가의 회고전이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다음 달 18일까지 열리고 있다. 이 작가는 어린시절 울진 앞바다를 보면서 키운 예술적 영감이 작업의 바탕이 됐다고 말했다.

국립현대미술관(관장 김성희)은 한국 섬유예술 1세대인 이신자(93) 작가의 대규모 회고전 '이신자, 실로 그리다'를 진행하고 있다. 오는 2월18일까지. 국내 '섬유예술' 분야의 개척자로 불리는 작가는 1970년대 '섬유예술'이라는 용어조차 없던 시절에 다양한 실험과 전위적인 시도를 통해 섬유 작업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경북 울진 월변의 작은 어촌마을에서 태어난 작가는 "어린 시절 집 문을 열고 나가면 울진의 바다가 햇살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그때 보았던 동해의 투명한 햇살과 이글거리던 일몰의 색채가 내 작업 어딘가에서 숨 쉬며 살아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어린시절 집 문을 열고 나가면
햇살 받은 울진 바다 반짝반짝
'참 좋은 데 사는구나' 늘 생각

한국 자수 다 망쳤다 혹평에도
작업 고집하고 제 갈길 만들어
젊은이들, 반대 두려워 말아야


◆최초의 섬유예술 회고전

국립현대미술관의 이번 전시회는 섬유예술 분야에서는 처음으로 개최한 대규모 회고전이다. 반세기에 걸친 작가의 작품세계 형성과정과 한국 섬유 미술사의 발자취를 씨줄과 날줄로 직조하듯 구성했다. 예술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이 부쩍 높아진 덕분에 평일에도 관람객의 발길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이번 전시회는 서울대 응용미술학과를 졸업하고, 30세에 국전 초대작가로 승승장구한 작가의 작품세계가 형성되는 과정을 4부로 나눠 구성했다. 거칠지만 자유롭고 대담한 시도를 엿볼 수 있는 초기작품부터 어릴 적 할머니의 베틀에서 익힌 직조의 과정을 토대로 최초의 '태피스트리(여러 색실로 그림을 짜 넣은 직물)'를 국내에 소개한 1970년대의 작업을 조명했다. 또 '한국섬유미술의 개화기'라 일컬을 만큼 국내 섬유 미술계가 새 국면을 맞이한 1980년대의 작업, 금속 프레임을 배치해 3차원 세계를 구성함으로써 자연에 대한 확장된 시각을 보여주는 2000년대 최근작까지 보여준다.

국립현대미술관 도화진 학예연구사는 "섬유미술이 국내 예술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제대로 조명받지 못한 측면이 크다. 일생 동안 예술 한길에만 묵묵히 정진해온 이신자 작가의 50년 작업 세계를 통찰하는 이번 대규모 회고전이 작가의 삶과 예술을 대중에게 알리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울진 바다가 키운 예술적 감수성

이 작가의 작품에는 깊고 푸른 동해가 담겨 있다. 울진 앞바다의 고요한 침묵이 있고, 고기잡이에 나선 어부들의 건강한 에너지가 있고, 나른하고 한가한 오후의 풍경이 있다.

"어렸을 때 아버지를 따라 아침에 늘 산에 올랐어요. 그 언덕에 오르면 해돋이를 보게 돼요. 그 강렬한 햇빛, 동해에서 떠오르는 해를 보면 '아, 참 좋은 데 내가 사는구나'라는 생각을 늘 했었거든요. 산에서 보는 울진 바다는 아름다웠어요."

초등학교부터 작가는 예술성을 뽐냈다. 당시 그린 그림이 신문에 게재될 정도로 일찌감치 두각을 드러냈다. 총명함이 남다른 아이가 대견스러웠던 일본인 교장은 "너는 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가서 재능을 마음껏 펼쳐 보여라"라며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고향에서 보낸 행복했던 기억이 많아서인지 떠나온 날들이 늘어날수록 그리움은 더욱 절실하다.

"고교 진학을 위해 고향을 떠나온 뒤부터 제게 울진은 절절한 그리움의 대상이었어요. 하지만 마음만큼 쉽게 갈 수는 없는 곳이었죠. 그 시절 차편을 기다리며 여관에서 하룻밤, 또는 이틀 밤을 자기도 했어요. 그때는 전기가 귀했기 때문에 방 두 칸에 전구 하나만 밝히기도 했죠. 10대 여자애한테 고향으로 가는 길은 너무나 험난한 여정이었답니다."

◆"발로 작업했냐" 혹평 듣기도

1950년대 중반 작가는 기존 예술계에 작은 파문을 던졌다. 그때까지 자수는 꼼꼼하게 면을 채우는 것이 대세였는데, 작가는 기발한 시도로 세상을 놀라게 했다. 작가는 실로 짜고, 감고, 뽑고, 엮는 다양한 방법으로 내면화된 자연의 정서와 정경들을 대담하게 단순화하여 짜임새 있는 구도를 선보였다. 또 누구도 생각지 못한 재료들을 활용했는데, 실과 천은 물론 밀짚, 밀포대, 방충망, 벽지, 장판 등 이질적인 재료들을 차용했다.

일부 예술인 사이에서 혹평과 뒷말이 나왔지만 작가는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내친김에 1972년엔 대한민국미술전람회를 통해 전통자수를 현대화한 '태피스트리'를 국내에 최초로 소개했다. 그의 도전적 시도를 계기로 전통이라는 틀에 갇혀 있던 전통적 섬유예술 분야는 급격한 변화의 물꼬를 맞게 됐다.

"그 시절 모 대학 교수들이 저에게 "발가락으로 작업했냐" "대한민국 자수 다 망쳤다"고 혹평했어요. 제 작업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거죠. 그들이 뭐라고 하든 개의치 않고, 제가 하고 싶은 대로 작업을 고집했어요. 왜냐면 제게는 선생이 없었으니까요. 저는 제가 길을 만들고, 걸어야 했어요."

◆한국 '태피스트리' 선구자

1997년 덕성여대 교수를 은퇴한 작가는 한국야쿠르트가 운영하는 우덕 갤러리 관장으로 10여 년 이상 재직했다. 매년 평균 17회 이상 전시회를 개최하며, 전시회를 열기 어려운 화가들에게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특히 홍보비, 대관비 등을 모두 무료로 진행해 젊은 화가들에게 도움을 줬다.

이 작가는 "갤러리들이 대중적 지명도를 높이기 위해 유명 작가를 끌어오는 것에 집중할 수도 있겠지만 갤러리 우덕은 더 많은 작가들에게 전시 기회를 줘 우수한 작가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라고 설명했다.

어느새 93세가 된 작가는 여전히 예술에 대한 열정을 놓지 못한다. 이제는 직접 작업을 하지는 못하지만 집 앞 미술관, 동료작가의 작업을 찾아 다니며 예술적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

"1970년대에 처음으로 외국에 나갔어요. 국내와는 다른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아주 재미있어 보였어요. 그 작업을 국내에 소개한 것이 태피스트리였죠. 그때 국내에서 많은 반발과 혹평이 있었지만 제가 좋아서 했던 작업이기에 후회도, 원망도 없어요."

작가는 예술가의 길을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되돌아보면 저는 항상 새롭고 획기적인 작업을 찾았던 것 같아요. 예술가를 꿈꾸는 젊은이들이 자기가 좋으면 하고 싶은 대로 했으면 좋겠어요. 중간에 안 좋으면 새로 하면 돼요. 길은 어디로든 열려 있고, 해법은 곳곳에 있어요. 젊은이들이 반대를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작업을 묵묵히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젊으니까요."

글·사진=김은경기자 enigm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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