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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일 칼럼] 판사는 판사답게, 군인은 군인답게

2025-01-27

플라톤이 추구한 이상적 국가
노예,농부,전사, 정치인의 조화
각자 직업에 충실할 때 정의 실현
계엄사태 후 판사 군인을 향한
국민적 시선이 회의적인 이유는

[박재일 칼럼] 판사는 판사답게, 군인은 군인답게
박재일 논설실장

글을 쓰면서 고전적 사상을 많이 인용하는 편은 아니지만, 12·3계엄사태와 대통령 탄핵정국을 접하면서는 떠오르는 철학이 있다. 플라톤의 정의론이다. 플라톤은 이상적 국가(당시는 도시였지만)는 '각자의 능력에 따른 직업을 갖는 것'이라고 했다. 지혜로운 이들은 정치인이, 신체 건장한 용기 있는 이들은 군인 전사(warrior)가, 인간 욕구를 추구하는데 관심 있는 이들은 농부 혹은 생산자(노예)가 되는 것이 좋다고 했다. 각자 조화를 이룰 때 그게 정의(justice)라는 것. 아리스토텔레스는 한발 더 나갔다. 그런 직업적 위계질서 속에 국가의 '배분적 정의'가 이뤄진다고 했다. 신분의 상하·수평 이동이 자유롭고 또 그게 자유로운 사회가 이상적이다는 목표를 가진 21세기 현대사회에서 본다면 말도 안되는 논리이지만, 그 근저에 깔린 철학이 영 틀린 것도 아니다.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대통령 구속에 불만을 품고 난동을 부린 이들이 대거 구속됐다. 있어서는 안될 일이고, 법치국가 민주사회에서는 용납될 수 없는 집단 폭력이다. 그런 비판 하나로 이게 봉합된다면 다행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조심스럽지만, 할 일 없는 다수 시민들이 괜히 법원에 시비를 걸고 무단 침입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지 우린 판결의 순수성을 의심한다. 판결 그 자체에 정치적 영향력과 선입관이 들어갔다는 시각이다. 실제로 판사들은 정치적 성향에 따라 분류된다.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탄핵심판이 4대 4였다는 것과 결코 무관치 않다. 정치인 재판은 1심에 5년이 걸리는 사례마저 나오고 있다. 재판관이 자신의 덕목에 따라 제 일만 하고 있지 않다는 비판이 완전 잘못된 게 아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검사도 비슷한 궤적을 보인다. 어떤 현직 검사는 정치적 시각으로 사건을 재단한다는 의심을 받았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뒤 그는 급조된 신생정당에 편성해 불과 1년 만에 국회의원 배지를 단다.

12·3 비상계엄을 수행한 군인들을 보면서도 그들이 참 측은해 보인다. 대통령과 은밀한 만찬을 할 때는 아마 장군 진급의 행운이 나에게 올 것으로 가슴 부풀었을 그들이 계엄이 실패로 돌아가자 "나는 그런게 아니었다. 대통령이 시켰다"고 유튜브에 나와 울먹인다. 칼을 빼든가 아니면 부당한 명령에 칼집을 확실히 지키든가 하는 결기가 없다. 플라톤이 말한 전사의 직업적 덕목, '용기'는 실종됐다. 군인이 머리 굴리는 정치를 한다면 그건 플라톤의 정의론과 배치된다.

언론도 비켜나지 못한다. 언론은 이제 확고히 정치진영화 됐다. 기자가 정치인보다 더 정치적 주장과 당파성을 소리쳐 외친다. 엄정함과 균형감이란 언론인의 직업적 덕목은 한가한 얘기가 됐다. 재미삼아 혹은 믿거나 말거나에 가까운 유튜브 정치가 득세하는 배경이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정치판을 기웃거리는 교수, '폴리페서'가 떠오른다.

정작 정치인들은 정치인 답지 못하다. 플라톤이 말한 지도자의 덕목, '지혜(wisdom)'를 눈곱만큼 찾아보기 힘들다고 말한다면 너무 냉정한 평가일까. 머릿속 지혜를 짜내 국가 번영을 모색해야 할 정치인들이 무사나 군인처럼 사생결단 싸운다. 입법폭주, 적폐청산, 상대진영 불태우기에 골몰한다. 그들은 차라리 군인으로 직업을 바꾸는 것이 현명할지 모른다.

뒤죽박죽된 현실은 돌고 돌아 종교마저 물들인 모양이다. 목사가 정치 집회의 신드롬을 양산한다. 그러고 보니 각자 직분에 충실하라는 충고는 아름다운 말로 들린다. 카오스(chaos) 즉 혼돈이 우리의 목표가 아니라면 우린 각자의 일에 충성해야 한다. 연속극 대사였던가, "너나 잘하세요"란 그 말이 굉장히 철학적으로 갑자기 기억된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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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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