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독립영화전용관인 '인디스페이스'의 원승환 관장은 위기에 빠진 한국영화를 살리기 위해서 정부·지자체의 관심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
한국 독립영화가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다. 신작의 돈줄이 마르면서 새로 촬영에 들어가는 영화가 손에 꼽힐 정도다. 일부 스태프들은 일거리가 없어 대리운전, 택배 상하차 등을 전전하고 있다. 예전 같으면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또는 TV드라마 작업을 할 수 있었지만 그마저도 제작이 현저하게 줄었다. 안동 출신으로 국내 첫 독립영화전용관인 '인디스페이스' 원승환 관장은 "코로나19 위기에도 잘 견뎌낸 영화가 자칫하면 와르르 무너질까 우려할 정도로 위태로운 상황이다. 돈이 있는 사람은 지출을 줄이면서 견뎌낼 수 있겠지만 돈이 없는 사람들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숙련된 영화 인력을 잃게 되면 한국영화의 질적 하락은 당연한 수순"이라며 정부 차원의 관심과 지원을 호소했다.
◆찰리 채플린과 운명적 만남
그가 중학생이던 1980년대, 안동에는 아직 영화관이 없었다. 문화활동이라는 것이 거의 전무 하다시피 하던 그 시절, 하루는 시끌벅적한 행사가 벌어졌다. 왜관 베네딕토 수도회 소속의 한 신부가 안동에서 영화 상영회를 개최한 것이다. 작은 회관 같은 곳에서 열린 그날의 영화 상영회가 그에게 남긴 파문은 메가톤급이었다.
"그날 찰리 채플린 영화를 처음 봤어요. 국내에 정식 개봉하기 전의 작품이었는데, 신부님이 필름을 가지고 와서 보여준 것이었죠. 무성영화 특유의 위트와 페이소스가 가슴을 훑었다고 할까요. 그날 이후로 영화가 제 가슴속에 선명하게 똬리를 틀게 된 것 같아요."
이후 영화는 그의 삶에서 가장 우선순위에 놓였다. 틈만 나면 영화관을 찾아다녔고, 마음 맞는 이들과 대구에서 시네마테크 운동을 본격적으로 벌여나갔다. 내친 김에 '대구독립영화협회'를 발족시키고, 초대 사무국장을 맡아 지역 영화운동의 기틀을 닦았다.
"2000년 여름까지 대구에서 참 많은 이들과 영화로 교류하며 행복했어요. 영화라는 공통분모가 있어 힘들지도 않았고, 선후배들과 매일 매일이 즐거웠던 것 같아요."
안동 중학생때 영화 처음 접해
대구서 본격 시네마테크 운동
서울에선 '인디스페이스' 개관
독립영화, 사회 면면 조명하고
문화 다양성 넓히는 촉매 역할
정부 차원 관심·예산지원 절실
봉준호·이창동 등 배출한 대구
6·25전쟁 시름 달랜 영화도시
영화인 육성 프로세스 잘 갖춰
◆한국 첫 독립영화전용관 오픈
'인디스페이스'는 2007년 11월8일 문을 연 우리나라 최초의 독립영화전용관이다. '젊음의 성지'라고 일컫는 서울 홍대 입구에 있다. 지금은 누구나 보고 싶은 독립영화를 쉽게 관람할 수 있지만 인디스페이스가 개관할 때만 해도 한국의 독립영화는 '영화제'에 가야만 만날 수 있었다. 인디스페이스 개관을 계기로 영화관에서 본격적으로 독립영화 상영이 이뤄진 것이다.
"박찬욱, 봉준호, 류승완, 김한민 등 현재 한국을 대표하는 감독들도 처음에는 단편·독립영화에서 출발해 상업영화에 진출할 수 있었어요. 오늘의 독립영화는 궁극적으로 내일의 한국영화를 보여주는 청사진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인디스페이스 상영관 좌석에는 독특한 이름표가 붙어 있어 눈길을 끈다. 송강호, 봉준호, 유지태, 강수연 등 유명 배우와 감독, 영화인들의 이름이 붙어 있다. 시민들이 독립영화전용관의 확대를 염원하며 좋아하는 배우의 이름을 내세워 '좌석 기부'를 한 것이다.
"객석 기부는 좌석당 200만원인데 꾸준히 후원이 이어지고 있어요. 처음에는 감독과 배우 등 영화인들 중심으로 기부가 이뤄졌다면 최근에는 팬클럽 회원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배우의 이름을 내세워 객석 기부를 하는 추세예요."
◆한국영화 '빙하기' 들어서나
최근 한국영화 안팎에서는 생존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영화관들이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아 수년간 고통받았는데, 코로나가 물러갔음에도 극장을 찾는 발걸음은 좀처럼 회복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넷플릭스와 디즈니, 애플 등 OTT의 공략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이뿐 아니다. 설상가상으로 정부는 긴축재정 기조 속에 올해 영화 관련 예산을 대폭 삭감해 영화인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몇몇 영화제를 제외하고 전국의 대다수 영화제의 예산이 전액 삭감되고, 지역 영화 활성화 및 제작지원 예산도 줄줄이 잘려 나갔다.
"최근 충무로에서 새로 크랭크인 한 영화가 거의 없어요. 상업영화와 독립영화를 가리지 않고, 모든 영화인들이 총체적인 난국에 빠진 듯해요. 영화인들이 연대하며 위기를 극복하려는 자발적인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어요."
원 대표는 정부와 지자체가 나서 젊은 영화인들의 활동을 적극 장려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상업영화에서는 결코 다룰 수 없는 우리 사회의 다양한 면면을 조명하고, 사회에 화두를 던지는 것은 독립영화만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상업영화, 즉 주류 미디어가 다룰 수 없는 이야기, 예를 들면 성소수자, 여성, 장애인 등의 이야기를 극영화나 다큐멘터리로 만들어 고발하고, 우리 모두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독립영화야말로 문화 다양성을 넓히는 촉매가 됩니다."
◆'대구 독립영화' 전국의 롤모델
대구는 한국영화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도시다. 6·25전쟁 중에도 영화를 만들며 전쟁의 시름을 달랜 '영화의 도시'였다. 이규환, 나운규 등 당대 최고의 감독과 배우들이 대구에서 영화를 만들며 한국영화의 전성기를 견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구 출신의 봉준호 감독이 영화 '기생충'으로 아카데미 4관왕에 오른 것을 비롯해 이창동, 김기덕, 배용균 등 베테랑 감독도 두루 배출했다. 한국 최초의 여성 감독인 박남옥도 대구에서 영화를 만들며 열정을 불태웠다. 최근에는 김현정, 유지영, 안종훈 등 젊고 실력 있는 영화인들이 여러 영화제에서 수상 소식을 알려와 주목받고 있다.
서울에서 바라보는 대구 영화계는 어떤 모습일까. 원 대표는 "전국의 영화계를 비교해 보았을 때 대구는 선후배나 동료 영화인 간에 협력이 잘 되는 본받고 싶은 지역"이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대구는 영화 지망생을 한 명의 영화인으로 키우는 과정이 촘촘히, 단계별로 잘 갖춰져 있어 전국적으로 모범사례로 자주 거론됩니다. 실력 있는 젊은이를 발굴하고, 교육해 마침내 작품을 제작, 상영하기까지 프로세스가 잘 갖춰져 있는 듯해요. 비록 대학에 영화 관련 학과는 없지만, '영화학교'를 만들어 인재를 키우는 것이 긍정적이에요. 선후배 영화인들이 영화를 찍을 때 서로 스태프로 참여해서 작업을 도와주는 품앗이에서 대구의 저력이 보이는 것 같아요."
글·사진=김은경기자 enigma@yeongnam.com
김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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