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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청산에 살리라

2024-08-01

[문화산책] 청산에 살리라
이선경<이선경가곡연구소 대표>

산에서 내려오는 신선한 아침 공기를 매일 맞고 내 집 거실에서 사계절을 내내 즐길 수 있는 호사를 누리는 집이 몇이나 될까? 산 아래 우리집은 역시 달랐다. 동 틀 무렵이면 저절로 눈이 떨어졌고 순간순간 가슴이 벌렁거렸다. 삶이 지루하면 이사를 하라는 말이 정답이다.

사흘째 되던 날…. 새벽기상과 두근거리는 내 심장은 집 앞을 가로지르는 대로의 자동차소음과 밤낮 가리지 않는 앰뷸런스 덕분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중 새시에 걸고리까지 단단히 하니 새벽기상은 남의 이야기고 벌렁거리던 심장도 제자리를 찾았다. 열린 창으로 불어오는 아침 산바람의 산뷰 라이프는 단 삼일 만에 허망하게 끝나버렸다.

지금의 우리 집에 이사온지 며칠이면 두 달이다. 30년 된 정원에는 나무들이 무성하고 새소리, 매미소리, 벌레소리가 그냥 '산'이다. 아침 공기도 정말 맑고 개운하다. 눈 앞에 두고도 못 본 '청산'을 이제서야 귀로 만난다. 새소리에 눈을 떠 창 밖 울창한 나무들을 보니 노래 한 소절이 저절로 떠오른다.

"나는 수풀 우거진 청산에 살으리라. 나의 마음 푸르러 청산에 살으리라."

1973년 5월 2일, 대한일보 대표가 서대문 구치소로 들어가는 모습을 놓치지 않으려고 각 언론사 기자들이 앞을 다투어 플래시를 터트렸다. '대한일보 수재의연금 횡령 사건'은 이듬해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당시 정권에 쓴 소리를 마다 않던 대한일보는 이미 폐간이 된 뒤였다.

이 대한일보의 대표가 바로 가곡'청산에 살리라' 작곡가 김연준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가장 좋아했던 노래였으며 그의 유언대로 영결식장의 추모곡으로 울려퍼진 이 곡은 김연준이 옥중에서 쓴 시가 가사이다. 세상 번뇌 시름 잊고,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고 푸른 빛을 잃지 않는 '청산'과 같이 살겠다는 그의 의지가 곡에 그대로 녹아있다.

어린 시절부터 음악을 워낙 좋아한 김연준은 당시 유명했던 현제명이 있는 연희전문학교에 진학하였는데 그가 평생 1천500여 곡에 달하는 가곡을 작곡하게 된 것도 그 덕분이 아닐까 싶다. 대학을 세우겠다는 의지로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동아공과학원'을 설립했고 1944년 일제 탄압으로 비록 학교 문을 닫았지만 광복 후 한양공과대학으로, 1960년에는 한양대학교 음대를 더하여 종합대학인 현재의 한양대학교로 거듭나게 되었다. 한양대학교의 교가 역시 김연준의 작사 작곡이다.

오선에 담겨진 김연준의 민주화 의지와 소망은 '청산에 살리라' 라는 명곡을 남겼고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위안을 준다. 김연준 탄생 110주년을 기념하는 올해, 8월이 지나기 전에 이 곡을 무대에서 꼭 함께 해야겠다. 대한민국 격동의 시대를 관통한 작곡가 김연준의 94년 인생이 남긴 빛과 소금에 진심 어린 경의를 표한다.

이선경<이선경가곡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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