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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과 책상 사이] 질서와 무질서

2024-08-19

[밥상과 책상 사이] 질서와 무질서
윤일현〈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 대표〉

정리 정돈은 타고난 성격, 성장기 환경 등과 관련이 있다. 나는 정리 정돈을 잘 못 할 뿐만 아니라, 흩어져 있어도 하는 일에 별로 지장을 안 받는다. 나의 이런 습관은 어린 시절 성장 환경과 관계가 있다. 나는 막내로 누나가 다섯 명 있었다. 자고 일어나 몸만 빠져나가면 됐다. 누나들이 알아서 다 해주니 이불을 펴고 개는 일은 나와 상관없었다. 심지어 벽에 걸린 벽시계 태엽 감는 일조차 누나들이 했다. 나는 형광등 전구도 어른이 되고 나서야 직접 갈아보았다. 나와 성향이 다른 아내는 이 문제로 늘 스트레스를 받는다. 어떻게 이런 무질서한 상태로 견딜 수 있는지 신기하다고 한다. 솔직히 고백하면 헝클어져 있어도 별로 불편하지 않다. 나는 무질서 속에서도 한 가지에 집중할 수 있는 것이 나의 장점이라고 강변한다. 이렇게 우기지만, 성격과 습관의 차이를 조정하기 위해 나는 열흘에 한 번 정도 책상 정리를 한다.

최근 책상 정리를 하려고 보니 내가 봐도 한심할 정도로 어지러웠다. 책상을 치우기 전에 내 책상이 얼마나 큰지 확인하기 위해 줄자로 재보았다. 가로 210㎝, 세로 100㎝로 꽤 컸다. 의자 앞엔 탁상용 컴퓨터 화면 두 개와 자판기가 있고, 화면 뒤에는 프린트기, 좌우에는 스피커가 있다. 나머지 공간에는 펼쳐지거나 포개진 책이 수십 권, 출력된 용지 수십 장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2단 책 받침대에는 서너 권이 펼쳐진 채로 겹쳐 있다. 아직 뜯지 않은 배달 된 책도 십여 권씩 쌓여 있다. 얼마 전 평소 하던 대로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버릴 것은 버리고, 큰 서가에서 뽑아 온 책들은 제자리에 꽂았다. 한 시간쯤 정리하니 보기에도 좋고, 기분도 상쾌해졌다. 책상 정리를 할 때마다 자주 이렇게 하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하지만, 마음먹은 대로 잘되지 않는다.

정리 정돈을 엔트로피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엔트로피는 물리학에서 시스템의 무질서도 혹은 무작위성을 나타내는 척도다. 열역학에서 엔트로피가 증가한다는 것은 에너지가 점점 더 무질서한 형태로 변해가서 그 에너지를 유용하게 사용하기가 어려워진다는 의미다. 깨끗하게 정리된 책상이 시간과 더불어 무질서하게 헝클어지는 것도 엔트로피의 증가다. 무질서한 책상을 질서 있게 정리하는 것은 엔트로피를 낮추는 것이다. 엔트로피를 줄이는 과정에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책상을 정리하기 위해서도 수고와 노력이라는 에너지를 투입해야 한다.

문제는 무질서에서 질서의 상태로 만들면 엔트로피는 줄어들 수 있지만, 시스템 외부까지 포함한 전체 우주적인 관점에서는 여전히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엔트로피와 정리 정돈은 상반되는 개념으로 작용하면서도, 궁극적으로는 자연의 법칙 속에서 상호작용을 하는 관계다. 너무 전문적인 관점에서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책상을 정리하는 것, 체계화되지 못한 채 개별적으로 흩어져 있는 정보를 구조화, 조직화하는 것은 엔트로피를 낮추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정리 정돈이나 공부는 주기적으로 마음을 다잡고 노력하지 않으면 다시 무질서와 혼란, 나태로 이어져 엔트로피가 높아진다는 사실도 기억하면 된다.

학창 시절 '작심삼일'이란 말을 자주 들었다. 너무 목표를 크게 잡거나, 한꺼번에 너무 많은 변화를 시도하려고 할 때, 우리는 하루 이틀 실천해 보고는 엄두가 나지 않아 포기하게 된다. 인간의 의지력은 한정된 자원이다. 계속해서 강한 의지력을 요구하는 행동을 유지하기란 어렵다. 의지력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감소하기 때문에, 어떤 일이든 결국은 작심삼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 또한 엔트로피가 증가한다고 할 수 있다. 어떤 관점에서 보면 작심삼일은 나쁜 말이 아닐 수도 있다. 우리의 주의력을 분산시키고 집중을 방해하는 요인이 너무도 많은 요즘 한 번 결심한 것을 사흘 밀고 나간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나는 '작심삼일의 생활화'를 이야기하고 싶다. 일주일에 두 번만 '작심'하면 비교적 긴장된 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말장난 같지만 매우 설득력 있는 말이다.

정리 정돈이든 자기통제든 습관이 형성돼야 한다. 실현할 수 있는 목표 설정, 구체적인 계획 수립, 동기 부여, 주변의 지원을 통해 지속성을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다. 일상생활에서 작은 변화를 소중하게 생각하며 조금씩 개선하려는 마음가짐이 정말 중요하다. 큰 목표를 작게 나누어 정한 시간 안에 반드시 실천하여 성취감을 누적하면 더 힘든 과제도 두려움 없이 실행할 수 있는 자신감을 가지게 된다. 어떤 일이든 실천해 본 사람만이 '습관이 제2의 천성'인 이유를 깨닫게 된다.윤일현<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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