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저가 물량 공세, 내수침체
포항철강산단, 공장 가동률 '뚝' 떨어져
빈 점포 수두룩
국제 환경 변화가 유일한 해법
당분간 어려움 지속 전망
20일 오전 포항시 남구 포항철강산단의 한 도로를 달리는 트레일러의 적재함이 텅 비어 었다. 김기태기자 |
한때 '포항의 명동'으로 불렸던 포항 중앙상가. '임대 문의' 종이가 붙은 빈 가게 모습. 김기태 기자 |
포항철강산업단지 전경<포항시 제공> |
철강 운송사를 운영하는 A씨는 기자를 만나자마자 긴 한숨부터 내쉬었다. 아침부터 포항제철소 1선재공장이 폐쇄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또'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포항제출소 1제강공장과 현대제철 포항2공장 폐쇄 결정 등 이어지는 악재에 어느 정도 내성이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대부분의 산단 기업들이 고정비를 제외한 지출 최소화를 통해 버티고 있는 절박한 상황"이라며 "하루빨리 포항지역 경기가 되살아나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동해의 푸른 파도를 품은 포항 영일만을 왼쪽에 두고 형산대교를 건너면 '한강의 기적'을 일궈낸 포항제철소의 공장들이 위용을 드러낸다. 높다란 굴뚝에서는 새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지만 '철강도시' 포항은 웃을 수 없는 형편이다.
인근 포항철강산업단지는 한창 철강재를 실은 트레일러들이 운행해야 할 시간이지만 도로는 한산하기만 하다. 간혹 지나가는 화물 트레일러의 적재함은 텅텅 비어 있다.
지난해 이맘때만 하더라도 선박 제작에 사용하는 후판을 실은 트레일러를 피해 다니기 바쁜 도로였지만 이제는 10분여 동안 도로에 후판을 싣고 지나가는 트레일러는 고작 두 대가 전부였다. 포항 사람사이에서 "선물로 줄게. 가져갈 수 있으면 갖고 가라"며 농담으로 주고받던 포항 철강산업을 상징하는 20~30t 짜리 '코일'을 실은 트레일러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
포항철강산업단지는 포스코와 함께 한국 철강 산업 발전을 이끌어 왔다. 포스코와 현대제철에서 생산한 철강을 포항철강산단의 기업들이 재가공해 또 다른 철강 제품을 생산해 왔다. '산업의 쌀' 철강을 '밥'으로 가공하면서 성장을 거듭해 왔던 곳이다.
중국발 밀어내기식 저가 철강재 공세와 내수부진 등으로 포스코와 현대제철이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포항철강산단도 이를 피하지 못하고 있다.
◆떨어지는 공장 가동률
"오전 시간이면 화물차량이 줄을 서 주유를 했죠.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갈수록 주유 차량이 줄어드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포항철강산단 인근에 있는 한 주유소 직원의 말이다. 철강을 재가공한 제품은 항만 또는 전국으로 운송된다. 하지만 올해 중순부터 주류 화물차량이 눈에 띄게 줄었다는 것이다. 예전만 못한 제품 생산으로 인해 운송량이 줄고, 주유소에도 타격을 주고 있다. 실제로 이 주유소의 매출은 지난해보다 5%이상 줄었다고 한다.
포항철강산단에 적신호가 켜졌다. 공장 가동률이 뚝 떨어졌기 때문이다. 지역에서 대기업과 거래하는 또다른 운송사 사장은 "지금 포항의 운송업계는 최악의 상황"이라고 운을 뗀 뒤, "울산의 경우 자동차나 화학 등 다양한 산업군을 갖춰 포항과 같은 타격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포항철강산단에는 274개 업체의 357개 공장이 입주해 있다. 이들 업체의 올해 9월 말까지 누계 생산액은 11조 2천918억 원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 12조2천300억 원보다 7.7% 감소했다. 같은 기간 수출액은 25억7천455만 달러로 6.1% 감소했고, 고용인원도 1만3천528명으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17명 줄었다. 감소 인원은 크지 않지만 기술자의 보유 여부가 기업의 경쟁력으로 인정받는 뿌리산업의 특성상 근로자 감소는 업체 폐업 못지 않은 충격으로 다가온다.
포항철강산단 공장 가동률이 낮아지는 등 포항지역 중소 철강업체의 실적이 날로 악화하고 있다. 포항철강산단 관계자는 "다수 공장의 가동률이 70%에 그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며 "철강 기업들이 수익을 내기 위해서는 가동률이 최소 80% 선을 넘어야 하는 데 그렇지 않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경기 침체로 공실 가득
포항의 버팀목인 포스코를 비롯한 철강과 2차전지 소재 산업이 동시에 침체기를 맞으면서 포항지역 경제도 긴 침체의 늪에 빠지고 있다.
북구 대흥동의 중앙상가 실개천거리는 한때 '포항의 명동'으로 불렸던 곳이다. 옛 포항역과 육거리 사이에 있는 중앙상가에는 발 디딜 틈조차 없을 정도로 많은 유동인구를 자랑했다. 각종 브랜드의 옷과 신발가게, 오락실 등은 늘 시끌벅적했다.
하지만 지금은 빈 점포가 넘쳐난다. '임대' '매매' 등 새로운 세입자를 구하는 종이가 곳곳에 붙어있다. 가장 번화가로 꼽히는 실개천거리 한가운데 가게도 세입자를 구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인근 부동산공인중개업소 소장은 "부도심이 외곽에 생기면서 인구가 이동한 이유도 있지만 철강 경기가 나빠진 영향이 크다"며 "세입자를 찾지 못해 권리금을 포기하고 점포를 내놓은 임대인도 여럿 있다"고 말했다.
◆철강 위기 해법 없나
글로벌 건축 경기 침체와 중국발 철강 과잉 공급 여파로 포항의 제철 경기는 끝없이 추락을 하고 있다. 포스코가 지난 19일 포항제철소 1선재공장을 폐쇄했다. 지난 7월에도 포항제철소 1제강공장이 문을 닫았다. 현대제철도 포항 2공장 폐쇄를 결정하고 가동을 무기한 중단하기로 했다.
포항제철소 1선재공장은 중국 선재공장이 자국 건설 경기 부진에 따른 수요 부족으로 저가 물량 밀어내기에 나서면서 가격 경쟁에서 밀려 문을 닫게 됐다. 문제는 선재 제품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는 점이다. 중국에서 과잉 생산된 다양한 철강 제품이 국내로 쏟아지고 있다.
국내 철강업계는 중국과 일본 등에서 싼값에 수입되는 열연강판에 대한 반덤핑 제소를 검토하고 있지만 쉽지 않다. 제소하면 중국이 보복에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철강을 넘어 한국과 중국 간 무역 분쟁으로 확산할 수 있다.
한 철강 전문가는 "철강과 관련한 반덤핑 제소는 분명 한계가 있다. 철강 분야만 볼 수 없는 상황이다. 중국과 무역 분쟁이 재발하면 국내 산업이 더 많은 타격을 받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현재로서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종식과 중국 정부의 자국 철강 감산이 유일한 해결책이다"며 "전쟁 종식에 따른 재건 사업이 진행되면 국내 철강 가격 하락을 주도한 중국 철강이 우크라이나로 눈을 돌리게 된다. 또 국내 기업의 재건 사업 참여로 철강 산업이 활력을 얻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결국 철강 산업의 위기 타파를 위해서는 국제 환경 변화가 해법이긴 하나, 우-러 전쟁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이라 포항 철강 산업의 위기는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으로 우려된다.
김기태기자 ktk@yeongnam.com
김기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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