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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요한 (지역과 인재 대표) |
코로나19 팬데믹의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혐오의 감정이 전염병처럼 창궐하였다. 세계 곳곳에 갈등과 대립, 전쟁 소식까지 이어졌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정치의 극단적 대립이 명절에 가족과 혈육마저 갈라놓는다. 혐오는 공동체의 존립을 위협하는 가장 파괴적인 감정이라고 한다.
"어떤 사람을 진짜 알게 되면 더는 그를 증오하지 못한다." 독일의 저널리스트 바스티안 베르브너는 <혐오 없는 삶>에서 '접촉'을 강조한다. 캘리포니아에 있는 한 낙태 반대론자는 사적인 대화 자리에서 한 여성의 낙태 이유를 직접 들은 후 자신의 생각을 바꾸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청소년은 3주동안 캠핑 여행을 한 후 서로 친구가 되었다. 1950년대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고든 올포트는 여러 연구와 실험을 통해서 일찍이 '접촉 가설'을 발표했다. 적대적인 관계에서도 일상에서 접촉을 늘리면 편견과 혐오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올포트는 편견에 쉽게 빠지는 이유는 편리함 때문이라고 한다. 사람은 자기와 같은 사람만 만나면 에너지가 적게 든다. 나와 다른 대상은 쉽게 범주화하고, 이는 편견으로 이어진다. 혐오를 극복하는 것은 논리가 아닌 접촉이고, 더 많은 접촉이 편견을 없애고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다른 의견이나 배경을 가진 사람을 만날 기회가 많지 않다. 그래서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접근과 제도화된 접촉이 필요하다.
2000년 덴마크 출신의 사회운동가 로니 에버겔은 사회에 만연한 편견과 혐오를 해결하기 위해 '리빙 라이브러리(Living Library)'라는 개념을 창안했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책'을 빌려 서로 소통하는 프로그램이다. 독일에서는 2017년부터 해마다 열리는 '독일이 말한다'라는 프로젝트가 있다. 사회분열과 갈등이 깊어지면서 정치적 의견이 다른 사람들끼리 대화가 필요하다는 취지였다. 첫해에 독일 전역에서 1만2천여 명이 일 대 일로 만나 서로의 관점을 교환하고 생각의 차이를 좁히는 경험을 쌓았다. 한국에서는 2023년 9월에 '한국의 대화'라는 '대화 실험' 모델로 46명이 참여한 일 대 일 대화 행사가 처음 열렸다. 대구에는 기성세대와 청년세대의 접촉과 세대공감을 위한 '책으로 마음 잇기'가 5회째 개최되었다. 현대 사회는 알고리즘이 제공하는 맞춤형 정보로 개인이 인식하는 세계는 더 협소해지고 파편화되고 있다. 이제 사회 통합을 위해 다른 이념, 다른 계층, 다른 세대가 만날 수 있는 제도적 접촉을 설계하고 대화 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한다. 만나서 대화하면, 동의는 못 해도 서로 이해할 수는 있다.
지역과 인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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