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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향 인사를 찾아서] 포항 출신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前 국사편찬위원장) "대한제국은 자력 근대화의 나라…임시정부 법통 부정도 옳지 않아"

2024-09-11

[출향 인사를 찾아서] 포항 출신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前 국사편찬위원장) 대한제국은 자력 근대화의 나라…임시정부 법통 부정도 옳지 않아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국사편찬위원장과 역사학회장, 진단학회장, 학술단체연합회장 등 국내 역사학계의 굵직한 단체장을 두루 역임했다. 이 명예교수가 책으로 빼곡히 둘러싸인 자신의 연구실에서 고향얘기를 하며 활짝 웃고 있다.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한국 역사학계의 거목이다. 대구경북 출신으로, 국사편찬위원장과 역사학회장, 진단학회장, 학술단체연합회장 등 국내 역사학계의 굵직한 단체장을 두루 역임했다. 어느덧 서울대 교단을 은퇴한 지 10년을 훌쩍 넘겼지만 그는 아직도 매일 연구실로 출근한다.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매일 사료를 뒤지고, 역사의 숨겨진 한 조각의 퍼즐을 맞추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전성기 시절만큼은 아니지만 저술과 일간지 컬럼도 꾸준히 게재하고 있다. 이 명예교수는 "지금 한국의 정치는 서로 자기의 주장이 옳다는 목소리가 부딪혀 폭발할 지경"이라며, "과거 우리민족은 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내각의 결정권을 심의하는 중추원을 운영하는 등 우수한 제도를 운영했다. 정치인들이 역사가 주는 교훈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지금 우리 앞에 놓인 갈등과 소모적 논쟁을 상당 부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일제가 왜곡한 역사 파헤쳐

그가 역사학에 발을 들인 것은 고교 시절 은사의 영향이 컸다. 고3 담임은 "세계적으로 알려진 명사 중에는 사학과 출신이 많다. 나는 학부 시절에 외교학을 전공했지만, 다시 대학을 간다면 사학을 공부할 것"이라며 그에게 사학과를 적극 추천했다. 서울대 사학과에 합격한 그는 한국의 역사 공부에 탐닉했다. 특히 유교가 조선을 망하게 했다는 '유교 망국론'을 깊이 파고들었다. 당시 역사학계에 정설로 퍼져 있던 이 학설을 받아들이면 조선왕조 500년 역사는 모두 버려야 하는 무의미하게 되는 것이 안타까웠다. 수많은 사료를 살펴본 그는 마침내 유교망국론은 조선이 자력으로 근대화 할 수 있는 힘이 없었다는 논리를 퍼트리기 위해 일제 식민주의가 강요한 것이라는 실체적 진실에 접근했다. 그가 찾아낸 일제의 악의적인 역사 왜곡은 또 있다. 고종황제와 대한제국이 그때까지 알려진 것과 다르다는 것이다. 이 명예교수에 따르면 대한제국을 선포한 고종황제는 나라에서 지식이 가장 높은 인물이었으며, 대한제국은 자주적 근대화를 위해 치열하게 노력했던 나라였다.

"일제는 식민통치의 합리화를 위해서 대한제국과 고종을 무기력하고, 무능한 군주로 만들 필요성이 있었어요. 조선이 괜찮은 나라였다면 식민지배가 정당화 될 수 없었을 테니까요."

순종 황제 서명 위조 최초 발견
한일 지식인들 공동선언 이끌어

"한국병합 불법 알리는 계기돼 뿌듯
훗날 강제노동 배상 판결에도 영향
당시 학계정설 유교망국론도 파헤쳐
일제의 강요 논리 실체적 진실 접근
역사연구는 남의 얘기 답습하기보단
항상 의문 가지고 풀어나가는게 중요"


◆ 위조된 순종 황제 서명 최초 발견

그가 꼽는 자신의 최고업적은 일제시대 순종 황제 서명이 위조된 것을 처음 발견한 것이다. 1992년 서울대 중앙도서관 규장각도서관리실장을 맡았을 때였다. 규장각에 있던 대한제국의 조칙, 칙령, 법률을 살펴보던 중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서로 다른 형태의 순종황제 서명을 발견한 것이다. 일제 통감부의 일본인 관리들이 마음대로 써넣은 것이었다. 그는 "어쩌면 을사보호조약과 같은 한국의 주권을 빼앗은 조약들도 위조된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하며 즉각 대조작업에 들어갔다. 결국 황제가 조약을 승인한 비준서가 없었고, 조약 명칭도 적혀 있지 않았다. 조약의 한국어본까지 일본 측이 만든 것으로 나타났다. 그의 연구는 한일 간 학자들 사이에서 논쟁거리로 커졌고, 국제 공동연구로 이어졌다. 마침내 2010년 한일지식인 1천114명이 일본의 한국병합이 불법이라고 공동선언하고, 2015년 일본의 과거사 반성을 촉구하는 지식인들의 공동성명으로까지 이어졌다.

"당시 공동선언을 한 일본 인사 중에서 역사전공자가 252명이었어요. 제가 일부러 헤아려봤었죠. 한일 지식인들의 공동선언이 일본의 한국병합이 불법임을 알리는 계기가 된 것에 뿌듯합니다. 이 선언이 훗날 일본기업이 강제로 끌려간 한국 노동자들에게 배상하는 판결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도 알게 됐죠."

독립기념관장 둘러싼 극심한 갈등
역사인식 바로세우기 등한시 한 탓

"사회도 정치도 자기 주장들만 난무
서로 말꼬리 잡고 똑같은 말 되풀이
내각 결정권한 심의했던 중추원 등
우리 민족은 우수한 정치제도 운영
역사가 주는 교훈 되짚는 것만으로도
지금의 소모적 논쟁 줄일 수 있을 것"

◆ "임시정부 법통 부정 옳지 않아"

정부는 최근 신임 독립기념관장에 김형석 대한민국역사와미래 이사장을 임명했다. 이를 두고 광복회와 독립운동가 후손 등이 뉴라이트 계열 인사를 국책기관의 수장에 둘 수 없다며 법원에 집행정지를 신청하는 등 극심한 갈등을 빚고 있다. 광복회는 선임과정에서 중대한 절차상 하자가 있었음을 지적하고, 정부는 임명 효력이 정지되면 공공에 피해가 간다고 맞서는 상황이다.

이 명예교수는 광복회의 입장에 손을 들어주었다. 뉴라이트의 역사 인식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뉴라이트의 역사관으로 알려진 '식민지 근대화론'은 대한제국의 근대화 노력을 헛수고로 돌리고, 이승만을 중심으로 하는 '대한민국사'의 주장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펼친 독립운동의 법통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내가 옳다, 너는 틀렸다는 주장들만 난무하고 있어요. 정치인들은 서로의 말꼬리만 잡고, 똑같은 말들을 반복하고 있지요. 우리가 현대화의 물꼬를 타고 급격히 성장하면서도 정작 중요한 역사인식 바로세우기에는 등한시 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문 열고 나가면 바다" 그리운 고향,

어린 시절의 그는 유난히 기억력이 좋은 아이였다. 지금도 고향에서 보낸 유년의 날들이 또렷이 떠오른다. 2살 터울의 동생이 죽었을 때, 또 6·25전쟁이 발발했을 때 식구들과 경주까지 걸어서 피란 가던 모습이 선명하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었을까. 그는 자신에게 고향 바닷가의 '하얀 파도'를 떠올리며 '백파'(白波)라는 호를 지어주었다고 한다. 고향이 가장 그리운 때는 언제였는가에 대해 "지금"이라고 했다.

"성주에서 태어나 고등학생이 되면서 서울로 전학하기 전까지 쭉 포항에서 자랐어요. 집에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면 바다까지 200m가 채 되지 않는 어촌마을이었죠. 지금도 눈을 감으면 하얗게 펼쳐진 모래사장과 훅하고 다가오던 바다 내음, 하늘을 날던 갈매기의 풍경이 떠올라요."

이 명예교수는 역사학자를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항상 의문을 가지라고 말하고 싶다. 역사학을 처음 접했던 제가 당시 역사학계에 정설처럼 굳어져 있던 '유교 망국론'을 파고 들었던 것처럼 어떤 사안을 놓고서 의문을 가지고 끊임없이 들여다 보고, 하나둘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많은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며 "남의 얘기를 답습하는 것보다는 자신이 가진 의문을 풀어나가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글·사진=김은경기자 enigm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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