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폭등에 근로의욕 저하
출산까지 외면하는 악순환
주거안정은 정부 핵심 역할
한탕 꿈만 부추기는 사회는
결코 국민이 행복할 수 없어
박주희 정경부 차장 |
"집값 때문에 결혼 안 해. 애도 안 낳고. 그런 사람들 주변에 여럿이야."
서울에 거주하는 지인이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연봉이 낮은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집값 때문에 근로 의욕이 꺾이고 자녀 계획도 버겁다는 말을 얹었다.
결혼 때 장만한 아파트의 대출이자를 갚아야 해 아이 계획을 미룰 수밖에 없다는 신혼부부의 얘기는 대구에 사는 지인 입에서도 나왔다. 대구는 소득 수준이 타지역에 비해 낮기로 '유명'하다 보니 더 늦기 전에 대구를 떠나야 하나 고민하게 된다고도 했다.
저출산이 국가적인 화두인 시대에 살고 있다. 40년 전에 아이 셋이면 '미개인' 취급을 받았다는데 이젠 '애국자' 대접을 받는 시대가 됐다. 우리나라 인구는 2020년을 정점으로 감소세로, 최근 통계청 분석에 따르면 2024년 5천200만명에서 약 50년 뒤인 2072년엔 3천600만명에 불과할 것으로 전망된다.
체감상 우리나라가 빠르게 인구 절벽을 맞는 주된 원인 중 하나는 집값이라고 본다.
2021년 국내 주택가격은 활활 달아올랐다. 이 집값 급상승기의 시장에서 무주택자는 순식간에 '벼락거지'로 전락했다. 당시 언론에서도 '영끌' '벼락거지' '빚투' 등의 단어가 숱하게 등장했다.
부동산 경기는 돌고 돌며 기회는 또 온다고 한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진행된 부동산 경기 침체기로 집값이 이전보다 크게 떨어지기는 했지만 이미 오를 대로 올라버린 뒤의 하락이었다. 게다가 최근 들어 서울 아파트시장은 핵심지 주요 단지가 신고가를 경신하는 등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대구도 소위 1급지 단지를 중심으로 신고가를 갈아치운 거래가 속속 나왔다.
KB부동산 통계를 살펴보면 대구 아파트 평균매매가격은 지난 8월 기준 3억4천190만원이었다. 10년 전인 2014년 8월(2억1천65만원)과 비교하면 10년 새 62%가 뛰었다. 같은 기간 서울 아파트 평균매매가격은 4억8천600만원→12억2천914만원으로 무려 153%나 급등했다.
이 사이 대구와 서울 근로소득자들의 평균 임금은 얼마나 올랐을까. 소득이 물가상승률조차 반영하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한데 이같은 집값 상승률은 좌절감, 근로 의욕 상실, 저출산 등으로 이어지게 한다.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각 도시 내에서의 양극화도 극심해져 당초 어디에 보금자리를 틀었느냐에 따라 내 자산가치가 달라져 상대적 박탈감도 더해진다.
월급을 모아 집 산다는 생각은 애초에 버려야 하는 시대라고들 한다. 능력이 출중하든가, 부모 찬스를 쓸 수 있든가, 고만고만한 월급쟁이라면 통 큰 투자에 베팅하든가 그래야 번듯한 집이 눈앞에 보인다.
자산이 많다고 행복한 것은 아니나 주거는 사회 안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한 탕'을 바라야 하고 이를 부추기는 사회는 결코 건전할 수 없어서다.
문재인 정권은 무려 24번의 부동산 정책을 내놓고도 집값 때문에 정권을 내줬다.
굳이 그 시절을 소환하는 이유는 그럼에도 그 시절 부동산정책을 발표하던 한 고위공직자의 발언에 주택시장을 대하는 정수가 녹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국민의 주거 안정이 정부가 해야 할 핵심 역할'이라고 했다. 주거안정은 단순히 자산시장 안정 측면을 넘어 주거복지, 소득형평, 근로의욕, 사회 안정 등을 위해서 반드시 이뤄나가야 하는 최우선 과제라고.
박주희 정경부 차장
박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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