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한 논밭뷰, 은은한 커피향…눈도 입도 즐겁다
카페 버던트의 삭막해 보이는 철문을 들어서면 반전매력을 가진 또 하나의 입구가 펼쳐진다. 제주도에서 공수해온 열대식물과 커피 볶는 냄새가 그윽한 입구는 마치 밀림 속에 들어온 듯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
역전의 용사들이 다시 뭉쳤다. 이것은 비유나 상징이 아니다. 순도 100%의 실제 팩트다.
이곳은 청도역 앞. 청도의 힙한 장소들을 소개하는 스토리텔링 시리즈를 기획하면서 그저 자료조사나 해볼까 하고 떠나온 여행길이었다. 그런데!
'청도' '힙' 하면 빠질 수 없다는 왕년의 댄디보이, 모던걸들이 소식을 듣고 나타났다. 청도역이 위치한 청도의 중심, 청도 고수리에서 나고 자란 1945년생 아버지 이명호, 새마을운동발상지의 상징인 신거역 마을에서 4-H 운동에 참여했던 1948년생 어머니 박연조, 청도의 명물인 '톡톡(talk, talk)한 관광택시'의 원년멤버이자 지금도 청도군의 홍보요원으로 활약 중인 관광택시 기사 외삼촌 박동규, 여기에 계모임이 하도 많아서 청도 구석구석 카페 리스트는 눈 감고도 줄줄 읊는다는 카페 VIP 외숙모 이영숙까지.
지역의 명소는 자고로 '현지인 추천'만 한 게 없고, 청도에서 산 세월만 도합 200년이 훌쩍 넘으니 어디 말만 해보라신다. 청도의 유구한 역사부터 고향집에만 오면 아들 손주들이 간다는 최신 트렌드 핫플레이스까지 머릿속에 싹 다 있다고 했다. 아, 여름 한낮의 열기만큼 이글이글한 이들 청도 예찬론자들의 열정은 과연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 줄 것인가.
카페, 갤러리와 공방, 먹거리 특산물, 청도의 누정, 그리고 청정 청도의 대자연 속 힐링 캠핑까지- 그렇게 역전의 용사들과 함께 5회에 걸친 청도 구석구석 로컬힙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폐공장 리모델링 4년전 문 연 '버던트'
아보카도 커피·신선한 샌드위치 인기
'엘파라이소 365' 드넓은 논밭 한눈에
떡볶이·돈가스·파스타 등 메뉴 다양
어린이 물놀이장 갖춘 '오르비에토'
무더운 여름 온가족 즐기기에 좋아
옛 화학섬유 직물 직조 공장을 개조한 카페 버던트. |
◆ 섬유 폐공장의 화려한 변신 '버던트'
태양이 가장 뜨거운 오후 1시. 카페로 들어가는 도로에서부터 차량의 대기행렬이 시작됐다.
"이게 전부 다 버던트 카페로 가는 차들이야. 그래도 오늘은 대기가 적은 편이어서 금방 들어갈 수 있겠네."
외삼촌이 익숙한 듯 말했다. 지난 1년간 청도에서 현지인들이 가장 많이 찾은 카페이자 외지인들이 가장 많이 찾은 카페(2024년 2월 기준, 한국 관광 데이터랩)답다.
"4년 전에 처음 문 열었을 때는 이 길 끝까지 차들이 바글바글했어. 그래서 청도 사람들이 여기 차 구경하러 왔다니까."
"예전에 이 근처에 큰 섬유공장이 있었던 것 같은데…"
"누님, 그 공장 아입니꺼. 지금 그 공장이 카페로 바뀌었다니까요."
영주 인견, 안동 삼베, 상주 명주, 구미 원사 같은 섬유 도시 대구·경북의 역사에서부터 그 시절 집집이 큰누나들이 방직공장 철야 근무해가며 동생들 학비 대던 이야기들이 실타래처럼 줄줄이 이어졌다. 이곳은 방직공장에서 뽑아낸 실을 다시 한번 꼬아서 더 튼튼하고 쓰기 좋게 만들던 연사 공장이었다는 이야기가 나올 무렵, 드디어 주차공간이 생겼다.
"아보카도가 숲속의 버터라고 하잖아요. 커피를 좋아하는데 건강도 챙기고 싶다 하시면 아보카도 커피를 추천해 드리고요, 샌드위치도 저희 시그니처 메뉴입니다. 매일 산지에서 공수한 신선한 채소와 아보카도를 듬뿍 넣어서 소화에 부담도 없고. 애들부터 어르신들까지 다 좋아해요."
주문을 받는 청년은 서글서글한 인상에 붙임성까지 좋다. 똑 부러지는 알바생을 얻은 사장님은 좋겠다고 했더니, '제가 그 운 좋은 사장입니다' 한다.
카페 버던트는 지역 폐공장을 활용한 대형 카페 콘셉트로 제주에서 성공을 거둔 형제가 2020년 청도에 문을 연 2호점이다. 자연풍광이 좋은 넓은 부지를 찾고 있었는데, 이곳을 보자마자 첫눈에 반했다. 하지만 오픈 즈음에 하필 코로나가 터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지에서 카페를 찾는 방문객들이 많아지면서 이웃에 살고 계신 청도 주민들의 건강을 걱정하게 됐다. 그때부터 카페 운영의 1순위가 '지역 주민'이 됐다고 했다.
"제가 동네 효자는 아니고요. 동네 어르신들도 즐겨 찾을 수 있는 카페를 만들면 저희 매출도 올라가니까요. 건강을 키워드로 다양한 세대가 즐길 수 있는 메뉴를 고민하게 됐는데, 그게 결국 선순환이 되더라고요."
그제야 카운터 위에 놓인 '우리 동네 나눔 가게' 간판이 예사로 보이지 않았다.
"봤제? 이런 데가 사람 사는 데 아이가. 커피 한 잔을 마셔도 이런 데 와서 마셔야 되는 기라! 아, 맛나다! 이 집 커피가 맛있는 게 다 이유가 있었네!"
이제 겨우 첫 카페에서 커피 한 잔 마셨을 뿐인데, 역전의 용사들은 더욱 의기양양해졌다.
카페 엘파라이소 365의 야외 테이블에서는 싱그럽게 펼쳐진 논밭 뷰를 감상할 수 있다. 카페 성지 청도답게 청도의 카페들은 자연에 둘러싸인 건강한 지역 풍경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 도심 속에서 짧은 휴식을 즐기기에 최고다. |
◆논밭 뷰 용어의 탄생지 청도 '엘파라이소 365'
"저어기, 저 논 사이로 쪼매난 길 보이제? 저 길 위에 있는 저 논이 예전에 아빠가 자전거 타고 다니면서 아침저녁으로 물 대던 논이다. 보자… 벌써 입추가 지났제? 이때부터 논에 물을 빼기 시작하는 기라."
"1년 벼농사의 마지막 성패가 이때 날씨에 달려있다 안 캅니꺼. 오늘은 날씨도 좋고, 벼가 뽀독뽀독 잘 자라겠네"
"옛날부터 입추 때는 벼 자라는 소리에 개가 짖는다 캤다. 한 보름만 있으면 벼가 패서 올라올 낀데, 하루이틀 사이에 벼 이삭이 쑥쑥 큰다."
카페 엘파라이소 365의 프라이빗 공간 엘파존. |
3층 규모의 카페 엘파라이소 365에 들어서자 드넓은 청도의 논밭이 한눈에 들어온다. 300개가 넘는 좌석이 여유 있게 배치돼 있는데, 1층부터 3층까지 창가 자리는 이미 만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전의 용사들은 홀의 넓은 자리를 다 놔두고 기어이 창가에 붙어 서서 '이 논 봐라, 저 복숭밭 봐라' 손짓을 한다. 창가 자리에 앉아 떡볶이를 먹고 있던 청춘들의 고개가 그 손짓을 따라 좌로 우로 바쁘게 움직이는 게 보여서 슬며시 웃음이 났다. 분위기는 카페인데 일반적인 카페 메뉴에 더해 국물 떡볶이, 돈가스, 오므라이스, 파스타도 있고 홍시 스무디에 장수 쌍화차까지 그야말로 없는 게 없다. 대표메뉴인 돈가스는 주말에도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까지 2천원 할인하고 있어 아이들과 점심 나들이 나오기에 딱 좋은 곳이다. 여기에, 통창으로 쏟아지는 자연광과 싱그러운 풍경은 덤이다.
전국 유명 카페를 찾아다니는 새로운 여행문화, 카페 투어에서 바다 뷰(view)만큼이나 인기를 끌고 있는 '논밭 뷰'의 탄생지가 바로 이곳 청도 아니던가. 아니나 다를까, 역전의 용사들은 또 한 번 어깨를 으쓱한다.
"청도에서는 어지간하면 다 논밭 뷰지. 봐, 사방이 다 푸릇푸릇하니까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그냥 좋다니까."
외삼촌의 말대로 청도 카페들의 '논밭 뷰' 속에는 도시에서는 좀처럼 느끼기 힘든 계절감과 향수가 고스란히 묻어있다. 불 앞에서 멍 때리는 불멍처럼 우리는 한동안 초록을 바라보며 '논밭멍'을 즐겼다. 어디선가 벼 자라는 소리에 개가 놀랐는지 '멍' 짖을 때까지, 모두가 말없이 조용한 충전을 즐겼다.
청도역에서 차로 2분 거리에 있는 300평 규모의 초대형 베이커리 카페 오르비에토는 청도 고수리 산 중턱에 있어 청도 읍내가 훤히 보이는 마운틴 뷰가 일품이다. |
카페 오르비에토에서는 물놀이를 하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돈가스와 치킨샐러드로 간단하게 요기를 할 수도 있다. |
◆카페의 진화, 어린이 물놀이 카페 '오르비에토'
"더워서 애 보기 힘들 때는 여기 와서 물에 담가 놓으면 돼"
삼 남매에 손주들까지 키워낸 육아 고수 외숙모가 강력 추천한 카페 오르비에토는 빵순이들 눈 돌아가는 다양한 베이커리에 역시나 어마어마한 규모의 루프톱과 물놀이장까지 갖춘 오감 만족 카페다. 말만 카페일 뿐 더운 여름 온 가족이 온전히 하루를 즐길 수 있는 리조트에 가깝다. 더위가 일찍 시작되면서 5월 5일 어린이날부터 물놀이장을 개장했다는데 마운틴 뷰를 즐기면서 부모들은 브런치를 즐기고, 아이들은 물놀이를 즐길 수 있는 1석 3조의 힐링 카페다. 어린아이들이 놀기 좋은 수심 얕은 넓은 수영장이 세군데 있고 그 사이로 물길이 연결돼 있다. 물놀이 하다 출출해지면 카페 한쪽에 놓인 전자레인지와 토스터로 피자며 빵을 데워먹을 수도 있다.
"와… 청도를 매일 지나다녔는데, 이런 곳이 있는 줄 왜 여태 몰랐을까요?"
그러자, 역전의 용사들은 더욱 의기양양해져서 한목소리로 외쳤다.
"뭐 얼마나 봤다고 그카노? 이제 시작인데!"
그렇다. 주말마다 카페 투어만 해도 1년이 모자랄 만큼 카페가 많은 청도. 하지만 카페는 그저 시작일 뿐이었다.
글=이은임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공동기획:청도군
박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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