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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완 칼럼] 라인 사태와 '강탈 DNA'

2024-05-23

2억 이용하는 글로벌 '라인'
네이버 10년 기술축적 성과
일본의 IT 생태계의 린치핀
기업 지배구조에 정부 개입
시장주의 원칙 뭉개는 월권

[박규완 칼럼] 라인 사태와 강탈 DNA
박규완 논설위원

일본에선 항상 엔화를 소지해야 한다. 현금만 받는 가게가 많아서다. 우리처럼 언제 어디서든 카드나 모바일 결제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전입신고는 동사무소에 직접 가야 하며 굳세게 인감 날인을 요구한다. 코로나19 팬데믹 땐 지자체가 일일이 팩스를 받아 확진자를 집계하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지금도 일본 공립학교의 90%가 팩스를 쓴다. 아날로그 온기가 있는 사회로 치환할 수도 있겠지만 직설하면 디지털 후진국이다.

일본정부 차원의 디지털 전환에도 불구하고 진척 속도는 더디다. 경제규모에 비해 IT산업이 뒤처져 있다. 어쩌면 최근 발단한 라인 사태의 근저(根底)에 일본 디지털 산업의 현주소가 있는지 모른다. 라인은 일본인 9천700만명이 사용하는 국민 메신저이며 동남아에도 1억명의 상용 네트워크를 구축한 글로벌 플랫폼이다. 일본의 포털(야후저팬), 배달 앱, 은행·증권·보험을 아우르는 핀테크, 콘텐츠 사업까지 통섭했다. 일본 IT 생태계의 린치핀이다.

라인을 취하면 2억명의 데이터는 물론 10년간 네이버가 축적한 기술과 노하우가 넝쿨째 굴러온다. '데이터 주권' 확보는 덤이다. 라인이 관리하는 데이터는 생성형 AI의 기반이 되는 대규모언어모델(LLM) 개발에도 필수적이다. 이러니 라인을 향한 일본의 눈독이 맵싸할 수밖에 없다. 일본 정치권에선 벌써부터 "라인이 일본기업이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해왔다.

라인야후의 모회사 A홀딩스의 지분은 네이버 50%, 소프트뱅크 50%다. 라인의 정보통신 인프라는 네이버가 위탁받아 운영·관리하고 소프트뱅크는 경영에만 관여했다. 라인야후의 전략적 동거에 금이 가기 시작한 건 지난해 11월 네이버 클라우드가 사이버 공격을 받아 이용자 정보 51만여 건이 유출되면서다. 일본정부는 올해 두 차례 행정지도를 통해 "라인야후가 시스템 업무를 네이버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다"며 자본관계 재검토를 요구했다. 이에 라인야후는 네이버에 지분 매각을 요청했고, 지난 8일 '라인의 아버지'로 불리는 신중호 최고제품책임자(CPO)의 사내이사 퇴임을 결정했다. 흡사 '라인 탈취'를 위한 시나리오 같다.

문제는 일본정부의 면후심흑(面厚心黑)이다. 정보보안에 문제가 있다면 보안 강화만 요구하면 될 텐데 네이버의 지분 정리를 압박했다. 개별기업의 지배구조에 정부가 개입한다? 시장주의 원칙을 뭉개는 월권이자 한일투자협정 위반이다. 사회주의국가 중국에서도 이런 사례는 없다. "적성국 버금가는 반시장적 횡포"(안철수 국민의힘 의원). 1차 행정지도가 내려진 후 50여 일간 멍 때리다가 여론이 악화하고서야 뒷북 대응한 우리 정부도 한심하다.

일본의 뒤통수치기는 낯설지 않다. 2019년엔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을 빌미로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하며 반도체 핵심 소재에 대한 수출규제를 단행했다. 글로벌 밸류 체인을 파괴한 반시장적 행태였다. 윤석열 정부의 강제징용 제3자 대위변제 유화책에도 화답은커녕 역사 왜곡의 검인 교과서를 늘리고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낡은 레코드만 튼다. 전범기업의 출연(出捐)과 사죄도 거부했다. 일본은 국권 유린과 살상, 가학과 수탈로 점철된 한국 식민지배의 불법을 인정하지 않는다. 저들 역사 속의 군국주의는 팔굉일우(八紘一宇)의 입발림으로 침략전쟁을 미화했다. 일본정부의 라인 압박이 전범국가의 침잠된 '강탈 DNA'의 발로(發露)가 아니길 바란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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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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