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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향 인사를 찾아서] '거침없는 몸놀림-파격적인 무대 매너'…경북 영주 출신 안은미 현대무용가 "오리엔탈리즘 이미지 찾기 협업 중…내년쯤 성과물 볼 수 있을 것"

2024-12-04

[출향 인사를 찾아서] 거침없는 몸놀림-파격적인 무대 매너…경북 영주 출신 안은미 현대무용가 오리엔탈리즘 이미지 찾기 협업 중…내년쯤 성과물 볼 수 있을 것
경북 영주 출신의 현대무용가 안은미의 꿈은 세상사람이 인정하고, 자신 스스로가 만족할 수 있는 자신만의 춤을 만드는 것이다. 그녀는 그날을 위해 오늘도 쉼없이 사유하고, 작업에 정진하고 있다. 〈안은미 제공, 옥상훈 촬영〉

세계적 명품 브랜드 구찌(Gucci)는 최근 한국인이면서 세계 무대서 활동하는 거장 4명을 선정해 강렬하고 감각적인 광고를 제작했다. 미술가 김수자, 영화감독 박찬욱, 피아니스트 조성진 그리고 경북 영주에서 태어나 우리나라 현대 무용사에 방점을 찍은 현대 무용가 안은미가 주인공이다. 올해로 61세인 안은미는 빡빡 깎은 머리와 화려한 의상으로 어딜 가나 시선을 모은다. 무대 위에서 보여주는 거침없는 몸놀림과 파격적인 무대 매너는 보는 이의 탄성을 자아낸다. 무용판을 지킨 지 30여 년, 이제 그녀는 한국을 넘어 세계서 인정받는 무용가 반열에 올랐다. 안 무용가는 "춤꾼인 제가 평생에 걸쳐 바라는 꿈은 세상 사람 누구나 인정하는 나만의 춤을 만드는 것"이라며 "내 삶을 마치기 전까지 나만의 춤을 만들기 위해 잠시도 쉴 틈이 없어요. 이제 겨우 절반 정도 온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빡빡이' 헤어스타일 해보면 알아
긴머리로 춤추면 내 춤 아니더라

대구시립무용단 감독시절은 추억
고향 부석사 공연 남다른 의미로
꿈꾸는 그 세상 향해 열심히 정진

◆무당 옷 입은 '빡빡이' 무용수

무용가 안은미의 트레이드 마크는 빡빡 깎은 민머리다. 그녀는 미국 유학 시기를 전후한 199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줄곧 이 헤어스타일을 고수해왔다. 그 사이 머리를 길러볼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니었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머리카락이 좀 자라기가 무섭게 싹둑싹둑 잘라버리고, 동글동글한 민머리로 살고 있는 것.

"머리를 길러볼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니에요. 옛 선조들처럼 길게 길러서 태극기나 비녀를 꽂고 다녀야지 하는 생각도 했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어요. 이유요? 머리를 잘라보면 알아요. 민머리에서 조금만 자라면 자르지 않고는 배기질 못하거든요. 또 머리를 기른 상태로 춤을 추니까 내 춤이 아니더라고요."(웃음)

무용가 안은미를 상징하는 것은 또 있다. 무당처럼 울긋불긋한 색상의 의상들이다. 뭘 하든 튀지 않으면 그녀가 아니다. 귀걸이를 해도 왼쪽과 오른쪽을 각각 다른 색상으로 착용하는 것은 기본이다. 붉은색 블라우스에 파란색 스커트, 연두색 양말에 매치한 분홍색 통굽 하이힐은 오히려 얌전한 편이다. 그녀가 하면 어떤 아이템도 평범하지 않다.

겉으로는 총천연색으로 화려하지만, 정반대의 모습도 있다. 때로는 무겁게 침잠하고, 한없이 가라앉는다. 특히 작품에 들어갈 때는 소리 없이 그 속으로만 파고든다. 홀로 명상에 빠져서 내면을 조우하고, 작업 속으로 흔들림 없는 여행을 떠난다.

"가진 것 없는 제가 세상과 맞닥뜨리면서 얻은 결론은 오로지 작품으로 승부한다는 것이에요. 동양인에게 고압적이던 유럽의 무용계가 자신들의 자리를 저한테 내어준 것은 결국 좋은 작품이 필요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출향 인사를 찾아서] 거침없는 몸놀림-파격적인 무대 매너…경북 영주 출신 안은미 현대무용가 오리엔탈리즘 이미지 찾기 협업 중…내년쯤 성과물 볼 수 있을 것
〈안은미 제공, 탈리 로즈 아이글란드 촬영〉

◆파격과 실험의 아이콘 '안은미'

안 무용가는 2000년대 초 대구시립무용단 감독으로 활동하며 대구에 잠시 머물렀었다. 한곳에 머물지 않고, 떠돌듯 유랑했던 그녀 인생에서 공립단체에 적을 두고, 꼬박꼬박 나오는 월급을 받으며 직장생활을 한 것은 이 때가 유일하다. 그녀는 상임 무용수가 있는 국내 유일의 현대무용단인 대구시립무용단을 4년간 이끌며 '재밌는 춤, 파격적인 춤'으로 대중의 관심을 받았다. 현대무용이라면 따분하고 이해하기 어렵다는 평가에서 대중과 함께 호흡하는 춤으로 자리매김하며 대중적 지평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았다.

대구시립무용단 감독으로 재임 당시 그녀의 행보는 파격 그 자체였다. 첫 정기공연 무대로 지역일간지 문화면이 아닌 사회면을 장식했다. 공연에서 대구시립무용단원들이 상반신을 내 놓은 채 벗은 몸으로 춤을 췄기 때문이다. 이 일은 보수적인 대구사회에서 예술과 외설의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충격을 안겼다.

"대구시립무용단 감독으로 재임한 것은 예술가 안은미를 더욱 성숙하게 하는 계기가 됐지만,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아요. 무용단 감독으로 있으면서 경제적으로 안정될 수 있었지만, 어딘가 한곳에 나를 묶어두게 됨으로써 자유가 없었거든요. 제가 하고 싶은 작품의 주제 선택도 자유롭지 않았고요. 대구 시절은 좋았던 추억으로 제 기억에 남아 있어요."

◆안은미가 바꾼 한국 무용판

이화여대와 뉴욕대에서 무용을 전공한 안 무용가는 한국 현대무용의 판을 재편했다. 어렵고 딱딱한 무용을 쉽고 재밌는 춤으로 승화시켰다. 춤과 합창을 결합한 '카르미나브라나'를 선보인 것을 비롯해 춤과 연극, 춤과 민요 등을 결합해 춤의 영역을 확장했다.

부산국제무용제 프로그래머, 하이서울페스티벌 예술감독, 대구하계유니버시아드 개·폐회식 안무가로 이름을 날렸다. 또 제자인 경기민요 소리꾼인 이희문과 협업해 센세이셔널한 반응을 얻었다. '무한도전' 가요제 안무꾼으로, 인기 예능 프로그램 '라디오스타' 등에서 넉살 좋은 입담을 선보여 관심을 얻기도 했다.

최근 그녀는 중국, 일본,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각국의 친구들과 협업하는데 관심을 쏟고 있다. 각 나라를 대표하는 무용수들을 만나 대화하고 작업하면서 가장 동양적인 것은 무엇인지를 찾아 나가는 과정이다.

"코로나19 때부터 수년째 이 작업에 매달리고 있어요. 현대예술이라는 것에 대한 새로운 질문이 쏟아지는 시점에서 '오리엔탈리즘'이라는 것으로 비친 이미지를 찾고, 새로운 문화에 대한 해석을 예술가들이 함께 찾아 나가는 작업이에요. 내년쯤에는 지금까지 학습한 것들을 모은 성과물을 보실 수 있을 거예요."

◆춤으로 찾은 삶의 행복

안 무용가는 지금까지 200여 편에 달하는 수많은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그중에서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영주 부석사에서 2022년 '세계유산축전'의 일환으로 펼친 무대는 그녀에게 남다른 의미로 남아있다. 무용수들이 무량수전 앞까지 1시간가량 천천히 걸어 올라가면서 공연을 만드는 색다르고 이색적인 무대였다.

"소박하고 좁게 난 길을 따라 부석사까지 올라가는데, 땀이 나더군요. 마침내 종착지에 도달했을 때 시원한 바람 한 줄기가 불어와 땀을 식혀주었어요. 뒤를 돌아보니 한 조각 구름이 걸린 세상이 한눈에 쫙 펼쳐졌죠. 삶이라는 여정도 이와 같아서 힘들어도 열심히 걷다 보면 마침내는 어떤 경지에 이르러 뭔가 보일거라는 메시지를 던져주는 작품이었어요."

부석사 공연에 애착을 가진 이유는 또 있다. 영주는 그녀가 태어난 고향이기 때문이다. 어려서 일찌감치 고향을 떠나와 성장의 기억은 없지만, 친지들이 집성촌을 형성하고 있기에 영주방문은 늘 설레고 기다려진다고 털어놨다.

"인생이 우울하고, 힘겨울 때 제 춤을 보면서 가슴이 뻥 뚫리고 삶의 희망을 가지게 됐다는 피드백을 들을 때 행복해요. 하지만 이제 시간이 많지 않아요. 세상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아요. 한 번이라도 끈을 놓치면 끝나는 이 게임에서 쉼 없이 두들기며 제가 꿈꾸는 그 세상을 향해 열심히 정진해야죠. 그때까지는 잘 시간도 없어요. 계속해야 해요."

김은경기자 enigma@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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