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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TV

[별천지 영양의 숲과 마을 .1] 영양 죽파리 자작나무 숲

2024-06-20

하얀 몸, 검은 눈…순결한 솟구침에 비명 같은 탄성

[별천지 영양의 숲과 마을 .1] 영양 죽파리 자작나무 숲
영양 죽파리 자작나무 숲은 1993년에 조성되었으며 전체 면적은 축구장 40개 넓이로 국내 최대 규모다. 자작나무 숲길은 1.49㎞의 1코스와 1.52㎞의 2코스로 나뉘어 있다.

산속에 줄곧 멈추어 있는 것만 같은 길이다. 이따금 스치는 크고 작은 밭들이 멀지 않은 어딘가에 사람의 마을이 있다고 알려줄 뿐이다. 길은 장파천(長波川)을 거슬러 간다. 천의 긴 물결은 오십봉에서 오고, 또 검마산에서 오고, 심지어 울진 백암산의 서쪽 기슭에서도 흘러왔다. 집들이 보인다. 천변의 마을은 죽파리(竹坡里)다. 마을을 개척한 이는 보부상들이었다고 한다. 울진과 영덕의 해산물을 이고 지고 팔러 다니다 마침내 이곳에 사로잡혀 정착했는데 대나무가 많아 '죽파'라 불렀다고 전한다. 죽파리 마을회관과 반딧불이가 웃는 빨간 버스정류장을 지난다. 마을은 하죽파, 마을 안 고샅길의 이름은 자작나무1길이다. 장파천 따라 자작나무길과 함께 간다, 자작나무 숲을 만나러.

[별천지 영양의 숲과 마을 .1] 영양 죽파리 자작나무 숲
자작나무 숲으로 이어지는 장파천은 캠핑을 즐기기에도 제격이다.

◆자작나무 숲으로 가는 자작나무길

'자작나무 숲 가는 길' 안내판을 두엇 지나면 도로의 끝이다. 천을 향해 몸을 기울인 커다란 느티나무와 작은 성황당이 있고 맞은편에는 장파경로당이 자리한다. 이곳은 상죽파, 자연부락의 이름은 장파(將坡)다. 장파천과 음이 같지만, 뜻은 다르다. 조선 인조 16년인 1639년 김충엽(金忠葉)이라는 이가 마을을 개척하면서 장군과 같이 기개와 정기가 높아지라고 붙인 이름이라 한다. 이곳에서 자작나무 숲 입구까지는 약 4.7㎞의 임도다. 도보로 1시간 이상 소요되는 거리다. 크게 힘들지는 않지만, 영양군에서 무료로 운행하는 전기 자동차 셔틀을 타도 된다. 주중에는 오전 9시30분부터 1시간 간격으로 출발해 자작나무 숲까지 편하게 갈 수 있다. 주말에는 오전 9시30분부터 30분 간격으로 운영되는데 중간에 하차 후 도보로 30분 정도 이동해야 한다. 월요일은 운행하지 않는다. 주차장 앞에 있는 간결한 현대식 건물은 '카페 자작(JAJAK)'이다. 자작나무 숲으로 들어가는 듯한 입구를 통과하면 헌칠한 높이에 시원한 풍경을 가진 카페 공간이 열린다. 전기차를 기다리며 차 한 잔 마셔도 좋겠다.


새·바람소리에다 자작자작 걸음소리
숲 향하는 총길이 1413m 자작나무길
놀랍도록 청명한 계곡이 내내 함께해



길가에 꼭 붙은 서너 채의 집을 지나면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 그리고 자작자작 걸음소리만 들린다. 하하하 참을 수 없이 즐거운 웃음소리도 새소리 같고 물소리 같고 바람소리 같다. 이 길의 이름은 '자작나무길'이다. 총길이 1천413m로 지난해 10월에 고시되었다. 자작나무길이 자작나무 숲으로 향한다. 내내 놀랍도록 청명한 계곡이 그 길을 함께한다. 이전에는 어느 사이 먹통이 되던 휴대전화가 내내 생생하다. 통신안테나가 생긴 모양이다. 더 이상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아이가 칭얼대며 아빠의 등에 업힌다. 아이보다 한 뼘 더 큰 아이는 씩씩하게 달려 나간다.

전기차 셔틀 중간 승하차장을 지나면 보다 깊게 우회하는 숲 산책로도 있다. 원시림과 같은 숲속에 짧게는 200m, 길게는 600m가 넘는 숲길이 임도와 만났다 헤어지기를 반복한다. 물박달나무, 단풍나무, 금강소나무 등 멋있는 나무들이 울울창창하고 계류는 없는 듯 투명하다. 숲의 맑은 낯빛과 시선을 맞추고, 벤치에 앉아 물소리를 듣고, 쉼터에 기대 다리쉼하고, 포토존에 서서 씽긋 웃으며 힘듦 잊고 멀리멀리 가다 보면 어느새 저 앞이 달처럼 환하다. 자작나무 숲이다.

[별천지 영양의 숲과 마을 .1] 영양 죽파리 자작나무 숲
영양 죽파리 자작나무 숲은 산악자전거 마니아들에게도 인기 있는 곳이다.

◆축구장 40개 넓이에 빼곡한 수천 개의 눈…자작나무 숲

수천 개의 눈이 일시에 나를 바라본다. 하얀 몸에 새겨진 검은 옹이들이 단번에 나에게로 와 박힌다. 가슴이 아플 만큼 아름다운 숲, 투명한 공기처럼 솟구친 하얀 나무들의 숲, 그들의 순결한 기립 앞에서 그만 먹먹해진다. 곧 여기저기서 비명과 같은 탄성들이 터져 나온다.

자작나무 숲은 아주 넓다. 전체 면적은 30.6㏊로 축구장 40개 크기라 한다. 숲은 1993년에 조성되었다. 키가 30㎝ 정도였던 어린나무들은 이제 서른이 넘어 허리가 60㎝에 육박하고 키는 20m로 까마득하다. 자작나무는 강하다. 썩지도 않고 벌레도 먹지 않는다. 자작나무는 암수 한그루다. 나무의 높이가 5m 이상이 되면 잎과 함께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다. 암수가 함께인데도 '당신을 기다립니다'라는 아름다운 꽃말을 가졌다. 종자는 가볍고 날개가 있어 멀리 날아갈 수 있다. 내려앉은 자리에 햇볕만 가득하면 곧 발아해 숲을 만든다. 제 몸의 옹이들은 높이 자라기 위해 스스로 잔가지를 떨궈 낸 흉터다. "어쩌면 이렇게 하얗지?" "어떻게 이렇게 매끈매끈해?" "어떻게 이렇게 물이 맑아?" 아이들의 질문이 쏟아진다. 아빠 등에 업혀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다던 꼬마는 자작나무 숲에서 날개를 단 듯하다.


허리둘레 60㎝ 육박 나무들이 까마득
노란·파란 리본 따라 두 코스의 숲길
전망 데크에 서면 눈부신 우듬지 형상



자작나무 숲길은 1.49㎞의 1코스와 1.52㎞의 2코스로 나누어져 있다. 연접한 전나무 숲길과 임도도 있다. 노란 리본을 따라 1코스로 가도 되고, 파란 리본을 쫓아 2코스로 가도 되고, 그저 마음 가는 대로, 발길 닿는 대로 걸어도 좋다. 산기슭을 가득 메운 자작나무 사이로 아담한 오솔길이 이어지고 군데군데 포토존이 자작나무를 배경으로 보기 좋게 놓여 있다. 'Birch Forest'라고 적힌 귀여운 이정표를 본다. 자작나무는 영어로 'Birch', 독일어로 'Birke', 불어로는 'Bouleau'다. 모두 '숲속의 귀부인' 또는 '수목의 여왕'이라는 의미를 지녔다고 한다. 방부목이 깔린 계단을 화사한 귀부인처럼 걷는다. 야자 매트가 깔린 숲길을 차분한 여왕처럼 걷는다. 고대 게르만인들에게 자작나무는 신들의 어머니인 여신 프리그(Frigg)의 나무였다. 생명과 생장과 축복을 뜻했고 사랑과 기쁨의 표시였다. 독일에서는 프리카(Frigga)라고 불렸다. '사랑받는 자'라는 뜻이다. 영어의 금요일(Friday)은 그녀의 이름에서 유래한다. 금요일은 '사랑을 나누는 날'이다. 사랑과 축복이 이 나무에 깃들어 있다.

1코스와 2코스의 끝은 전망 데크다. 고도 800m를 훌쩍 넘어서는 곳이다. 조망이 열리고, 산 사면을 빽빽하게 수놓은 자작나무 우듬지의 눈부신 형상이 경탄으로 펼쳐진다. 자작나무는 '자작자작' 소리를 내며 탄다고 해서 자작나무가 되었다고 한다. 수피는 겹을 이루고 기름기가 많다. 추위를 견디기 위해서다. 자작나무를 뜻하는 한자(樺)에는 빛날 화(華)가 들어간다. 결혼을 의미하는 '화촉(華燭)을 밝힌다'는 말이 자작나무(樺)에서 유래한다. 기름기가 많은 자작나무 껍질은 촛불이 생기기 전의 빛이었다. 가로로 얇게 벗겨지는 하얀 수피는 종이로 사용되었다. 자작나무 수피에 연애 편지를 써서 보내면 사랑이 이루어진다고 믿었다.

자작나무는 본질적으로 빛의 나무다. 경주 천마총에서 발견되었던 말안장에 천마가 그려져 있다. 그 천마도의 재료가 자작나무 껍질이라고 한다. 종이처럼 얇고 썩지도 않고 벌레도 먹지 않아서일까. 혹은 빛처럼 날고 싶어서였을까. 해리포터의 마법 빗자루 파이어볼트도 자작나무로 만들어졌다는 소문이 있다.

영양 죽파리 자작나무 숲은 국가 지정 국유림 명품 숲이다. 2019년부터 관광 자원화를 위해 산림청과 영양군이 자연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추가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시인 고은의 '자작나무 숲으로 가서'라는 시에 이런 구절이 있다.

"…그만 나는 영문 모를 드넓은 자작나무 분지로 접어들었다/ 누군가가 가라고 내 등을 떠밀었는지 나는 뒤돌아보았다/ 아무도 없다…자작나무는 저희들끼리건만 찾아든 나까지 하나가 된다/ 누구나 더 여기 오지 못해도 여기에 온 것이나 다름없이/ 자작나무는 오지 못한 사람 하나하나와도 함께인 양 아름답다."

오지 못한 사람 하나하나와 함께여서 미안해진다. 자작자작 마음이 타들어 가면 온 산이 함께 자작자작 한다.

글=류혜숙 영남일보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공동기획 : 영양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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