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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윤 칼럼] 누가 우리의 '브란트'가 될 것인가

2024-09-06

[이재윤 칼럼] 누가 우리의 브란트가 될 것인가
이재윤 논설위원

중요한 것은 바뀌는 것이 아니라 바뀌지 않는 것을 아는 것이다(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 혼돈의 의료 개혁도 마찬가지다. 여하히 바뀌지 않을 것을 먼저 점검하는 게 적절한 답을 얻는 지름길이다. △'증원 2,000명' △의대생·전공의 '복귀 거부' △교수 '집단 사직', 이 셋은 좀처럼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의사들이 돌아올 때까지 비상 진료 체계를 돌리겠다는 정부 방침은 오판이다. 의사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대통령은 "문제없다"지만, 계명대 동산병원 상황은 전혀 그렇지 않다. 이 병원은 최근 전공의 191명 중 185명의 사직서를 수리했다. 공들여 왔던 복귀 설득이 끝내 먹히지 않아서다. 이게 다가 아니다. 하반기 전공의 추가모집 지원자가 단 1명(정원 82명)에 그쳤다. 여타 대학병원 사정도 비슷하다. 2학기가 됐지만 경북대 의대생 중 등록자는 4일 현재 고작 2명이다. 2살 아이가 응급실 11곳으로부터 진료 거부당해 한 달째 의식불명에 빠졌다는 소식에 가슴을 쳤다. 연봉 4억원에도 응급실 의사 구하기 어렵다니 딴 세상 얘기 같다. 이 와중에 복귀자 개인정보가 담긴 '블랙리스트'를 무차별 유포한 건 용납 못할 반사회적 일탈이다. '문과·이과 1등 괴물들의 충돌이 빚은 각자도생의 시절'(유시민 작가)은 평범한 '보통 사람'에겐 위험하기 짝이 없다. 빛바랜 구호 '보통 사람의 위대한 시대'가 단 한 번이라도 있긴 했던가.

대통령의 고집은 독선일까 뚝심일까. 이유가 불분명한 아집에 갇혀 요지부동인 대통령실과 정부, 극단적 이기주의와 자기애에 젖은 의료계, 무능한 정치권과 비판 능력을 상실한 언론이 함께 만든 최악의 합작품. 잘못의 크기를 따져보는 건 책임의 경중을 가리는 데 유용하다. 의료계〉대통령실〉정책 관료〉정치권〉언론 순쯤 될까.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사치품이다. 환자의 생명을 팽개친 의료진들에게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묻는다. 타인의 고통은 타인의 것인가. 가까운 의사 한 분이 조언했다. "해외 치료받을 만큼 돈이 많든지, 의사를 움직일 힘이 있든지, 최소한 의사 가족이 아니면 5년은 아프지 마라." 기막힌 현실이다. 상황은 비관적이지만, 그래도 끝까지 합리적 낙관론자가 돼 볼까 한다. 독특하지만 훌륭한 특성을 가진 (의사·검사 같은) 사람은 독특하지만 훌륭하지 못한 특성도 함께 지닌다고 너그러이 이해하련다.

모든 일에는 적절한 규모와 속도가 있다. 배 속 아이는 10달이 돼야 출산하는데, 한꺼번에 9명을 임신시킨다고 한 달 만에 아이를 얻을 수 없다(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CEO). "버티면 이긴다"(이주호 부총리)는 생각으로도 이길 수 없다. 마지막 1년을 빼고 대통령에게 남은 시간은 기껏 1, 2년이다. 이 알토란 같은 시간을 의·정 갈등으로 허비할 텐가. "시간은 한국의 편이 아니다"(윌리엄 페섹 '포브스' 칼럼니스트)라는 경고가 빗발치는데 값싼 싸움에 국가 에너지를 소진해선 안 된다. 의·정 갈등의 출구는 '2,000'이란 숫자를 깨는 데서 출발한다. '증원 규모 조정'은 굴복이 아니다.

언젠가 폴란드의 유대인 게토(ghetto)를 방문한 자리에서 갑자기 무릎을 꿇어 세상을 놀라게 한 빌리 브란트(당시 독일 총리). 많은 사람은 그 장면을 이렇게 평한다. "브란트가 무릎 꿇음으로써 독일이 일어섰다." 브란트의 '슬퇴(膝退)'는 굴욕도 굴복도 아니다. 참된 용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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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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