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세훈 (주) 비즈데이터 이사· 파리1대학 법학박사) |
지방자치와 지방분권이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된 지도 오랜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제 수준에 비해 지방자치의 실현은 한참 멀게만 보인다. 그 이유는 우리나라의 통치시스템은 고도의 경제성장기에 지방자치가 실시되지 못한 상태로 중앙집권적 국가로 발전하였기 때문이다. 이후 국가의 모든 행정을 중앙 관료가 기획하고, 지방행정은 단순히 중앙정부의 정책을 신속하게 집행하도록 하여 효율성만 추구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그 후 지방자치의 부활이 있긴 했지만, 그 운영에 있어서 과거의 틀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방자치의 실현이 세련된 수준으로 올라가려면, 지방분권(권한 이양)의 문제나 지방재정의 독립과 같은 큰 문제들이 중앙정치 차원에서 합의가 되어 제도적으로 안착하여야 한다. 즉, 지방자치에서는 '보충성의 원칙'에 따라 지방정부의 수직적 의존성과 중앙정부의 감독·승인을 받는 방식의 행정개입시스템이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
19세기 초 훔볼트(Wilhelm von Humboldt·1767~1835)는 '국가 행동의 한계에 대하여(On the Limits of State Action)'라는 그의 저서에서 지방자치의 원칙으로서 '보충성의 원칙'을 제시하였다. 프랑스에서도 헌법에 지방자치의 원칙으로 '보충성의 원칙'을 선언하고 있다.
원래 훔볼트가 주장한 보충성은 자연적 단위인 개인·가족·지역사회가 인위적 단위인 정부에 우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방자치의 원칙으로서 '보충성의 원칙'은 지방 사무에 있어서 지방정부가 우선하며, 지방정부가 자력으로 도저히 할 수 없을 때 상급 지방자치단체나 국가가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위임을 받아 보충적으로 그 사무를 수행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지방행정의 모든 것은 지방자치단체가 우선하여 그 책임과 권한을 가지며, 국가는 보충적인 역할만을 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지방자치나 지방분권에서는 아직 '보충성의 원칙'을 제도화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유럽 각국에서는 이 원칙을 제도화하는 방식이 각국의 처한 환경과 역사적 배경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중앙과 지방 관계에 있어서 이 원칙에 따라 지방의 자치권을 확보해 나간다는 방향성은 모두 같다.
이러한 지방자치의 '보충성 원칙'은 단순히 지역 사무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지역인재 활용과도 연결된다. 지방자치단체가 자체적으로 제도화시킬 수 있고 만들어 가야 할 요소들이 있다. 그중의 하나가 지역인재를 양성하여 그들이 지역의 지도자가 되어 지역 살림을 맡도록 하는 것이다. 제퍼슨(Thomas Jefferson·1743~1826)의 '풀뿌리민주주의' 계승자들은 정부의 일은 주민들과 가장 가까운 정부에 주어져 주민들 주도(initiative)로 수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구시와 경북의 산하단체 기관장이나 임원의 경우, 그 지역에서 양성되어 경험을 쌓은 지역인재가 맡는다면 그 자체로 지방자치의 실현에 한 걸음 더 다가선 것이다. 그 지역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중앙정부에서 활동한 퇴직공무원을 지방정부의 산하 단체장으로 '낙하산' 인선을 하는 것은 지방정부의 수직적 의존성을 높임으로써 지방자치의 '보충성의 원칙'을 부정하는 꼴이 된다.
지역에 정체성을 두고 지역 상황을 잘 이해하고 있는 지역인재야말로 지역 행정을 맡을 적임자이다. 지역인재에 의한 행정 주도(initiative)는 주민들에 의한, 주민들을 위한 지방자치의 실현을 앞당기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권세훈 (<주>비즈데이터 이사· 파리1대학 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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