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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재혁 (대구시의사회 공보이사·곽재혁신경과의원 원장) |
미국 경제학자 폴 사무엘슨이 제창한 공공재(公共財, public goods)는 모든 개인이 공동으로 이용할 수 있는 재화 또는 서비스를 의미한다. 도로, 철도, 교량, 항만, 수도, 전기, 건강보험 등은 대표적 공공재로서 이에 해당한다. 공공재와 반대로 사적재는 일반적인 재화로 값을 치른 사람만이 물건을 소유하고 서비스를 제공받는 재화이다. 백화점에서 옷을 사거나 특급 호텔에 숙박을 할 때 대가를 지불한 가치에 상응하는 서비스를 받는 것을 말한다.
의료 서비스는 공공재일까? 사적재일까? 영국을 포함한 많은 유럽 국가들은 의료 서비스가 공공재이다. 의사를 포함한 의료인을 처음부터 정부가 국민의 세금으로 교육시켜 만들어내고, 대부분의 의료기관이 공공의료기관이어서 전 국민이 공공의료서비스를 무상으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론상으로는 의료는 공공재가 이상적이지만, 경쟁이 없기 때문에 의료서비스의 질적 하락을 들 수 있다. 그리고 무분별한 의료 서비스 이용에 따른 도덕적 해이뿐만 아니라 재정적인 문제도 발생한다. 그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 몫이 되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의료서비스는 공공재와 사적재 모두를 포함하고 있다. 모든 국민이 건강보험에 가입되어 있기 때문에 의료는 공공재의 성격을 가지고 있으나 의료산업은 철저히 시장원리를 따르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 국민의 의료 접근성을 높이는 역할을 하고 있다. 모든 국민이 건강보험과 낮은 의료수가 때문에 저렴한 가격으로 진료를 받을 수 있고, 환자 유치를 위해 의료기관들끼리 치열한 경쟁을 하기 때문에 타 국가보다 의료의 수준도 높고 의료기관의 문턱도 낮아서 쉽고 빠르게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장점을 가진 한국 의료가 필수의료 붕괴라는 큰 난관에 봉착해 있다. 특히 응급 환자가 응급실을 찾아 헤매다 골든 타임을 놓치는 응급실 뺑뺑이가 반복되고 있다. 또한, 희귀 난치성 질환을 가진 환자가 3차 병원인 대학병원 진료를 보기 위해서는 수개월을 대기해야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정부는 의사 수의 부족이라고 생각하지만 필자는 의료에 대한 공공재라는 개념의 부재라고 생각한다. 이는 공공병원 같은 공공의료기관의 부족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 국민은 의료를 공공재라는 인식보다는 호텔 숙박이나 백화점 상품처럼 전적으로 사적재로 생각한다. 고혈압, 당뇨로 3차 병원인 대학병원을 이용하거나 두통이나 이명 등 가벼운 질환으로 서울에 있는 대형병원을 방문하는 것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문제는 1차, 2차 의료기관에서 충분히 진료를 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벼운 질환으로 상급 병원을 찾는 것은 상급 병원의 진료가 급박한 중증 환자들이 빨리 치료받을 기회를 뺏는 것과 같다. 중증 환자를 위해 감기 같은 가벼운 질환으로 공공재인 119를 이용하지 말아야 하는 것처럼 3차 병원도 공공재라는 인식을 가져야 할 것이다
국가는 의료의 공공재를 높이기 위해서 효율성이 떨어지는 공공병원 설립에 집중하기보다는 국민의 인식 개선과 함께 엄격한 1차, 2차, 3차 의료 전달체계를 확립해야 한다. 그리고 지역별로 균형 있는 배분 및 관리 체계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 또한 119 구급대원들이 환자의 질환 경중에 따라 대학병원 응급실이 아닌 1, 2차 응급기관에서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병원 전 응급의료체계 시스템을 구축하여 적절한 환자 이송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곽재혁 (대구시의사회 공보이사·곽재혁신경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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