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바람이 뼛속을 파고들고 하얀 눈이 내리는 계절, 추운 겨울의 골목엔 늘 붉어진 코끝과 호호 입김을 불며 기다리는 따뜻한 풍경이 있었다. 국물과 함께 추위를 녹이는 어묵,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시절 우리를 행복하게 했던 '붕어빵'이 있었다.
붕어빵은 밀가루 반죽과 달콤한 팥소가 빚어낸 서민들의 간식이자 겨울의 상징이다. 그 시작은 일제강점기 일본의 '타이야키(タイ焼き)'에서 비롯되었지만, 값비싼 도미 대신 서민의 애환과 현실을 품은 붕어의 형상으로 현지화되며 우리네 골목에서 긴 세월 사랑받았다.
광복 이후 밀가루가 미국 원조로 쏟아지던 1950~60년대, 붕어빵은 그 존재를 뚜렷이 했다. 그리고 1980년대,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서민 간식으로 자리 잡았다. 그 시절 붕어빵의 가격은 천 원에 다섯 개였고, 우리들은 아버지가 손에 든 붕어빵 봉지를 보고 환호하며 달려가곤 했다.
그러나 지금, 붕어빵은 희소한 존재가 되었다. 2023년의 겨울, 붕어빵 하나를 구하기 위해 긴 줄이 늘어선 풍경은 과거의 흔적을 좇는 현대인의 모습처럼 보인다. 원가 상승과 물가 압박으로 2024년에는 붕어빵 한 개가 천 원에 팔리게 되었다.
그렇게 붕어빵은 더 이상 소소한 간식이 아니다. '붕세권'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한 것도 그 때문일 터. 시대의 변화 속에서도 붕어빵은 여전히 겨울의 그리운 추억을 소환한다.
풀무원과 같은 대기업은 '날개 붕어빵'을 출시해 가정에서 간단히 에어프라이어를 이용해 '겉바속촉'의 갓 구워낸 맛을 볼 수 있는 제품을 선보였다.
한편 네이버페이는 '붕어빵 지도'를 통해 QR 결제 서비스로 전국의 붕어빵 가게를 연결하기 시작했다. 첨단 기술과 혁신은 붕어빵마저 현대화했지만, 우리의 기억 속에 자리하고 있는 아련함, 그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그 기억 속에는 아버지가 있다. 퇴근길, 차가운 밤바람을 뚫고 붕어빵을 사서 품에 안고 오시던 우리의 아버지들. 식을세라 가슴팍에 꼭 품고 오신 그 붕어빵 속에는 단순한 팥소뿐 아니라, 무뚝뚝함 뒤에 숨겨 놓은 자녀들을 향한 깊은 부정이 가득했다.
허름한 천막 아래 작은 불빛과 함께 구워진 붕어빵이었지만, 그 작은 빵 하나에 담긴 사랑과 온기는 겨울의 추위도 잊게 했다.
그 시절 우리는 붕어빵의 머리부터 먹느냐, 꼬리부터 먹느냐로 성격을 논했고, 팥소를 원조라며 슈크림과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시대가 흘러 풍족함 속에 살고 있지만, 겨울 골목에서 불현듯 붕어빵을 만나면 오래전 따뜻한 아버지의 손과 그 시절의 평온함이 떠오른다.
2024년의 한국은 경제적 불안과 정치적 혼란으로 흔들리고 있다. 하지만 아파트 골목에 간신히 남아있는 붕어빵 천막은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듯 우리에게 작은 위로를 건넨다.
붕어빵 봉지를 가슴에 품고 돌아오던 아버지의 걸음은 오늘날에도 기억 속에서 쉼 없이 걸어온다. 그 붕어빵은 단순한 겨울 간식이 아니라, 아버지의 사랑과 그 시절의 정취, 그리고 잊고 지낸 따뜻함을 되찾아주는 작고 소박한 기적이다.
아버지의 차갑고 거친 손으로 쥐어 주시던 붕어빵 하나로 느끼던 행복과 추억은 결코 값으로 매길 수 없을 것이다.

한유정
까마기자 한유정기자입니다.영상 뉴스를 주로 제작합니다. 많은 제보 부탁드립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