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닫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
    밴드
  • 네이버
    블로그

https://m.yeongnam.com/view.php?key=20241020010002421

영남일보TV

[단상지대] 가을의 사색과 한강

2024-10-21

[단상지대] 가을의 사색과 한강
임진형 음악인문학자·대구챔버페스트 대표

대한민국 작가 한강이 톨스토이, 릴케, 프루스트조차 받지 못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것은 한국 문학의 세계적 위상을 한층 더 높인 역사적인 순간이다. 그의 작품들이 빠르게 품절되고, 중고 서적마저 고가에 거래된다는 소식은 한강 문학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러나 노벨문학상이라는 화려한 타이틀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정작 한강의 문학적 본질과 깊이에 대한 관심이 가려지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마저 생긴다. 한강의 소설은 삶과 죽음, 인간의 연약함 속에서 발견되는 심오한 아름다움과 슬픔이 복잡하게 얽혀있다. 마치 서로 다른 사물과 마음들이 모여 하나의 무늬를 이루듯. 그녀의 이야기는 인간 존재의 양면성을 섬세하게 풀어낸다. 삶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그 속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움과 마주하는 순간을 통해, 진정한 삶의 의미를 깊이 있게 드러낸다. 이러한 문학적 성과에 대한 관심이 일시적인 열풍에 그치지 않고, 독자들에게 지속적인 감동과 깊은 사유를 제공하길 기대한다.

가을은 흔히 '독서의 계절'로 불린다. 이는 단순히 서늘해진 날씨가 책 읽기 좋다는 의미만은 아니다. 가을은 고독과 결실이 공존하는 계절이며, 그 양가적 특성이 문학 예술의 주제를 심화할 수 있는 토대와 배경을 제공한다. 이러한 고독과 결실의 공존은 (인)문학 뿐만 아니라 음악 예술에서도 다채롭게 표현되어 왔다. 하이든은 경쾌한 선율로 가을을 포도를 수확하고 와인을 만드는 풍요로운 시기로 묘사했으며, 비발디는 빠른 리듬으로 가을 사냥의 긴박한 순간을 그려냈다. 차이코브스키는 '사계' 중 '10월'을 '가을의 노래'로 부제를 붙여 가을 특유의 고독과 상실감을 서정적으로 담아냈으며, 피아졸라는 강렬한 탱고 리듬으로 쓸쓸함과 충만함이 공존하는 가을을 표현했다. 이처럼 가을은 고독과 충만의 교차하는 대조적인 감정 속에서 삶의 깊이를 성찰하게 만드는 계절이다.

"봄볕은 며느리를 쬐이고 가을볕은 딸을 쬐인다"라는 속담처럼, 가을의 모든 순간은 더욱 특별하게 느껴진다. 김현승의 시에서 노래하듯, 가을은 기도하고 사랑하며 홀로 있는 시간을 통해 자연이 주는 사색의 계절로 자리 잡는다. 이 계절은 깊이 있는 독서와 사유를 가능하게 하지만, 최근 기후 변화로 인해 가을 본연의 모습은 점차 짧아지고 그 상징성마저 희미해지고 있는 현실에 직면해 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나뭇잎이 초록에서 주황, 노랑, 빨강으로 물드는 자연스러운 과정이 줄어들고, 여전히 여름의 초록 잎을 그대로 간직한 나무들이 많이 남아 있다. 올해의 유난히 더웠던 폭염은 나무들을 건조하게 만들어, 잎이 색을 바꾸기도 전에 말라 떨어지는 모습이 목격된다.

이러한 변화는 가을이 선사하는 깊은 사색과 문학적 감흥마저 점차 사라지게 만들 위험이 있다. 그럴수록 우리는 자연이 전해주는 매 순간을 더욱 소중히 여겨야 한다. 한강과 같은 작가들이 그려내는 인간 존재의 복합성과 아름다움에 대한 통찰은 단순한 일시적 유행이 아닌, 현대 사회에서 지속적으로 되새겨져야 할 중요한 메시지다. 문학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진정한 시간과 자아를 발견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삶과 죽음, 아름다움과 슬픔이 공존하는 이 세상에서 위로와 용기를 제공하는 강력한 힘을 지니는 것으로 문학과 예술 만한 게 있을까. 기후 변화가 계속될지라도, 문학은 인간 존재의 본질을 끊임없이 재발견하게 해주는 매체가 될 것이다. 문학과 자연이 함께 전하는 메시지는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도 여전히 우리의 꿈과 등불로 작용할 것이다. 특히 가을이라는 계절 속에서 그 의미는 더욱 깊어질 것이다.임진형 음악인문학자· 대구챔버페스트 대표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 인기기사

영남일보TV

부동산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