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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욱의 민초통신] 참 속수무책인 입방정

2024-10-22

"쓸데없는 말이 부르는 화
말 한마디의 무게 인생 좌우
역사속 다빈치 '말 조심' 경고
한번 나간 말은 거둘수 없고
치명적 결과 초래할 수 있어"

[민병욱의 민초통신] 참 속수무책인 입방정
한국언론진흥재단 전 이사장

"굴들은 보름달이 뜨면 껍질을 완전히 연다. 게는 그것을 보고 돌이나 해초를 안에 던져 넣어 다시 껍질을 닫지 못하게 한다. 그런 다음 게는 굴을 편안히 먹어 치운다.… 너무 입을 많이 열어 듣는 사람의 손아귀에 자신을 갖다 바치는 사람의 운명도 보름날 굴의 운명과 다를 바 없다." 인류 역사를 바꾼 천재 중 가장 창의적 인물 1위로 꼽힌 (2007 '네이처'지 선정)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남긴 메모의 한 장이다. 말 많은 사람은 결국 그 말의 독(毒)으로 스스로 삶을 망친다는 경고. 쓸데없는 입놀림이 화(禍)의 출발점이라는 걸 그는 면밀한 자연 관찰과 엮어 인류에게 설득력 있게 전했다.

# 뽕나무와 거북의 제 자랑

동양 고전에도 닮은 경구가 있다. '좌중담소 신상구(座中談笑 愼桑龜)'. 우암 송시열의 글을 집대성한 '송자대전'에 나온 시구다. 뽕나무(상·桑)와 거북(구·龜)의 우화를 들어 말을 삼가(신·愼)라는 당부를 담았다. 불치병에 걸린 아버지를 모시던 효자가 천년 묵은 거북이를 고아 먹이면 병이 낫는다는 얘기를 듣고 천신만고 끝에 거북을 잡았다. 집에 가는 길, 나무 밑에서 선잠이 들었는데 꿈결에 거북이 비웃는 말을 들었다. "이 젊은이가 나를 고아 아버지 병구완을 하려는데 어림없는 일이지. 나는 불가사의한 힘에 영험이 있어 백날을 끓여도 죽지 않으니까 말이야." 그런데 그 말을 듣고 이번엔 나무가 비꼬았다. "웃기는 소리. 자네가 아무리 신령해도 이 100년 묵은 뽕나무는 못 당하지. 내 밑동으로 솥 불을 지피면 뭐든지 금방 푹 고아지게 마련이라네…."

이상한 꿈도 다 있다며 집에 온 효자. 가마솥에 불을 지펴 거북을 고려고 했으나 삶아지긴커녕 더 생생하게 솥 바닥을 기는 게 아닌가. 며칠을 고생하다 문득 꿈결에 뽕나무의 자랑을 생각해낸 효자는 그길로 도끼를 메고 뽕나무를 찾아 나섰다. 가지만으론 부족할 듯해 아예 밑동부터 베어와 불을 피우니 이번엔 거짓말처럼 거북이 푹 고아졌다. 그걸 먹은 아버지의 병이 깨끗이 나았음은 물론이다. 거북이 영험한 자기 힘을 자랑삼아 떠벌리지 않았던 들, 뽕나무가 남 말에 참견해 제 잘난 척을 안 했던들 고아지거나 밑동부터 잘려 죽지는 않았을 터다. 함부로 말을 지껄여 제 약점을 드러낸, '속수무책 입방정'이 끝내 목숨을 앗아갔다. 함께 앉아 웃으며 마음 편히 얘기를 나누는 자리에서도 헛된말은 삼가라는 의미다.

# "밧줄도 제대로 못 만드는 나라"

하지 않아도 될 말로 명을 반납한 예로는 러시아의 시인 콘드라티 릴레예프의 일화가 자주 인용된다. 1825년 니콜라이 1세가 러시아의 새 황제에 즉위했다. 그 즉시 자유주의자들이 러시아의 근대화를 요구하며 반란을 일으켰다. 이른바 데카브리스트(12월 당원)의 난. 니콜라이 1세는 이 반란을 무자비하게 진압하고 지도자 중 한 명인 릴레예프에게도 사형 선고를 내렸다. 처형 당일 그는 목에 올가미가 걸린 채 교수대에 섰으나 밧줄이 끊어지면서 바닥에 떨어져 목숨을 건졌다. 문제는 그 직후. 릴레예프는 일어서서 군중을 향해 소리쳤다. "보았는가. 지금 러시아에서는 무엇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단 말이오. 밧줄 하나도 제대로 만들지 못하지 않소."

당시엔 교수대 밧줄이 끊기는 따위의 사건은 신의 섭리로 여겨 형의 재집행을 면해주었다. 황제는 사형 집행이 실패한 데에 실망했으나 전통에 따라 사면장에 서명키로 하고 마지막으로 물었다. "그런데 그런 기적이 일어난 다음에 그는 뭐라고 하든가?" 신하가 대답했다. "폐하. 그는 러시아가 밧줄 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한다고 군중에게 외쳤습니다." 황제는 천천히 사면장을 찢어버렸다. "그렇다면 그 말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해 주어야지." 이튿날 릴레예프는 다시 교수대에 섰다. 이번에는 밧줄이 끊어지지 않았다. ('권력을 경영하는 48 법칙' 로버트 그린, 까치글방 2000) 한번 나간 말은 다시 거두어들일 수 없고 특히 권력의 운영과 함수관계에 있는 말은 치명적 결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 헛된말, 빈 약속의 부메랑

윤석열 대통령이 보름 후면 임기 5년 반환점을 돈다. 지금 그의 지지율은 20% 초반, 1990년대 이후 역대 대통령 중 최하 기록이다. 이미 몇 달 전 국민의 국회 탄핵 동의 청원 수도 140만을 넘어섰다. 임기를 반도 못 채운 시점에서 상황이 이렇게 꼬인 데에는 윤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의 헛된말, 빈 약속들이 결정적 지렛대로 작용했다. 하지 않아도 될 말을 별생각 없이 내던지거나 한번 내놓았으면 꼭 지켰어야 할 말을 밥 먹듯 삼켜버린 경우가 적잖았다는 얘기다. 대통령 후보 때부터 자신의 전매특허인 양 내세웠던 '공정과 상식'은 이제 부메랑으로 되돌아와 '불공정과 비상식의 언행' 하나하나를 캐물으며 헤집어내고 있다.

후보 시절 윤 대통령이 말한 가장 유명한 어록 중 하나는 "특검을 왜 거부합니까. 죄지었으니까 거부하는 겁니다. 진상을 밝히고 조사를 하면 감옥에 가기 때문에 못 하는 겁니다"였다. 바로 똑같은 말이 지금 그를 겨누고 있다. 해병대원 순직 사건에 수사 외압이 있었는지를 밝히자는 특검은 바로 대통령 자신을 정 조준하고 있다. 처음엔 예닐곱 가지 의혹에서 출발했다. 이제는 무려 13가지 혐의를 수사하자는 김건희 여사 특검은 도돌이표 거부권으로 겨우겨우 회피하고 있지만 언제 어떻게 빠져들지 아무도 장담 못 하는 진흙 수렁이 되었다. 이런 과정에서 드러나는 불공정 비상식의 그림자는 점점 대통령 부부를 고립무원의 섬으로 만드는 형국이다.

# 엎친 데 덮친 명태균 폭로

"남편이 대통령이 되는 경우라도 아내 역할에만 충실하겠습니다.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국민의 눈높이에 어긋나지 않도록 조심 또 조심하겠습니다." 남편의 대통령 후보 시절 눈물까지 보이며 약속했던 김 여사의 다짐은 지금 어디로 갔을까. 또 그 남편이 "제 처는 정치하는 걸 극도로 싫어한다. 남편이 정치하는 데 따라다니는 것도 싫어한다"라고 인터뷰(동아일보 2021. 12. 22)했던 말은 지금 어디에 맴돌고 있는 걸까. 이런 의문이 가시지 않은 시점에 명태균이란 정치 주변인의 카톡 메시지가 공개됐다. 김 여사는 "철없이 떠드는 우리 오빠 용서해주세요" "무식하면 원래 그래요" "사과드릴게요"라고 말하고 있었다. 이때부터 우리 언론은 대통령, 대통령실의 '거짓말'을 기사 용어로 내놓기 시작했다. 그리고 명씨는 "날 잡으면 한 달 만에 대통령이 탄핵될 텐데 감당되겠나"라고 말했다고 한다. 참 속수무책인 입방정 아닌가. 한국언론진흥재단 전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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