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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석의 발견과 되새김] 피서로서의 시 읽기는 비현실적일까?

2024-07-09

정자그늘서 시집을 펼쳤다
이따금 책장 넘기는 소리가
잎새 부딪치는 바람소리 같아
시를 읽다가 고개를 들면
강에 발 담근 쇠백로가 눈에…

[이하석의 발견과 되새김] 피서로서의 시 읽기는 비현실적일까?
이하석 시인

#시집 읽기

예상대로 올여름은 예년보다 더울 것 같다. 더위를 피해 집 부근의 신천 상류 강변을 걸어도 바람 한 점 없어서 등에 땀이 줄줄 흐른다.

강변 정자 그늘에 앉아 시집을 펼친다. 더위에 시집이라니? 다들 휴대폰을 뒤적이고 있는데 혼자 시집을 펼친 내가 새삼 '이색적으로' 돌아다 보인다. 뭐 어때 하고 개의치 않는다. 나무 그늘에서 책을 읽는 풍경은 과거에는 흔히 보였던 일이었다.

사실 종이책을 읽는 이들을 이제 보기가 힘들어졌다. 그 대신 e-book으로 독서를 하는 -독서를 뒤적거리는- 세상으로 바뀌고 있다. 그래, 강변의 벤치와 나무 그늘에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이들 중에는 열심히 전자책들을 읽고 있는 이들도 있으리라. 그중에는 시를 찾아보는 이도 있지 않을까라고 기대해 본다. 그런 이들은 드물겠지만, 더운 여름을 시로 도피하는 피서의 방법을 그렇게라도 생각해 보는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강변 나무 그늘에 앉아 종이책을 뒤적이는 이는 거의 없다. 이미 스마트폰의 세계에 빠져서 그 속의 말들을 뒤적이고, 정보를 찾고, 카톡 같은 교신에 빠진 세상이 된 것이다. 정보를 뒤적이며 잠깐 들여다보고는 시선을 돌려 다른 정보들을 찾는 일의 반복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과거의 독서법과 다른 가볍고 표피적이면서도 쓸데없는 광범위한 관심사에 빠진 모습이다. 종이책을 읽다 마음이 머무는 부분을 속으로 되뇌면서 되읽고, 밑줄을 치거나 그 면을 접어두는 그런 맛도 없다.

말이 나온 김에 종이책의 운명을 생각한다. 내가 시집을 뒤적이는 이런 모습이 시대에 역행하거나 뒤진 모습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해보면서, 책이 여전히 '세계의 비참'을 줄이고, '미래의 행복'을 찾을 열쇠를 가질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얼마 전 끝난 서울국제도서전의 팸플릿에 쓰인 말을 가지고 하는 의문이다. 책의 유통구조가 변화하는 데 따라 종이책에 대한 기대도 쇠약해진다. 종이책에서 전자책으로 옮겨가는 이 강한 추세 앞에서, 나도 어쩔 수 없이 전자 산업의 정보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자조한다. 얼마 전에 낸 나의 시집이 한국출판산업진흥원의 지원사업에 선정되어 전자책이 제작됐다는 연락을 며칠 전에 받으며 든 생각이다.

어쨌든 강변 그늘은 시 읽기에 적당한 장소다. 내게 있어서 여전히 종이책이 대세인 것이다. 이따금 넘기는 책장 소리가 잎새에 부딪치는 바람 소리 같다. 시를 읽다가 고개를 들면 강에 발을 담근 채 온몸으로 강물을 읽느라 골똘하게 서 있는 쇠백로들이 눈에 들어온다.

#시의 시선

한 시인은 "나는 남의 시를 읽지 않는다"고 했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라, 짐짓 해본 소리라고 생각한다. 라캉은 시가 곧 '세계'라고 했는데, 그 세계는 고유하고도 독창적이며 가장 현실적인 세계이기도 하다. 좋은 시들은 각각 '세계'를 가지고 있다. 그 세계가 어찌 궁금하지 않겠는가? 많은 시집들 속에서 진정으로 한 '세계'를 보여주는 시들에 대한 궁금증으로 시집을 뒤적이게 되는 것이다.

나 역시 그런 심정으로 거의 매일 한두 권씩 부쳐오는 시집들을 뒤적이며 여름을 보낸다.

오늘은 "그대라는 말도 수국으로 시들었으니"('식물의 손길') "이번 여름은 빗소리가 자주 붓을 들었다"('여름의 낙관')란 말에 밑줄을 친다. 계절에 대한 민감한 감정을 느낀다. 어제 부쳐온 유종인 시인의 시집 '그대를 바라는 일이 언덕이 되었다'에 나오는 구절이다. 유 시인의 시선은 현실에 대한 민감함 못지 않게 미세한 세계에 대한 긍정으로 가득 차 있는 듯 보인다. "나는 춘란의 말라가는 뿌리를 감싸기 위해 이끼를 북어처럼 뜯어 감쌌네"('이끼 반야')라는 구절도 그 점을 나타내 보인다. 멸종해가는 지상의 많은 식물들(동식물들을 포함해서)을 감싸는 것은 거창한 식견이나 과학이 아니라 사람들이 하찮게 여기는 이끼들임을 강조한다. 그처럼 "세상을 전복할 힘이 없는 무력하고 미미해 보이는 존재들에 대한 시선"(최형심)을 통해, 이끼 같은 세상의 밑바닥을 감싸는 것들이 기실은 초월적인 존재와 가장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최근 들어 이따금 읽고 있는 시집 중에 이 시집과 통하는 시선을 보여주는 시가 또 있다. 올해 이육사시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된 정우영 시인의 시집 '순한 먼지들의 책방'이 그것이다.

"뒷방 고모는 밤 깊어 한 시쯤 되면 꾸물꾸물 일어나 아궁이에 불 지피는 시늉을 한다.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 하루살이 같은 것들, 부끄러운 거미들, 물결무늬다리벌레들, 파닥거리거나 고물거리는 희한한 종족들이 줄줄이 몰려와 불을 쬔다. 세상 나른한 표정들 아닐까. 보이지는 않지만 그런 느낌으로 고모 곁에서들 쉴 것이다."('유성으로 떠서')

'고모'와 함께 따뜻한 온기를 쬐는 것들이야말로 실로 소중한 존재들임을 시인은 변호하면서 연민의 시선으로 감싸 보인다. 연민의 연대와 그야말로 '보살과 중생의 분별없는 조화'를 보여주는 광경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소외된 사람과 사물과 자연에 대한 연민의 시선은 백석, 이용악, 김수영, 박용래, 신경림 등과 이어지는 우리 문학의 소중한 감성 자산이기도 하다.

#연민의 연대

이끼와 같은 세상 사람들이 하찮게 여기고 미미해 보이는 존재와 자잘하지만 '무궁무진하고도 오묘한 빛에 휩싸인' 것들은 기실 세상을 떠받치는 존재들이다. 거의 언급조차 하기 싫은, 최근 들어 더해지고 있는, 온갖 말들의 수사로 남을 핀잔하고 공격하기에 골몰하는 후안무치한 정치인들의 그 하찮고 같잖은 짓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진정으로 '세계를 살리는' 위대한 존재들의 모습들인 것이다.

우리 삶은 이런 것들의 얽힘과 우거짐으로 생기를 더하고 북돋워지고 있음을 나는 시집들을 통해 확인한다. 그리하여 그 일에 동참하려는 의지만이 이 무덥고 강렬한 여름의 고통을 건너가는 힘이 될 것을 믿는다.
이하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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