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강원 춘천서 발견 유해, 고 강한찬 일병 확인
1950년 6월 추천 전투서 장렬히 전사
전사자 발굴 노력으로 16년 만에 신원 확인
11일 대구 달성토성마을서 귀환 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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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강원도 춘천에서 발굴된 고 강한찬 일병의 유해. 국방부 제공. |
조국의 위기에 기꺼이 목숨을 내던졌던 18세 청춘이 고향으로 '금의환향'했다. 강산이 여섯 번 변할 동안 차디찬 땅 속에 묻혀 있던 '호국 영웅'은 전사자 발굴을 위한 국군의 끈질긴 노력 끝에 이젠 백발이 된 여동생의 품에 안겼다.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이하 국유단)은 2008년 강원도 춘천에서 발굴된 유해의 신원을 6·25전쟁 당시 '춘천지구 전투'에서 전사한 고(故) 강한찬 일병으로 최종 확인했다고 11일 밝혔다. 이로써 2000년 4월 유해발굴이 시작된 이후 신원이 확인된 국군 전사자는 총 235명으로 늘어났다.
앞서 국유단은 전사 연구를 토대로 2008년 5월 강원도 춘천시 동산면 일대에서 발굴을 나선 결과, 개인 호로 추정되는 곳에서 곧게 누운 자세로 있는 두개골과 정강이뼈 등을 발견했다.
이후 국유단 기동 탐문관이 고인의 병적자료에서 본적지가 경북 칠곡군인 것을 확인했다. 해당 지역의 제적등본 기록과 비교해 여동생 강길순(84)씨를 지난 5월 찾았고, 유전자 시료 채취 및 분석을 통해 유해 발굴 16년 만에 고인과의 가족관계를 확인했다.
국유단에 따르면, 고인은 1932년 1월 경북 칠곡군에서 2남 3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가정형편이 여의치 않아 부모님을 도와 농사를 지으며 생계를 유지한 것으로 전해진다.
입대 당시 병적이 확인되지 않아 고인의 입대 일자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정전 이후 1957년 발급된 전사 확인서를 통해 국군 제6사단 소속으로 '춘천지구 전투'에 참전한 사실이 확인됐다. 춘천지구 전투는 6·25전쟁 개전 일인 1950년 6월25일부터 28일까지 춘천 옥산포, 소양강, 봉의산 일대에서 북한군의 남하를 지연시킨 구국의 전투다. 6·25전쟁에서 국군 최초의 승전으로도 꼽힌다.
하지만, 고인은 전쟁 발발 3일 만인 1950년 6월 27일 북한군의 남하를 치열하게 저지하다 18세의 꽃다운 나이로 장렬히 전사했다. 고인의 희생은 국군이 한강 방어선을 구축하고 유엔군이 참전할 시간을 확보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게 국방부의 설명이다.
호국 영웅의 귀환에 따라 국방부는 11일 대구 서구에 있는 달성토성마을에서 귀환 행사를 진행했다. 유가족에게 고인의 참전 과정과 유해발굴 경과 등을 설명하고, 신원 확인 통지서와 호국영웅 귀환 패, 유품 등이 담긴 '호국의 얼 함'을 유가족에게 전달했다.
고인의 조카 강영호(70)씨는 "아버지와 고모가 평생 삼촌을 찾느라 고생했는데, 이렇게 유해라도 볼 수 있어 다행이다. 병환으로 누워계신 고모가 눈물을 흘리며 감격해 했다"라며 "앞으로도 더 많은 6·25 전사자에 대한 신원 확인이 됐으면 좋겠다"라고 전했다.
이승엽기자 sylee@yeongnam.com

이승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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