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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장 무대에서 펼쳐진 민속공연. 비옐게, 우르틴두, 툴리 등 다양한 전통 공연이 이어졌다. |
경마가 열리는 초원의 축제장은 이곳의 축제를 주관하는 몽골국립문화예술대의 메인 게르를 중심으로 여러 게르가 둥글게 늘어서 있었다. 몽골에는 절대 대수를 차지하는 '할흐몽골족' 외에도 카자흐족, 브리아트계 등 17개 부족이 지역마다 다양한 전통과 문화를 지키며 살고 있다. 이 게르들은 몽골 각지의 민족과 전통문화를 알리고 체험하는 홍보부스였다.
먼저 들른 곳은 몽골의 대표적인 민속놀이인 '샤가이 하르바흐', 즉 '샤가이 쏘아 맞추기'를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샤가이'는 양의 복사뼈로 만든 뼛조각을 말한다. 이 조각을 손가락으로 튕겨서 과녁을 맞히는 놀이다. 몽골인들은 그들이 기르던 가축의 뼈 가운데 특정 부분을 경외하는 풍속이 있는데, '샤가이'는 이러한 맥락에서 탄생한 놀이다. 보통 6~8명이 한 팀을 이루며, 놀이용 응원가도 전해진다. 선수들은 수공예로 만든 도구와 장비를 개인별로 소장하며, 자신만의 경기복을 입을 정도로 놀이를 대하는 태도가 진지하다. 이 놀이와 관련된 의식이나 지식, 기술, 각종 도구와 액세서리, 장비 제작법 등은 도제식으로 전승되고 있으며, 2014년 세계문화유산에도 등재됐다. 근래 이 놀이는 나담 축제의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기도 했다.
경기의 방식이나 규칙이 우리가 어릴 때 즐겼던 비석치기와 구슬치기를 합쳐놓은 것 같았다. 이쯤이야. 왕년에 동네를 제패했던 실력을 발휘해 볼까. 매끈한 대리석 판 위에 샤가이를 조심스레 놓고 과녁을 향해 튕겼다. 아이쿠 짧다. 이번엔, 헉 너무 길다. 마음 같지 않게 번번이 길거나 짧고, 방향은 어긋났다.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샤가이는 어릴 때 갖고 놀던 구슬과는 다른 감각을 요구했다. 몇 번이나 실패한 끝에 드디어 명중. 지켜보고 섰던 사람들이 한 팀인 것처럼 환호성을 질렀다. 외부 활동이 힘든 겨울에 좁은 게르 안에서도 쉽게 즐길 수 있는 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어울리다 자연스럽게 동료애가 생겨나고 거친 자연환경을 함께 극복하고자 하는 단결심도 생길 것이다.
양의 복사뼈로 즐기는 샤가이 놀이
2014년 세계문화유산에도 등재돼
민요 '우르틴두'·영웅서사시 '툴리'
전통악기 마두금 선율과 어우러져
민속춤 비옐게 공연·전통의상 체험
종마 경주에 역동적 기마술 쇼까지
말과 함께한 몽골문화의 힘 느껴져
몽골의 전통 민속춤 비옐게 전수자의 공연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비옐게는 주로 호브드와 우브스 주에서 전승됐으며, 몽골 민족 무용의 원형으로 인정받는다. 몽골의 풍속과 문화를 기록한 '몽골비사'에 '몽골인들의 행복은 춤이다'라는 기록이 있을 만큼 몽골인들은 남녀노소 모두 춤을 즐긴다. 몽골 민속춤은 게르라는 좁은 공간 때문에 팔다리와 어깨, 머리와 가슴, 견갑골까지 모든 신체 부위를 활용한다. 게르 안의 비옐게 공연자는 3대가 함께 모인 가족처럼 보였다. 특히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펼친 공연은 흥겨운 리듬 속 익살스러운 동작과 함께 짙은 페이소스가 느껴졌다. 좁은 게르 안에서 반쯤 앉기도 하고 또 때로 양반다리 자세로 빚어내는 노구의 유연함은 경탄스러웠다. 그렇지만 보는 내내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는 유행가 가사가 떠올랐다. 주름진 얼굴이 만들어내는 표정과 동작 하나하나가 고단한 삶의 역정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전통민요 '우르틴두'와 몽골의 구전 영웅 서사시 '툴리'를 시연하는 곳도 꼭 들러볼 만한 곳이다. 우르틴두는 장가(長歌) 형식의 서정적 노래이다. 풍부한 장식음, 가성, 폭넓은 음역, 자유로운 음률 등이 특징인데, 이는 광활한 초원을 무대로 늘 이동해야 하는 유목 생활에 따라 자연스럽게 형성된 요소들이다. 툴리의 가사는 민족에 대한 축복과 찬양, 주술, 신화, 동화, 민속 등 다양한 내용이 들어 있어 몽골의 역사서라 부를 만하다. 낭송자는 뛰어난 기억력의 소유자들이었다. 그 긴 이야기가 막힘없이 술술 나왔다. 이들은 극적 요소를 가미한 노래와 즉흥적인 사설, 자유로운 선율 등을 결합하여 영웅적 이야기를 맛깔나게 풀어내었다.
이러한 춤과 노래, 낭송 등에 빠지지 않는 전통악기가 마두금(馬頭琴)으로 잘 알려진 모린후르이다. 모린후르는 13~14세기 몽골제국 시절부터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몽골인들에게는 악기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말머리 모양에서 짐작하듯이 몽골인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말의 숭배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몽골인의 의식이나 행사에 늘 함께하는 악기이다. 단 두 줄의 현으로 3옥타브를 오르내리며 애절하면서도 힘차고, 다채롭고도 풍부한 선율을 만들어낸다. 모린후르는 말, 소, 양, 낙타 등 짐승의 마음까지 표현할 수 있다고 한다. 난산의 고통으로 새끼를 품지 않고 수유를 기피하는 어미 낙타도 모린후르의 선율을 듣고 마음을 열고 수유를 한단다. 이것이 2015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새끼 낙타를 위한 달래기 의식'이다. 모린후르 반주에 몸짓과 독송을 섞어 낙타를 달래는 전통 의식이다. 이처럼 모린후르는 짐승도 감동시키는 가장 자연 친화적인 악기이다. 마두금 선율을 들으면 자연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유목민의 삶과 인간의 희로애락이 절로 느껴진다.
몽골의 전통의상을 체험하는 게르도 있었다. 몽골 복식은 기본적으로 발목까지 덮이는 두루마기, 모자, 조끼, 허리띠, 장화 등으로 구성된다. 델이라고 불리는 두루마기는 말을 타고 이동할 때 다리, 무릎, 발 부분이 추위에 노출되는 것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델 안에 바지를 입으며, 허리에는 긴 천이나 가죽으로 만든 허리띠를 착용하고, 고탈이라는 장화를 신는다. 특히 몽골 전통 복식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모자와 허리띠이다. 몽골인들은 모자와 허리띠를 권위의 상징으로 여긴다. 그래서 남자들은 외출할 때 반드시 모자를 쓰고 나가며, 제사를 지낼 때는 모자를 벗고 허리띠를 목에 거는 관습이 있다. 몽골인들이 집 안 가장 높은 곳에 모자를 걸어두는 관습도 모자에 부여한 권위를 알게 해준다. 나도 전통의상을 한번 입어보았다. 화려한 무늬가 수놓인 두루마기에다 모자까지 쓰니, 주위에서 영락없는 몽골인이라며 놀린다. 또 한바탕 웃음이 번졌다.
그러는 사이 광장 주변이 소란스럽다. 종마 경기 경주마들이 결승선으로 들어오고 있단다. 사람들이 서둘러 결승지점으로 몰려갔다. 이곳에 모인 몽골인들은 사실 이 순간을 보기 위해서이다. '사람은 말에서 태어난다'는 속담이 있을 만큼 몽골인들은 말과 친하다. 또 '앉아 있는 천재보다 돌아다니는 바보가 낫다'는 속담도 있다. 모두 유목 생활의 '이동성'을 중시한 말들일 것이다. 이런 속담에서 몽골인들이 말에 대해 가지는 각별한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지금도 몽골인들은 걸음마보다 승마를 먼저 배운다고 말한다. 또 말을 타는 순간 아이가 사람으로 완성된다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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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마를 마치고 광장으로 들어오는 기수와 아버지. 몽골의 사내아이는 아버지에게 모든 생존 방식을 배운다고 한다. |
나담 축제에는 말의 나이에 따라 여섯 종류의 경마가 열리는데, 오늘은 그 첫 번째 종마 경주와 가장 인기 있는 6살 이상 경마가 열린다. 스탠드에 앉아서 사람들이 바라보는 곳을 응시했지만 미세한 흙먼지만 보였다. 그렇지만 몽골 사람들은 벌써 말들이 들어오고 있다며 소리를 지른다. 역시 몽골인들의 시력은 대단하다. 한참 뒤에야 경주마를 에스코트하는 지프차의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질주하는 말의 모습은 생각보다 훨씬 역동적이었다. 선두의 말이 결승선을 통과하자 사람들이 몰려가 말의 머리에 아이락을 부어 주면서 노래를 불렀다. 축하 세리머니였다. 사람들은 또 너도나도 우승마의 엉덩이를 쓰다듬었다. 우승한 말의 땀을 닦으면 한 해 행운이 깃들고 일이 잘 풀린다는 속설 때문이란다. 우승마에는 '투멩 에흐'라는 명칭이 수여되는데, '만 마리 말 중 으뜸'이라는 의미다. 우승한 말의 가격은 일반 말에 비해 80~100배 이상 올라간단다.
말 가격보다 더 놀란 것은 아버지와 함께 광장으로 들어오는 경주마와 기수들이었다. 너무 어렸기 때문이었다. 아직 목마나 타고 어리광을 부려도 될 어린아이였다. 실제 경마 기수는 6세에서 12세 사이의 아이들이다. 무게 때문이란다. '유목민은 말 안장에서 태어난다'는 말처럼 초원에 사는 아이들은 3~4세부터 말을 타기 시작한다. 그래서 몽골의 사내아이는 아버지에게 모든 생존 방식을 배운다고 한다. 말에서 태어나 말에서 자라고 말과 함께 살아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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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마술 쇼. 달리는 말 위에서 물구나무를 서기도 하고 옆으로 몸을 숨기기도 하며, 위에서 인간 탑을 만들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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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응상 (대구대 문화예술학부 교수) |
종마 경기가 끝난 후 펼쳐진 기마술 쇼는 말과 일체가 된 몽골인들의 삶을 보여주었다. 달리는 말 위에서 물구나무를 서기도 하고, 옆으로 몸을 숨기기도 했으며, 위에서 인간 탑을 만들기도 했다. 한때 세계를 정복했던 몽골 기마병의 모습이 이러했을 것이다. 멀리서 보면 달려오는 말만 보이는데 가까이 오자 갑자기 말 옆구리에서 병사가 불쑥 튀어 올라 칼을 휘둘렀다니, 유럽 군대가 혼비백산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 기마술 쇼를 보니 10만명의 병사로 2억~3억명의 유럽을 정복한 몽골제국 군대의 비밀을 알 것도 같았다.
나담 축제는 몽골 사람들의 삶의 축소판이었다. 거친 자연을 버텨낸 몽골인의 힘이 있었고,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몽골인의 지혜가 있었고, 자연 속에서 만들어낸 몽골인의 문화가 있었다.
대구대 문화예술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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