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극인 잔치였던 연예대상
이젠 非희극인들의 자리돼
회사이익과 스타 챙기기로
권위 붕괴된 방송사 시상식
갈수록 국민 관심서 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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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근 문화평론가 |
지난 연말 항공기 참사로 인해 일부 방송사 시상식들이 설 연휴 때 치러지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우여곡절 끝에 치러진 시상식에선 코미디의 퇴조가 확연히 나타났다. 지난 연말 먼저 치러진 KBS 연예대상에선 사회자 3명이 모두 가수였다. 리얼리티 신인상, 쇼버라이어티 신인상 등을 비롯해 여러 부문에서 가수가 수상했다. 올해의 예능인상과 대상의 주인공도 가수였다.
시상식 후에 코미디언 변기수가 "그래도 코미디언 한 명은 줄 수 있지 않나. 가수들만 챙기는 연예대상"이라며 문제를 제기했다. 신인상 부문을 쪼개고 공동시상까지 하며 상을 골고루 나눠주다시피 했는데, 코미디언 출신 예능인에겐 신인상이 단 한 개도 안 돌아갔다는 지적이었다. 그래서 코미디 홀대 이슈가 불거졌다.
그 이후 이번 설연휴 때 치러진 MBC 연예대상에선 배우가 약진했다. 이장우, 김석훈, 유태오, 최다니엘, 최강희 등 배우들이 잇따라 수상했고 만화가 기안84와 아나운서 김대호도 주요 상을 받았다. 가수들의 수상행진도 역시 이어졌지만 이 시상식에서도 코미디언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했다.
연예대상은 원래 코미디대상에서 출발했을 정도로 코미디언들의 안방이었다. 특히 이경규, 김국진, 김용만, 서경석, 유재석, 강호동, 남희석, 신동엽, 김구라 등 코미디언 출신 사회자들이 예능계를 이끌었다. 하지만 그 후배들이 보이지 않는다. 앞에서 언급한 사회자들은 국민MC 호칭까지 들으며 장기집권했는데, 새로운 코미디언 출신 예능스타가 안 나오는 것이다. 대신 가수, 배우, 운동선수 등 비희극인들이 예능계를 주도하기 시작했다. 그런 흐름을 이번 시상식 결과가 극명히 보여줬다. 이건 예능이 더 이상 웃음지상주의를 추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요즘 예능은 리얼리티 시대에 돌입했다. 우스꽝스러운 쇼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공개하는 관찰예능이 인기다. 이제 사람들은 '진짜'를 원한다. 코미디언은 웃기기 위해 과장하거나 설정을 짜낸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에, 그런 설정을 잘 소화하지 못하는 비희극인들이 오히려 예능에서 각광받게 됐다.
동시에 시상식을 대하는 방송사의 태도도 코미디언 홀대에 영향을 미쳤다. 우리나라 방송사들은 시상식을 객관적인 대중문화계 결산이 아닌 회사를 위한 사내 이벤트 정도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 보니 방송사에 보탬이 되는 유명 스타들을 우선적으로 챙긴다. 스타의 출연에 보은하고 앞으로의 섭외를 위한 포석도 깔아놓는 의미로 시상하는 것이다. 시상식 당일 참석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도 스타에게 시상한다. 스타가 참석해야 시상식 시청률이 오르기 때문이다. 요즘 한류현상으로 가수, 배우의 스타성이 코미디언보다 압도적으로 높다 보니 그들이 더욱 귀하신 몸이 됐다.
이렇게 시상기준이 회사 이익에 휘둘리니 방송사 시상식이 점점 우스꽝스럽게 느껴진다. 상을 온갖 기이한 명목으로 남발해서 권위 대붕괴 지경이다. 당연히 매번 비판이 나오고 과거엔 큰 논란으로까지 비화했었다. 하지만 이번엔 의례적인 비판 기사만 일부 나왔을 뿐 큰 논란이 없었다. 방송사 시상식 자체가 관심 밖으로 밀려났기 때문이다. OTT 등의 성장으로 방송사가 위축되니 시상식도 더이상 핫이슈가 못 된다.
과거엔 온 국민이 방송사 시상식을 보며 한 해를 마무리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땐 시상 결과가 우리 사회 초미의 관심사였다. 이젠 동시간대 일반프로그램보다도 시상식 시청률이 밀리는 처지다. 코미디와 방송사의 화려한 날이 갔다는 것을 이번 시상식들이 확실히 보여준 셈이다.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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