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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석의 발견과 되새김] 2월, 곧 닥칠 봄을 기다린다

2025-02-04

뜬금없는 계엄 사태 아찔함
여전한 사회 폭력·야만 실감
삶의 좌표가 흔들리는 요즘
시민 소통과 연민의 교감이
우리 사회 심리의 바탕 되길

[이하석의 발견과 되새김] 2월, 곧 닥칠 봄을 기다린다
이하석 시인

#동백

먼저 봄의 기다림.

동백꽃이 어디에 얼마나 피었는가를 살핀다. 1월 들어 잠깐 살을 에는 추위가 있었고, 설 전후로 폭설이 내린 데다 찬 바람이 매웠다. 이렇듯 겨울다워야 꽃소식이 더 절실해지는 것. 여행을 좋아하는 친구에게 물으니, 남쪽에선 이미 절정이란다. 설마 하고, 인터넷을 뒤져보니, 그런 모양이다. 한번 거제도라도 가보자고 자주 만나는 친구들과 약속한다. 꽃도 즐기고, 마침 도다리쑥국 철도 되었으니, 그걸로 봄맞이 입가심을 하는 것도 좋으리라면서-.

동백을 노래한 시들이 많은 건 겨울나기의 각박한 마음 때문일까? 무엇보다 천인절벽에서 몸을 던지듯 통째 떨어져 내리는 붉은 꽃에 대한 미감이 처연하다. 그 결정적인 자기 내던짐의 비장미에 혹하는 게다.

'나비도 없고 벌도 없고 동박새뿐/ 그 동박새에게 마지막 씨를 남기고/ 흰 눈 위에 떨어진 한 치 흐트러짐 없이/ 통째로 툭 떨어진 선운사 붉은 동백꽃/ 떨어지지 않은 꽃보다 더 붉구나'(이산하의 '선운사 동백꽃')도 그러하고, '지상에서는 더 이상 갈 곳이 없어/ 뜨거운 술에 붉은 독약 타서 마시고/ 천 길 절벽 위로 뛰어내리는 사랑/ 가장 눈부신 꽃은/ 가장 눈부신 소멸의 다른 이름이라'(문정희의 '동백')는 감성도 그와 다르지 않다. 동박새에게 '마지막 씨'를 남기고 통째로 떨어져버리는 꽃이 '떨어지지 않는 꽃보다 더 붉은' 까닭을 알고 싶다. 한편으로는 그 미학이 '뜨거운 술에 붉은 독약을 탄' 비유로 나타나는 게 놀랍다. 계절에 따라 마음의 설렘이 나타나지만, 겨울 속에서 봄을 그리는 마음은 특히 애잔한 데가 있다. 그런 마음의 일단이 동백꽃을 그리는 마음일 것이다.

계절감은 요즘 들어 한결 느슨해진 느낌이어서 2월 벽두에 벌써 봄기운이 감도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한다. 동백꽃 피는 시기도 많이 당겨졌다고 인터넷은 알려준다. 그렇다고 해도 아직 겨울이다. 특히 시절이 하수상하니, 얼른 겨울 기운이 가고 우리 삶도 봄처럼 피어나기를 기다리는 절박감이 요즘 특히 더한 듯하다. 그래 봄이 얼른 와야지라며, 동백꽃 미학으로 다잡은 마음이 이어서 피어날 매화와 복수초의 미학으로 더욱 고조되기를 기대한다.


#문학

그리고 새로운 문학에의 기대.


지난해 말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발표 이후 우리 문학에의 관심과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기대가 많이 나왔다. 그런 사실을 알려주는 여러 정보가 인터넷에 넘쳐난다.

그런 영향 때문일까, 올 들어 문학의 전망을 가늠하는 대화들이 늘어나는 듯하다. 자주 만나는 글 친구들과 그런 얘기들을 서슴없이 나눈다. 그런 가운데 문학 담론이 본질적인 것에서 벗어나 점점 더 낯선 세계로 접어드는 느낌도 든다. 지금 문학의 위상이 과거와 많이 달라지고 있다는 게 불안한 듯하다.

문학의 전망이 특히 많았던 게 2000년이라는 새로운 세기를 앞둔 시기였다. 1990년대 후반 우리 문단의 매체와 잡지들은 잇달아 문학의 미래에 관한 전망을 가늠하는 특집을 마련했다. 대부분 부정적인 전망이었다. 문학의 시대, 특히 과거 누렸던 책의 시대가 가고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매체가 등장하면서 문학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는 진단이었다. 그 후 20여 년이 흘렀는데, 그런 전망이 점점 더해지면서도, 새롭게 문학이 융성하는 듯한 현상은 어떻게 설명되어야 하나? 문학 텍스트의 양산과 문단 인구의 폭발적인 증가는 물론 새로운 매체와의 공존 양상마저 두드러져 보인다.

새로운 매체라 했지만, AI(인공지능)와 문학 작품의 융합이 최근 들어 더욱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도 눈길을 끈다. 벌써 인공지능 문학 작품들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OpenAI'에서 개발한 'GPT' 시리즈는 작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훌륭한 콘텐츠 생성 도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 인공지능이 단순히 도구 역할을 넘어서, 예술적 영감을 제공하는 새로운 파트너가 될 수도 있다는 전망을 하기도 한다. 그렇게 될 때 문학은 종래의 개념을 넘어서 새로운 창조의 세계를 보여줄 수도 있으면서, 더 효과적인 독자와의 소통을 이룰 수도 있을 것이다.

인공지능을 통한 문학의 이런 혁신적인 가능성 앞에서 우리는 마냥 아뜩해질 뿐이다. 기계치인 우리 세대로서는 꿈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한 세계는 미래의 새로운 세대의 몫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과 함께 우리 세대는 어쩔 수 없이 소외감을 갖는 것이다. 우리는 어쩌면 과거 문학의 수공업적 창작자의 마지막 생존자로서 발버둥 칠 수밖에 없지 않을까라는 자소감에 빠지는 것이다.


#삶

그리고 여전히 불안한 우리 삶의 전망.


우리 삶의 좌표가 불안한 요즘이다. 이런 상태로 새봄 같은 신세계를 전망할 수 있을까? 선진사회라 믿었던, 민주사회를 구가한다고 믿었던 우리 사회가 갑자기 계엄으로 휘청대는 것에 당혹감을 느낀다. 이 뜬금없는 사태로 하마터면 우리 사회가 내란과 독재로 회귀할 뻔했다는 아찔함을 느낀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전쟁은 우리 시대가 맞닥뜨린 지옥의 서사가 아닐 수 없다. 이스라엘과 중동지역의 전쟁도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을 보면서 우리의 삶 속엔 여전히 폭력과 야만이 독사처럼 똬리를 틀고 있음을 실감한다. 이런 폭력과 야만에 노출되면 삶은 하루아침에 처참하게 망가져 버린다. 그런 불안을 새삼 안게된 것이다.

우리 사회의 폭력과 야만을 막을 방도가 없을까? 무엇보다 민주 시민의 결속이 중요함을 이번 계엄 사태는 잘 보여주었다. 이와 함께 소통과 연민의 교감이 우리 사회 심리의 바탕이 되어야 한다. 그 점에서 문학과 예술의 의미가 새삼 강조된다. 한강 문학의 의미도 그 선상에 있다. 소박하지만, 이런 자각이 우리 삶의 전망이 되기를 절실하게 희망한다.
이하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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