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윤 논설위원 |
2025년 1월1일자 대부분 언론은 여론조사를 발표한다. 대선 후보군을 일렬로 줄 세워 지지율 순위를 매긴 조사는 무시해도 좋다. 답이 정해진 압도적 1위와 나머지 도토리 키재기 순위 결정전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혹 '가상 대결'을 묻는 조사가 있다면 눈여겨보시라. 어쩌면 국민의힘 후보 중 누가 가장 경쟁력이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그건 의미 있는 시그널이다. 신호는 메시지로 전환한다. 이 새로운 메시지가 대선 구도의 1차 변곡점쯤 된다. 쫓겨난 한동훈의 재기 여부도, 대구로 23번째 이사했다는 홍준표의 24번째 이삿날 택일에도 영향을 줄 터이다.
대선 시계는 헌재와 법원에 달렸다. 헌재가 대통령 탄핵을 인용하면 조기 대선으로 간다. 대선 구도는 의외로 단순하다. 국민의힘에겐 모욕적으로 들리겠지만 결국 '이재명인가 아닌가'로 귀결된다. '이재명 대 이재명'이다. 이재명을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승인할 건가 말 건가의 찬반 투표와 같다. 계엄이 이재명을 살렸다. 대선 시계를 빨리 돌려버린 것이다. "조금만 기다렸어도 우리의 시간이 왔다. 윤 대통령은 우리 당의 X맨"이라 한 조경태(국민의힘 의원)의 탄식이 그 말이다. 유일한 변수는 이재명의 2심 결과다. 헌재(탄핵 심판)가 빠를까 법원(이재명 2심)이 빠를까. 헌재는 재판관 2명의 임기가 끝나는 내년 4월18일 이전 결론을 내려야 할 것이다. 그러면 5, 6월 일명 장미 대선이 유력하다. 2년이나 앞당겨지는 대선. 택일한 듯 당선 1천일에 던진 윤 대통령의 계엄 승부수가 되레 자승자박의 악수가 됐다. 이재명은 뜻밖에 횡재 맞은 셈이다.
TK는 국민의힘 텃밭이다. 보수 정당 80년 전통을 이은 국민의힘이 급속히 무너지고 있는 게 안타깝다. 또 비대위 아래 몸을 의탁했다. 익숙한 습관이다. 국민의힘 출범 후 6번째, 윤석열 정부 5번째다. 윤 정부도 비대위 체제에서 탄생했으니 비대위는 이 정부의 모태이자 종착지, 처음이자 끝인 셈이다. '비대위 체제의 일상화'가 뜻하는 바가 무엇인가. 오랜 시간 보수 정당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음을 웅변한다. "비대위를 통해 빠른 시일 내 당 간판을 내리고 재창당을 해야 한다"(김태흠 충남도지사)는 당 일각의 요구가 현실화하면 비대위는 국민의힘 장례위(?) 노릇까지 할 판이다.
"관리형비대위는 무난히 진다"고 그렇게 경고했는데도 결국 지는 길을 택했다. 2017년 대통령 탄핵 이후 패한 3차례 선거는 관리형 비대위, 승리한 3차례 선거는 혁신형 비대위가 이끌었다. 민심을 택하면 승리, 당심에 안주하면 패했다. 권영세 비대위는 '선 안정 후 쇄신'을 공언했다. 왜 뻔한 선택을 했을까. 여당 의원 65%가 위기에 결집하는 텃밭 영남 출신이고 더 보수화된 당심도 그들 편이니 민심이 어떻게 돌아가든, 대선이 어떻게 되든 자신의 안위와는 상관없다고 여긴 것일까. 보수 정당의 암흑기 자유한국당 시절로 돌아가는 듯하다.
성공한 경험을 공유해야 한다. 연이어 3번 승리한 선거(21년 재보선·22년 대선·지방선거)를 이끌던 당시 김종인, 이준석이 했던 게 있다. 극우 유튜버, 태극기 부대와의 절연이다. 지금 그것부터 해야 한다. '합리적 보수의 붕괴'를 표적 삼았던 뉴라이트 일군(一群)과의 결별도 마찬가지다. 사태를 이 지경까지 만든 '계엄'의 숙주가 모두 그곳에 있다.
논설위원
이재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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