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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순의 문명산책] 놀이하는 인간 '호모 루덴스'

2025-02-07

윷이든 주사위든 놀이는 결국
우연을 던져 운명을 헤아리는
자연스러운 인간 본능적 행동
사고와 욕망 사이를 넘나들며
인식의 지평 넓히는 인류유산

[김중순의 문명산책] 놀이하는 인간 호모 루덴스
김중순 계명대 명예교수

현생 인류의 생물학적 이름은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이다. '생각한다'는 뜻의 사피엔스를 두 번이나 반복하며 인간의 관념적 사고능력을 강조한다. 정치학자들은 '호모 폴리티쿠스'로 이름하여 인간의 권력 욕구를 강조하고, 경제학자들은 '호모 에코노미쿠스'라고 이름하여 인간의 소유 욕구를 강조한다. 결국, 인간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며, 최대의 이득을 얻어내려 노력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정말 그런가? 매 순간 그렇게 경쟁적으로 살고 있지도 않고, 그렇게 살고 싶지도 않은 사람도 있다. 가끔은 아무 생각 없이 노닥거리고, 노래도 부르고, 때로는 드라마 속 주인공에 자신을 이입시켜서 대리만족과 위안을 얻으며 놀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놀이에도 우연, 경쟁, 흉내, 그리고 현기증 같은 고도의 규칙과 논리가 있다. '우연성'을 특징으로 하는 대표적인 놀이가 윷놀이다. 그것이 재미있는 이유는 인간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다는 '예측 불가능성'에서 얻어지는 기쁨 때문이다.

윷놀이에는 소, 말, 양, 돼지를 상징하는 윷가락과 밭을 상징하는 윷판이 필요하다. 풍년과 가축의 번성을 기원하는 농경문화의 전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이동과 경쟁의 수단으로 말이 등장하고, 넓은 초원과 사막을 윷판이 대신하기도 한다. 전쟁과 사냥에서 이길 수 있는 치밀한 전략마저 필요로 하니 유목문화의 전통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윷판형 암각화는 별을 읽어내는 천문 지리도의 역할을 했고, 사리와 조금의 시간을 알려주는 어로문화의 흔적도 보여 준다. 이런 암각화는 임실, 포항, 울산, 고령, 개성 등 한반도 전역에서 발견된다.

이만하면, 윷놀이야말로 한국 고유의 민속놀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놀랍게도 비슷한 놀이들이 세계 곳곳에서 발견된다. 몽골에서는 '샤가이', 중국에서는 '척사', 심지어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들도 우리와 매우 비슷한 윷놀이를 하고 있다. 고대 인도나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그리고 여러 이슬람 세계에는 윷놀이의 변형이라고 할 수 있는 주사위 놀이가 있고, 신라에도 '주령구(酒令具)'가 있다. 그렇다면 윷놀이를 구태여 '우리 것'이라는 틀 속에 가두어 둘 필요는 없다.

윷이든 주사위든 그 놀이는 결국 '우연'을 던져 인간이 스스로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을 헤아리고, 점술적인 의미마저 포함하고 있다. 풍부한 상상의 세계에서, 억압되고 간과되었던 감정을 좀 더 솔직하게 표현하고, 다양한 창조적 가능성을 펼치는 일들이 모두 여기에 포함된다. 그것은 우리가 삶을 좀 더 겸손하고 유연하게 새로운 도전으로 받아들이거나, 절망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도록 한다. 이런 우연의 놀이야말로 지극히 자연스러운 인간의 본능적 행동이며, 창조적인 문화 행위임에 틀림없다. 그것은 이성적 사고와 감성적 욕망 사이를 넘나들면서 경험과 인식의 지평을 확대하는 인류 문명의 유산일 것이다.

세계인 모두가 윷놀이를 한다 해도, "윷 논다고 다왔구나… 모가 나도 춤을 추고, 때(도)가 나도 풍물치고, 져도 좋고 이겨도 좋고, 뛰고 절고 놀아보세…"라고 노래하는 안동 내방가사의 신명만은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우리 것으로, 다름 아닌 K-Culture의 동력이 되고 있다. 곧 정월 대보름이다. 윷놀이하며 한바탕 걸쭉하게 웃고 나면, 그 어느 때보다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지 않겠는가? 놀이하는 인간, 바로 '호모 루덴스(Homo Ludens)'다!

계명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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