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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칼럼] 이제 더 이상 낭만 政客(정객)은 없는가

2024-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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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영 논설위원

196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한국정치사의 주류는 단연 '3김'(金)이었다. 서슬 시퍼렇던 군사정권 시절부터 민주화 시대에 이어 국민의 정부에 이르는 동안 김영삼·김대중·김종필 등 거물 정치인 3명의 존재감과 발자취는 매우 컸다. 육사를 졸업하고 초대 중앙정보부장을 지낸 JP와는 달리 YS와 DJ는 민주화 투사 출신으로 약간 결이 달랐다. 닮은 듯 다른 부분이 많았던 이들 둘은 14대 대통령과 15대 대통령을 차례로 역임하면서 정객(政客)의 대미를 장식했다. 젊은 시절부터 정치를 시작했고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 소통과 타협을 비롯, 협치·양보·배려 등의 가치를 익히고 실천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불모지나 다름없던 한국 정치의 기틀을 다졌고 산업화·민주화에 기여했다는 긍정적인 부분과 함께 지역감정·보스정치로 망국적인 편가르기 문화의 원죄를 지었다는 부정적인 면까지 공과(功過)에 대한 논란은 여전하다. 그러나 납치·단식·감금 등 살벌하고 치열했던 세월에 부대끼면서도 이런저런 일화와 야사가 전해지고 있음은 싸울 때 싸우더라도 여유와 낭만을 잃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사전은 정객을 '직업적으로 정치 활동을 하는 사람'으로 풀이한다. 요즘 흔히 말하는 팬덤 정치에 기반한 정치꾼들과는 뉘앙스가 전혀 다르다. 무엇보다 소신과 철학, 의지와 비전이 있다. 권력을 잡아 뜻을 펼치겠다는 궁극의 목표는 유사하나, 기본적으로 양심과 체면, 도덕과 윤리를 기반으로 국가와 국민을 항상 염두에 둔다. 비겁하지도, 졸렬하지도 않으며 천박한 두 얼굴의 '내로남불'도 없다. 이리저리 치이면서 차근차근 스텝을 밟아온 내공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그래서 당당하다. 어느 날 갑자기 튀어나온 '듣보잡'과는 질적 차이가 확연하다. 사리사욕에 젖어 권력을 탐하고픈 인성·함량 미달의 인물이 정치를 하게 되면 국민들에겐 재앙이고 역사에는 죄를 짓는 일일 것이다. 정객의 품위는 정치꾼들이 죽었다 깨어나도 얻을 수도, 가질 수도 없는 어나더 레벨이다. '정치DNA'가 다르다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꽤 오랜 시간이 흘러 다소 미화된 부분이 없진 않겠으나, 돌이켜보면 그 시절 정치는 간결하고 담백했다. 뭣 때문에 원수처럼 싸우는지 도통 이해하기 어려운 요즘 정치판과는 달랐다. 밀고 당기고 주고받을 줄 아는, 사람 사는 세상의 한 범주였다. 당연히 나름의 룰이 있었고 넘지 말아야 할 선도 존재했다. 꼼수도, 막말도, 혹세무민도 지금처럼 흔하지 않았다. 대들보가 낀 제 눈으로 남의 티끌을 찾아 선동하는 위선적인 정치꾼들이 발붙이기 힘든 구조였다. 유감스럽게도, '3김 시대' 이후부터 근본 없는 정치꾼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듯 유난을 떨고 득세하고 있다. 어쩌면 '3김 시대'의 폐해 가운데 하나로 거론되는 보스정치가 오히려 더 나쁜 쪽으로 활성화되지 않았나 싶을 정도다. 올곧은 지도자의 강한 리더십이라면 오히려 장점이다. 그러나 국가나 국민을 위해야 할 정치인의 충성맹세가 보스를 향한다면 배지를 달고 있어도 그냥 행동대원에 불과하다. 선명성 경쟁에만 매몰된 행동대원들을 합리적으로 통제하고 설득시키며 타협과 상생을 실천할 수 있어야 진정한 지도자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 정치적 여유와 낭만은 그 과정에서 생겨난다. 그래야 새로운 정객의 탄생도 기대할 수 있다.
장준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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